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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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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프레이포유 독거노인, 노숙인을 위한 사랑나눔 실천

프레이포유 노숙인, 쪽방촌, 독거노인을 위한 사랑나눔

‘매일 행복이 톡톡 터지는 일을 하고 있는 노숙인 봉사자’

프레이포유사역 소개-노숙인, 쪽방촌, 독거노인 사역,사랑나눔 상자 사역.

 

아름다운 봉사자 프레이포유 단체 손은식 대표를 만나 그이 인생스토리를 인터뷰했다.

 

Q: 기자/이성용. A: 손은식 목사

 


   프레이포유 사역: 거리에 계신 분과 좁은 방에 계신 분께 드릴 간식을 정성을 담아 준비.

 

Q: 안녕하세요! A: 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저는 매일 행복이 톡톡 터지는 일을 하고 있는 노숙인 봉사자이자 프레이포유 단체 대표 손은식 목사입니다.

 

Q: 안녕하세요. 손은식 목사께서는 언제부터 행복이 톡톡 틔는 프레이포유 단체 대표로 일하게 되셨는지요? 여기에 결정적 동기가 있다면 무엇인지요?

 

A: ‘제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운동장에서 전교생이 나와 놀 때, 저는 신기한 광경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것이 제가 ‘프레이포유’를 하게 된, 계기며 시작입니다.

 

‘프레이포유’를 하게 된, 계기

                      프레이포유 사역의 동역자는 바로 거리에서 함께 노숙을 경험했던 형제님이었다.

 

1980년대 중반 손은식 목사가 초등학교 2학년 되었을 때, 그는 우연히 학교 운동장에서 학생들이 한 장소에 빙 둘러서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학교의 발달장애 학생 하나가 넘어져 있고, 그 주변을 다른 학생들이 구경삼아 서 있는 것이다. 이날 초등학교에 발달장애 친구들도 함께 있는데, 시간이 얼마간 지난 뒤 발달장애 친구를 등에 업고 양호실로 뛰어가는 한 학생을 발견하게 된다. 이때 어린 마음에 깊은 감동을, 받게 된다.

 

Q: 이때 마음이 어떠했나요? A: 예. ‘저는 이때 유심히 그 학생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순간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는데, 그것은 바로 몸이 불편한 친구를 업고, 달려가는 저의 형님(현재 서울대병원에 교수)을 본 겁니다. 이때. 무언가 제 몸을 휩쓸고 지나가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전율한 겁니다. 이때, 아! 쓰러진 사람을 도우면 감동이 오는구나. 그리고 그 현장에서 그것을 함께 보는 사람들에게도 동일한 감동이 전해지는구나! 그렇다. 어려운 친구를 보면,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자. 먼저 손을 내밀자’

 

거리에 계신 노숙인을 돕는 사역을 시작한 후로 각종 언론에도 여러 번 바 있는 손은식 목사. 그는 노숙인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과 노숙인 문제에 대해서

노숙인 및 쪽방촌 주민 등 우리와 동시대를 살고 있는 소외계층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이렇게 질문한다.

 

 

‘프레이포유’에서 생각하는 노숙인 문제에 대해 질문!! - ??

       프레이포유 사역자 류연우 형제께서 거리에서 운동화가 없는 분께 운동화를 신겨드림.

 

먼저. 우리가 매일 만나는 거리에 버려진 사람은 사실 노숙인이기 이전, 장애인이고(신체장애와 정신병리) 독거노인이고,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말 그대로 소외계층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지키고 싶어 했던 인권을 가진 소외계층입니다. 우리는 소외계층의 인권은 그렇게도 중시여기며, 왜 노숙인은 차별하나요?

 

둘째로, 집에서 살다가 거리로 쫓겨난 노숙인, 그들은 왜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었을까요? (외환위기, 금융위기로 인한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사업이 붕괴 되고, 가족이 해체되고 결국 희망이 사라진 노숙인을 우린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요? 그리고 낮은 소득으로 인한 주거 박탈, 교육과 인적 자본의 취약성, 어린 시절부터 이어져 온 가족 폭력과 학대에 따른 가출로 인한 노숙 생활을 우리는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나요?)

 

셋째로, 살 소망이 없어지면 대부분 사람은 자살로 이어집니다. 거리의 노숙인은 대부분 자살 시도를 수차례 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먼저 그들을 향해 따뜻한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노숙인의 자살은 각종 사회문제로 이어질 것입니다.

네 번째, 거리에 나온 노숙인은 대부분 술과 담배에 중독되어있습니다. 그러기에 노숙인의 자활은 중독에 대한 치료가 최우선인데, 그에 대한 정부의 정책이 노숙인 자활사업에 반영되어 있습니까? (거리와 시설의 노숙인이 각종 주거 지원 정책으로 방을 얻게 되면, 살 소망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이미 중독된 몸과 희망을 잃어버린 마음에 매일 술을 마시고, 밥을 먹지 않아 곧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거리에서 죽어가던 사람을 집으로 장소만 옮겨놓고 자활시켰다고 통계 수치에 넣는 것이 무슨 노숙인 자활 정책인가요?)

 

다섯 번째로, 우리 대한민국은 현재 잠재적인 노숙인이 수십만을 헤아립니다.

UN,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 대한민국의 노숙인의 정의와 기준에는 상당한 기간 동안 주거로서의 적절성이 현저히 낮은 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만화방,사우나, 피시방, 쪽방 생활자)도 노숙인으로 정의 내립니다.

 

정부는 앞으로 늘어날 노숙인및 소외계층에 대한 로드맵이 작성되어 있는가?

 

여섯째, 선한 사마리아인의 법이, 유럽 등 선진국에는 존재하고, 또 지켜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동방예의지국으로 불리는 대한민국에는 현재 그 법이 없고 거리에서 병과 영양실조로 쓰러져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도 지나쳐 버립니다.

 

언제쯤 우리도 달라질 수 있을까요?’


 

´위험에 처해 있는 사람을 구조해주어도 자기가 위험에 빠지지 않는 경우, 자의로 구조해주지 않은 자는 3개월 이상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60프랑 이상 1,500프랑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_ 프랑스 형법 제 63조 2항

 

´현저한 위협이 없고 더욱 중요한 의무를 위배하지 않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고나 공공의 위험 또는 위기에 처해 있는 도움이 필수적이고 상당히 요구되는 이에게 도움을 주지 않는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벌금형에 처한다.´ _ 독일 형법 제 323조 C

 

끝으로 한국뉴스신문 발행인님께 질문합니다. 지금 서울시의 거리와 시설 노숙인이 5,000여명 정도인데 그에 대한 한 해 노숙인 예산이 500억원 가량이 됩니다. 그렇다면 지난 10년가량 서울시 노숙인에게 사용된 전체 예산은 족히 4,000억원 이상은 될 것입니다. 그 많은 노숙인 예산을 사용하는 자활지원과는 도대체 무슨 일을 하였고 또 하고 있습니까?

 

12월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프레이포유’에서 생각하는 노숙인 문제에

대한 7가지 질문에 대한 정책 대안인 답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매일 행복이 톡톡 터지는 노숙인 봉사자 – 경험이 철학이 되어..


 

A: 저는 한 번뿐인 인생에 남들이 가보지 않은 곳을 가고 싶었고, 뻔히 눈에 보이는 길을 가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신학대학원 때는 중국 심천에서 1년간 살아보기도 했고, 결혼해서는 가족과 함께 두바이에서 5개월간 지내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목사 안수를 받고 나서는 ‘이제부터는 목사로서 어떻게 살아갈까?’ 를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한 마디로 세상에 너무나 많은 목사가 있고, 그들과 동일한 길을 걸어가며 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또한, 저는 여행인솔자로 세계 30여 개국 이상을 둘러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2009년에는 68일간 전체 유럽과 터키, 요르단, 이스라엘, 이집트에 이르기까지 성지순례 패키지로 나온 모든 코스를 개인적으로 일정을 다시 조합해서 다녀왔습니다. 이런 세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현재에 제가 하는 일에 큰 힘이 되지 않았나 하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거리에서 노숙인을 만나 대화 나누며 그들이 필요한 간식과 물품을 전해주는 날이 하루 이틀이 지나 1년, 2년, 3년째가 되자 어느 날 놀라운 일이 일어났는데 그것은 어느 젊은 40대 후반의 거리의 분이 저에게 거리에서 노숙인을 돕는 봉사를 함께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분이 한 분 두 분 세 분이 되자 그분들이 지낼 집을 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지금의 살림공동체가 태어나, 이런 공동체가 현재는 세 곳으로 늘어났습니다.

 

서울 종각에서 시작하여 동묘에 이르기까지 종로와 을지로 대로를 따라 걸으며 사역하다 보니, 노숙인이 돈이 생기면 하룻밤 잔다는 종로3가역 피카디리극장 뒷 편의 종로쪽 방촌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쪽방촌은 어떤 곳일까? 어떤 사람이 살고 있을까? 그런데 친한 노숙인 한 분이 제게 "목사님은 절대 쪽방촌에 가면 안 됩니다. 그곳의 사람들은 먹을 음식과 지낼 방이 있기에 목사님이 그곳에 있는 사람을 돕게 되면 변질하는 것입니다. 변절자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수 개월간 관심을 끊다가 어느 날 우연히 쪽방촌에 들리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한 평이 조금 더 되는 지저분하고 어두운 방에서 사람이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수용소와 감옥이란 말이 더 어울릴 듯한 장소였습니다. 그곳에서 600여 분의 주민이 살아가고 계셨습니다.

 

2016년 종로쪽 방촌에 처음으로 가서 만난 분이 90세 할머니 세 분, 김옥순, 강정식, 이순재 어머님이십니다. 좁은 골목에서 세 분이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고 계셨습니다. 저는 그분들께 인사를 드렸고 간식을 드렸고 대화를 나눴습니다. 매주 월요일 종로 쪽방촌을 찾아갔고, 수개월이 지나자 그분들과 친해지게 되었고 백화점에 들러 옷을 사드리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좋아하시는지요! 종로에 화신백화점 이후로 처음 백화점이란 곳에 왔다는 김옥순 어머님의 말씀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여행이란 것을 계획하게 되었습니다. 생애 마지막으로 떠나는 여행이요. 처음에는 남이섬으로 떠났습니다. 그리고 가을이 오자 단풍을 보러 설악산으로 갔습니다. 그 다음해 봄이 되자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올해 가을에 필리핀에 가려 합니다. 혹시 도움을 주실 분이 계시다면 어떤 형태로든 도움을 주세요.

감사함으로 받겠습니다.

 

김옥순 어머님은 일제시대 일본군에 끌려가 근로정신대에서 총알을 만들었고, 해방된 후 서울로 와서 70여 년을 쪽방에서 사셨습니다. 고 이순재 어머님은 독립투사 윤승허의 며느리이고, 6,25 전쟁 영웅 윤영준 소장의 아내로 30년 이상 쪽방에서 지내시다 작년 남이섬을 다녀오시고 수개월이 지난 어느 날 별세하셨습니다. 그렇게 90세 할머님들과 써내려가는 일기는 생애 마지막 일기가 되었습니다.

 

거리의 분들과 좁은 방에서 살고 계신 분들과 함께 하는 저의 마지막 여행은 제 생애 최고의 여행이자 너무나 값진 시간입니다. 제가 꿈꾸어왔던 삶입니다. 젊은 시절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주제로 큰 고민을 하였고, 답답한 시간을 보내었습니다. 제가 자신을 바라볼 때도 이 사회에 그다지 필요한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고, 또 이 사회에서 어떤 모습으로든 성공할 것 같지 않았거든요. 규격적인 인간을 찍어내는 공장에서 저는 왠지 저는 불량품 같아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매일, 매일, 이 행복합니다. 요즘은 매일, 매일 기쁩니다.

하나님의 시선과 마음이 있는 거리에서 그분들과 함께 하나님을 생각하기에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매일 행복이 톡톡 터지는 거리 사역자가 된 겁니다.

 

도움이 필요한 자들, 가난한 이웃, 죽어가는 노숙인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 때

에는 어떤 선행에 대한 보상을 바라는 마음이 있어선 안 된다. 보상을 바라는 마음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것을 어느 순간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겨울 한 노숙인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메일을 받았습니다’.

“손 목사님 감사드립니다. 목사님께서 저희들의 힘이 되어 주셔서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거리에 있은 지 일년이 다 되어갑니다. 다가오는 20일이면 일 년이네요. 제가 일 년을 거리에 살면서 많은 단체나 개인 독지가분들을 만나보았습니다만 손 목사님께서는 꼭! 꼭! 필요할 때 저희들이 못하는 일을 해주십니다. 한 끼의 식사보다 목사님께서 행하시는 것처럼 한 분 한 분 손을 잡고, 마음 아픈 이야기를 들어주고, 대화하고, 치유의 기도를 해주는 것이 정말 큰 힘이 됩니다.

제가 1년을 지내오면서 손 목사님께서 행하는 것처럼 우리 노숙인이 찾아가는 시설도 중요합니다만, 손 목사님께서 행하는 것처럼 일대일로 찾아오는 복지,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누군가 생각은 하겠지만 행하기는 어려운 일이지요. 넓은 서울 바닥에서 직접 찾아오셔서 일일이 손을 잡으시고 기도해주시고 필요한 비품과 의류 등을 가져다 주시는 것, 생각은 있지만 실천하기는 어렵다는 겁니다. 그 어려운 일을 해주시니 저희처럼 거리의 홈리스 분들에게는 정말 큰 힘이 됩니다. 모쪼록 목사님 가정과 함께 사역하시는 분들의 건강을 위해 기도해 봅니다. 한 분의 행함이 시간이 지나면 큰 열매로 돌아올 것을 믿어봅니다. 감사드립니다. 환절기 감기 조심하시고. 꼭! 꼭! 손 목사님 바라시는 일이 이루어지길 기도해 봅니다. 꼭! 될 것입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저는 지난 5년간 거리에서 소외계층 사역을 하며 줄곧 다음의 질문을 나와, 함께 하는 분들에게 했습니다. '왜(Why) 이 땅엔 이토록 소외계층이 많을까?'

 

매일 거리를 둘러보니 힘들게 살아가고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분들이 너무 많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거리 사역을 하면서 거리에 쓰러져 계신 형제자매와 대화 나누고 기도를 드리며 항상 위 질문을 생각했었고, 5년이 지난 지금은 어느 정도 답이 마음에 떠오릅니다. '건강하고 부유한 사람은 남보다 더 받은 것에 감사하며, 가진 것을 나누며 돕고 살아가야 하며, 그럴 때 삶의 의미와 행복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소외계층 사람은 세상에서 버려진 듯 홀로 힘겹게 살아가는 운명이 아니라 손을 잡아 주는 누군가를 통해 다시금 일어나 삶의 의미와 희망을, 가지게 된다.’는 것, 바로 ‘이 땅에서는 누구 하나 혼자 살아갈 수 없고 서로를 도우며 살아가는 세상임’을 깨닫게 하기 위한 것 같습니다.

 

 

프레이포유사역 소개-노숙인, 쪽방촌, 독거노인 사역,사랑나눔 상자 사역.


 

 

노숙인 사역 : 매주 월화수 종각역, 을지로입구역, 시청역, 서울역, 영등포역, 청량리역, 용산역과 역 주변, 공원을 다니고 종로와 을지로 등 대로를 걸으며 거리에서 만나는 분들에게 준비한 간식과 필요 물품(의류,가방,운동화,침낭,마스크 등)을 전달하고 대화 나누고 기도합니다.

 

쪽방촌 사역 : 매주 월요일 종로 좁은방, 화요일 영등포 좁은방, 용산역 텐트촌, 수요일 중림동, 동자동, 후암동, 남대문 좁은방을 방문하여 준비한 간식과 필요 물품(쌀,김치,도시락,젓갈,선풍기) 등을 전달하고 대화 나누고 쪽방촌에서 함께 예배드립니다.

 

독거노인 사역 : 매주 목금 중화동에 홀로 사는 어르신을 찾아뵙고 준비한 간식을 전달하고 대화 나누고 예배드립니다.

 

사랑의 나눔 상자 사역 : 살림공동체가 있는 중랑구 중화동에 사랑의 나눔 상자를 설치하여 하루 한 끼도 해결하지 못하는 이웃들을 위해 언제든지 필요한 물품을 가져갈 수 있게 하였습니다.

 

 

약력: 손은식 목사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

가톨릭대학교 상담심리대학원 영성상담학과 졸업

프레이포유 대표

 

 

첨부사진 설명

  1. 년 프레이포유 사역 준비 과정을 마치고, 2014년 1월 1일 서울 중심가에서 프레이포유 시작 예배를 하나님께 올려드리며 사역을 시작.

프레이포유 사역: 거리에 계신 분과 좁은 방에 계신 분께 드릴 간식을 정성을 담아 준비.

프레이포유 사역의 동역자는 바로 거리에서 함께 노숙을 경험했던 형제님이었다.

종로쪽방촌의 90세 할머님 네분과 함께 떠난 ‘생애 마지막 여행-제주도’의 성산일출봉 앞.

프레이포유 사역자 김재남 형제가 KBS 9뉴스 인터뷰 - 용산역 텐트촌의 현실에 대해.

프레이포유 사역자 류연우 형제께서 거리에서 운동화가 없는 분께 운동화를 신겨드림.

프레이포유에서는 동역자들과 함께 정기모임을 통해 거리와 좁은 방 이웃을 찾아감.

프레이포유 초창기 사역이 책으로 나왔다. ‘거리에서 만나는 예수님’, ‘밀알서원’,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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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군, '2024년 제1회 신규공무원 소통데이' 개최

데일리연합(월간, 한국뉴스신문) 김재욱 기자 | 울진군은 지난 15일 군청 대회의실에서 6개월간 시보 임용 기간을 거쳐 정규 임용이 되는 새내기 공직자 45명의 시보 해제를 축하하고, 격려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신규공무원 소통데이는 공직사회의 오랜 관행인 시보 떡 문화를 개선하고, 신규공무원의 시보 해제를 축하하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올해 처음으로 추진 됐다. 이날 행사에서는 정규 임용을 축하하는 메시지가 담긴 카드와 소정의 선물 및 꽃다발을 울진군수가 전달하여 격려하였으며, 이제 막 첫발을 내딛는 새내기 공직자들의 성공적인 공직생활을 위해 덕담을 전하고 소감을 청취하는 등 화기애애한 시간을 가졌다. 새내기 공무원들은 각자 맡은 바 업무를 설명하며 "처음 접하는 업무로 어려움이 많았지만 잘 이끌어 준 동료 직원들에게 감사하며, 초심을 잃지 않고 맡은바 업무에 책임감을 가지고 업무를 수행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손병복 울진군수는 "6개월 동안의 시보 경험을 바탕으로 직원들이 업무에 대해 사명감을 가지고 공직사회를 이끌어 주기를 바란다"라며 "앞으로도 신규공직자와의 자유로운 소통 시간을 통해 공직사회에 적응을 도와 일하고 싶은 조직문화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