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문 정치칼럼]
항일 독립운동 영웅들의 역사적 평가는 팩트에 근거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김원봉과 홍범도를 예로 들어보자. 의열단과 조선의용대 그리고 광복군 부사령관을 역임한 김원봉과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에서 승리한 홍범도, 두 사람의 역사적 발자취의 맥락을 보고 평가를 다르게 해야한다. 김원봉은 공산주의자라고 할수 있지만 홍범도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다.
김원봉의 경우 항일독립운동의 과정은 찬양받아 마땅하지만 해방이후 행실로 봐서는 현재 분단 대치 상황에서 순국선열로서 인정받기는 어렵다. 혹시라도 통일된 이후가 되어 동족의 문제를 제외하게 되다면 재평가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6.25전쟁에서 북한측에 가담하여 전쟁 공로를 인정받아 북한정부로부터 2회의 걸쳐 훈장을 받은 해방이후의 행적에 관한 부정적인 평가에 결코 자유로울수 없다.
그러나 홍범도는 청산리 전투이후 일제의 보복을 통한 우리 민족들의 학살이 감행되고 간도참변 양민학살이 발생하자 당시 약소민족 독립을 도와주는 소련으로 이주하게 된 것이다. 1927년에 소련공산당에 입당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소련영내활동을 보다 더 자유롭게 독립운동을 하기위함이었고 이후 소련에서 추방되어 1943년에 카자흐스탄에서 운명하심으로 1948년 북한정부수립과 1950년 6.25전쟁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독립군 자유시 참변에 대해서 홍범도 장군이 주도했다는 설이 있는데 그러나 참변에 가담한 사실적 기록은 전혀없다. 단 1991년 한소 수교직후 자유시 유혈사태 보고를 했다는 소련측 문서와 독립군 재판 위원으로 참여했다는 것이 주도설의 근거 자료로 사용되고 있는데 그것만으로 공산주의자로 매도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홍범도는 소련의 영내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소련의 무장해제 요구를 수용해야한다는 주장을 하면서 필요시 지급받는 체계를 선호했다는 이유가 자유시 참변의 주동자로 몰리는 누명을 쓰고 있는 것이다. 또한 독립군 재판위원도 우리 독립군을 해치려는 것보다 조금더 유리한 국면으로 도움을 주기위함이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께서도 일본군에 참여한적도 있고 공산주의 남로당 조직책에 가담한적도 있다. 입당과 가담 등 그 때의 상황의 맥락을 보고 판단해야지 그 자체로 매도해서는 아니될 것이다.
칼럼니스트 김상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