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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산책] "짧은 생애, 영원한 유산" 비운의 천재, 바스키아

  • 등록 2024.12.11 10:4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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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연합 (SNSJTV. 아이타임즈M) 온라인뉴스팀 | 어린 아이의 낙서처럼, 기존의 형식을 넘은 과감한 색채와 형태들이 자유롭게 춤을 춘다. 마치 우주인이 그린 듯한, 이해하기 힘든 글자와 이미지들이 가득하다.

장 미셸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 1960~1988)는 자신만의 자유로운 화법으로 오일, 파스텔, 스프레이, 아크릴 물감 등 다양한 재료를 즉흥적으로 사용하며 작품을 완성했다. 그의 작품은 자유로움과 혼란스러움을 넘나들며, 어떤 틀에도 얽매이지 않고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펼친다. 바스키아는1980년대 미술계를 충격에 빠뜨린 독보적인 화가였다.

 

그는 아이티 공화국 출신의 아버지와 푸에르토리코계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1960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바스키아는 어머니를 따라 어릴 적부터 뉴욕의 주요 미술관들을 접하며, 다빈치나 피카소와 같은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을 직접 보고 경험할 수 있었다. 어린 아들의 창의성을 눈여겨본 어머니는 그가 예술적 재능을 키울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바스키아가 주목받을 수 있도록 결정적인 도움을 준 예술가는 바로 팝 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이다. 앤디 워홀은 20세기 후반 미술계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인물로, 바스키아의 예술적 멘토가 되어줬다. 두 사람은 1984년부터 공동 작업을 시작했으며, 워홀의 팝 아트 기법과 바스키아의 충동적인 회화가 결합해 새로운 작품들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예술적 동지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였던 워홀이 수술 후유증으로 갑작스럽게 사망하자, 바스키아는 깊은 좌절감에 빠졌다. 결국 그는 마약 중독으로 27세의 나이에 짧은 생을 마감했다.

 

 

자유를 찾기 위해 스스로를 "반항아"라고 자처한 바스키아는 사회에 대한 저항의 에너지를 그의 작품 안에 녹여냈다. 그는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통해 사회적 편견과 억압에 맞서 싸웠다. 비록 그의 생은 짧았지만, 그의 작품과 메시지는 현대 미술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글=이새벽 인턴기자

 

온라인뉴스팀 기자 god8889@itimes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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