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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생생한 터키 이야기] 종교의 중심지 에베소(Ephesus)

인간의 어머니에서 신의 어머니가 된 마리아
초대교회의 중심지 에베소

[생생한 터키 이야기 1] 에베소(Ephesus)

 

[성모 마리아 상 - 마리아의 집]

 

[예수의 탄생 - 마리아의 집]

 

에베소는 초대교회 시절 기독교의 중심지였다. 그래서 이곳은 초대 기독교의 수많은 이야기가 2천년이 지난 지금도 살아 숨쉬고 있다.

 

한국교회는 교단과 교파를 초월하여 공통적으로 이단과 사이비와의 싸움을 치열하게 벌여왔는데, 특히 요즘은 대표적 사이비 집단으로 알려진 ‘신천지(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 때문에 거의 모든 교회가 몸살을 앓고 있다.

이전에는 한국교회 안에서만 문제를 일으키고 있던 신천지가 최근에는 코로나 팬데믹과 21대 대선을 거치면서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으며 한국 사회의 전면에 등장하게 되었다.

 

신천지의 교리로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대표적으로는 교주 이만희를 보혜사(保惠師)로 오신 성령이라 믿고 가르치는 것이다. 성서에서는 예수가 부활하고 승천하면서 그의 백성들을 진리로 인도하는 진리의 영 즉 보혜사 성령을 보내준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예수가 약속한 그 보혜사 성령이 유한한 육신을 입은 이만희 자신이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지금부터 약 1,500년 전인 A.D. 431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에베소와 서머나, 버가모 등 에게해 인근에 도시국가를 건설하여 거주하던 이오니아인들이 섬기던 대모신(大母神)인 아데미(Artemis)가,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로 대체돼 버린 일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431년 에베소의 마리아 기념교회에서 열린 3차 종교회의에서 결정된 교리 때문이다. 다시 말해 3차 종교회의를 통해, 마리아가 아데미의 빈 자리를 메꾸는 일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에베소 개관

 

[도서관 유적 - 에베소 고대도시]

 

에베소(Ephesus)는 버가모(Bergama)와 함께 ‘에게해의 두 장미’로 격찬 받았던, 세계 최대 규모의 도시 유적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에베소는 로마제국 소아시아의 수도였을 뿐 아니라, 로마와 알렉산드리아, 안디옥과 더불어 로마제국의 4대 도시 중 하나로 손꼽혔다.

 

신약성서 에베소서나 요한계시록 수신지로서 소아시아 7교회 중 하나로 등장하며, 고대 그리스와 로마제국 시대에 번성한 도시였다. 이 도시의 황금기는 기원전 133년, 로마제국의 지배 아래에 들어가면서인데, 수많은 국제회의가 열리고 각지의 물산이 집합되는, 무역 항구이자 동서양을 연결시키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에베소의 최전성기는 A.D. 1-2세기경으로, 당시 도시 인구가 30만 명에 달하면서 당연히 많은 초대 기독교인들의 활동도 왕성했다.

 

[크레테스 거리 - 에베소 고대도시]

 

항만을 끼고 번영한 상업도시 에베소가 쇠퇴한 것은 카이스터(Cayster)강의 토사 퇴적으로 묻혀가게 되면서 항구로서의 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항구에 토사가 쌓이고 습지로 변하면서 모기가 번식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전염병이 도는 등 도시 기능도 점점 저하돼, 현재의 도시(Selçuk)로 주거지를 이전하게 되었다. 게다가 A.D. 612년에 에게해 연안에 발생했던 대지진으로 인해 도시가 파괴되면서, 에베소는 도시로서의 기능을 급격하게 잃게 되었다.

 

예수의 제자 바울은 제2·3차 선교여행 때 이곳을 방문했고, 3차 선교여행 때에는 성령 강림으로 방언과 예언의 이적이 일어나 그것을 본 마술사들이 마술책을 불사르고 기독교로 개종하는 역사가 일어났다. 바울은 고린도에 보낸 3통의 편지를 에베소에서 쓰기도 했다.

 

에베소의 역사

 

에베소(Ephesus)의 기원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그리스 역사가요 철학자인 타키투스(Tacitus)는 흑해에서 건너온 여인(女人)족인 아마존족이 기원전 1,400년경 마을을 처음 세웠다고 기록하고 있다. 지리학자이자 역사가인 스트라보는 에베소가 아마존족 언어로 ‘꿀벌’이라는 뜻의 ‘아빠소스’라는 아마존족 여왕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기록했다.

 

이후 기원전 1,100년경 이오니아인(Ionians)인 아테네 왕자 안드로클레스(Androcles)가, 여인들이 다스리는 아마존 토착민들을 추방시키고 에베소를 건설했다고 한다. 이 시기 많은 그리스계인들이 척박한 그리스 본토와 섬을 떠나 비옥한 아나톨리아 서부 지역(버가모, 에베소, 서머나 등)으로 대거 침략해 그리스계 도시들을 건설했는데, 안드로클레스 왕자도 당시 전통에 따라 새 도시를 세우기 위해 델피의 아폴로 신전에서 신탁을 받고자 했다.

 

그는 그곳에서 ‘생선과 산돼지와 불이 함께 만나는 곳에 도시를 세우라’는 신탁을 받았다. 안드로클레스는 에베소 지역에 이르러 바다가 인접한 미지의 땅을 발견하고 부하들과 함께 생선을 구워 먹던 중,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불똥이 튀어 코레소스(Koressos) 산에 불이 나고 말았다. 바로 그 때 그 숲 속에서 산돼지가 달려 나왔는데,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에베소가 신탁이 이루어진 ‘신이 원하는 장소’라고 여겼다. 그래서 이곳에 도시를 세우기로 결정했다.

 

안드로클레스가 그리스계 이오니아 도시 국가를 건설하면서 에베소는 점차 항구 도시로 발전을 거듭하며 성장하기 시작했고, 후에 페르시아와 리디아 크로이소스 왕의 침략, 알렉산더 대왕의 헬라제국, 로마제국, 셀주크 투르크, 오스만투르크 등으로 이어지며, 동양에서 서양으로 또는 서양에서 동양으로 진출하려는 세계 열강들의 각축장으로 변모하게 된다.

 

여신 숭배

 

[원형극장 - 에베소 고대도시]

 

에베소에서는 아주 오래 전부터 대대로 여신을 섬겨 왔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아데미 여신 전에서는 대모신인 키벨레(Cybele) 여신을 섬겼고, 키벨레의 또 다른 형태인 아데미 여신이 뒤를 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기독교가 에개해 연안도시로 전파되면서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가 그 자리를 대신 차지했다는 것이다.

 

에베소를 비롯한 아나톨리아의 에게해 연안 도시들은 가나안 원주민들이 아스다롯과 아세라 여신을 섬겼던 것처럼 예전부터 달의 여신인 키벨레(Cybele)라고 하는 여신을 숭배했다. 에베소도 예외는 아니어서, 풍요와 다산의 상징인 키벨레를 전통적으로 섬겨왔다.

 

그러다 아마존족이 추방되고 아테네에서 이주한 그리스인들이 에베소에 정착하면서, 그들이 그리스에서 섬기던 아데미를 아나톨리아로 가져오게 된다. 그때부터 에베소는 다산과 번성을 주관하며 출산과 갓난아기의 발육을 관장하는 아데미를 숭배하게 된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에베소를 비롯한 아나톨리아 에게해 인근 도시들은 모신(母神), 즉 ‘어머니 신’에 대해 사모하는 마음이 항상 사람들 마음 한쪽을 차지하고 있었다. 에베소의 처음 거주자들이 아마존 여인족이었던 것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그러다 바울이 3차 전도여행(A.D. 53-56년) 도중 에베소에 머물러 약 3년 동안 사역을 하면서, 에베소 시민들의 아데미에 대한 신앙심은 떨어졌고 은으로 만든 아데미상의 판매 부진으로도 이어졌다. 이에 ‘은장색 조합’(Guild)의 폭동이 일어나고 네로 황제를 비롯한 이후 황제들이 기독교를 탄압하고 박해하기 시작하면서 기독교는 위기를 맞게 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아데미를 숭배하는 신앙은 더욱 활발해졌다.

 

하지만 로마제국에서 박해를 가하면 가할수록, 기독교는 더 깊고 넓게 뿌리를 내리며 제국 곳곳으로 퍼져 갔다. 바울이 제국 내에 기독교를 전파한 후 약 250년이 지난 313년에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 칙령’에 따라 마침내 기독교가 로마제국이 인정한 공식 종교 중 하나로 인정받게 되고, 380년에는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테살로니키아 칙령’에 따라 로마제국의 국교(國敎)로 지정되기에 이른다.

 

313년 밀라노 칙령 이후, 그 동안 지하에서 제국의 박해를 피해 몰래 예배하며 숨죽여 왔던 기독교가 이제는 지상으로 올라와서 웅장하고 아름답게 교회 건물을 짓고 예배를 드리며 나래를 활짝 펴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기독교가 로마제국 전체로 퍼져가며 외면적으로 성장을 해 갈 때도, 아나톨리아의 에게해 인근 도시 시민들에게는 예전부터 그러했듯, 그들의 조상, 조상들의 조상 때부터 섬겨오던 여신(女神) 혹은 모신(母神)에 대한 그리움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마음 한편에 남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기독교를 접하고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여신을 향한, 그들에게 내재됐던 욕구와 욕망에 불을 지피는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431년 에베소 마리아기념교회에서 있었던 3차 에베소 종교회의가 그것이다.

 

제3차 에베소 종교회의, 그리고 신의 어머니가 된 마리아

 

[제3차 종교회의가 열린 마리아 기념교회 - 에베소 고대도시]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정식 종교로 공인받은 후 교회가 지상으로 올라와 메이저급 종교가 되어가면서, 교회는 여러 문제로 내홍을 겪는다. 주된 이슈는 바로 예수의 신성과 관련된 것들이다. 지금 우리는 당연한 듯 자연스럽게 믿고 있는 ‘삼위일체(Trinity)’나 ‘성육신’(Incarnation) 같은 중요한 신학적 개념들도 당시에는 ‘뜨거운 감자’였고, 수많은 논쟁을 일으키는 이슈였다. 물론 이 논쟁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것 때문에 327년에 제1차 종교회의가 니케아(Nicea, 현재 이즈닉)라는 곳에서 열렸고, ‘하나님과 아들 예수는 동일 본질’이라는 교리가 확정된다. 381년에는 제2차 종교회의가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현재 이스탄불)에서 개최되어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성령은 한 분’이라는 ‘삼위일체’라는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교리가 확정되었다.

 

예수의 신성 논의의 연장선상에 있는 ‘마리아는 누구인가?’에 대한 주제를 놓고, 3차 종교의회가 431년에 에베소에 있는 마리아 기념교회에서 개최되었다.

 

당시는 성모에 대한 신심이 고조되던 때라 교인들이 마리아를 ‘하나님을 낳은 분’이라 부르곤 했는데, 사실 이 존칭은 그리스 교부들이 자주 사용하던 관용어였다. 네스토리우스는 ‘그리스도를 낳은 분’이란 뜻의 ‘크리스토토코스(Christotokos)’로 부르라고 했다. 그의 논리인즉, 예수는 신격과 인격을 갖춘 분인데 성모는 ‘인간 예수를 낳으신’ 예수의 어머니지 결코 ‘신(神) 예수의 어머니’는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에 키릴은 예수의 신성과 인성은 한 위격으로 합치되었다고 주장했다.

 

데오도시우스 2세 황제가 안디옥 학파의 대표자인 콘스탄티노플 대주교 네스토리우스와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 키릴 간의 그리스도론 논쟁을 종식시키려, 431년 6월 7일 성모마리아 기념교회에서 종교회의를 열었다. 그 결과 네스토리우스를 출교시키고, 마리아에게 ‘하나님을 낳은 어머니’라는 뜻의 ‘테오토코스’(Theotokos)라는 존칭을 하기로 결의했다. 출교된 네스토리우스는 이집트로 유배되었는데, 436년 사막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하게 된다.

 

‘하나님과 아들 예수는 동일 본질이다’라는 명제에서 끝냈어야 했는데, 사고의 지평을 마리아에게까지 넓혔다. 마리아가 신성의 원천이 되었다는 해석에서 예배의 대상이 되었고, 마리아 숭배사상이 출발한 것이다. 제3차 에베소 종교회의를 통해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로 숭배할 것을 결의했던 것이다.

 

실제 에베소 공의회 결의가 <테오도시우스 법전>에 수록되어 로마의 법이 되었으며, 지금까지도 로마가톨릭에서는 마리아를 단순한 예수의 어머니가 아닌, 그 이상의 신적 능력을 소유한 분으로 교리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공식적으로 알렉산드리아의 주교였던 키릴이 네스토리우스보다 정치적인 수완이 뛰어났는데, 그 능력을 가지고 황제 및 다른 주교들을 이용하여 자신의 주장을 여러 사람들 앞에서 관철시키고, 자신의 주장에 반박하던 네스토리우스를 출교시켜버린 것이다.

 

그런데 겉으로 드러난 것만이 전부일까? 필자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상기했듯 에베소를 비롯한 에게해 연간 도시들은 전통적으로 여신을 숭배했다. 그래서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어 사람들이 기독교를 믿고 교회에 다니고 있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는 여신에 대한 마음의 한 구석에 남아 있었다. 이는 기독교가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들이었으므로, 사람들에게는 이 점이 불만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갑자기 알렉산드리아 주교인 키릴이 여신을 사모하는 많은 사람들의 염원을 들어주기 위해, 혹은 제국교회에서 본인의 정치적인 입지를 위해, 아니면 더 많은 사람들을 기독교 포교의 대상으로 삼아 포교하기 위해 마리아를 전면에 내세워 마리아의 신성에 관한 것을 이슈로 부각시켜 안건을 에베소 종교회의로 가져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종교회의에서 마리아 숭배 교리를 공식적으로 통과시킨 것은 아닐까?

 

에베소 지역은 아마존 여인족이 처음 터를 잡은 후 전통적으로 여신인 키벨레를 섬겨왔고, 그리스 이오니아인들이 점령한 후에는 아데미로, 기독교가 제국의 공식 종교로 공인된 후에는 마리아로 여신의 계보를 이은 것으로 보인다.

 

이유와 목적이 무엇이든,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는 3차 종교회의를 통해 로마제국 내에서 공식적으로 ‘인간 예수의 어머니’를 넘어 ‘하나님을 낳은 하나님의 어머니’로 지위가 수직 상승되어, 본인의 의중과 상관없이 그때부터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의 숭배의 대상이 됐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마리아의 집, 마리아 기념교회, 사도 요한 기념교회 등 예수의 제자인 요한과 예수의 어머니가 에베소로 이주하였던 것은 기록과 유적이 말해 주고 있다. 실제 제3차 종교회의 회의록에는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가 예수의 제자 요한과 함께 에베소로 이주했고 이곳에서 말년을 보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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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을 빼길 원하는 소원 문구 - 마리아의 집]

 

데일리연합(월간, 한국뉴스신문) 원소명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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