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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생생한 튀르키예 이야기] 형제 사랑의 도시, 필라델피아(Philadelphia)

데일리연합(월간, 한국뉴스신문) 터키 원소명 특파원 | 형제 사랑의 도시, 필라델피아(Philadelphia)

 

[필라델피아의 성요한교회 터]

 

튀르키예(터키)에서는 지난 7월 13일에 ‘쿠르반 바이람’(Festival of Sacrifice)이라는 연휴가 끝났다. 기자는 이미 지난 기사에서 튀르키예에서는 쿠르반 바이람에 소나 양을 잡아서 이웃과 친척, 그리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눔을 실천한다고 소개했다. (지난 기사 참고 : 쿠르반 바이람)

 

지금으로부터 약 2천 년 전에도 이렇게 나눔을 실천했던 도시가 있었는데, 소아시아 7대 교회 중 하나였던 ‘빌라델비아 교회’가 있던 도시 ‘필라델피아’(Philadelphia)이다.

 

개괄 설명

 

본래 빌라델비아라는 이름은 도시의 설립자인 앗탈로스 2세의 이름인 ‘필라델푸스(Philadelphus)’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필라델피아는 헬라어 ‘Philos’(사랑)와 ‘Adelpos’(형제)를 합친 것이며, 그 의미는 ‘형제 사랑’이란 뜻이다.

 

이곳의 현재 지명은 알라쉐히르(Alasehir)이다. 해석하면 ‘알라(神)의 도시’란 뜻이다. 셀주크투르크인들이 필라델피아를 점령한 후 이름을 알라쉐히르로 명명한 것은, 셀주크투르크가 이 아나톨리아를 점령하면서 주민들에게 이슬람교로 개종할 것을 강제적으로 혹은 회유하면서 줄기차게 요구했으나, 필라델피아만은 끝까지 개종하지 않고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기독교 신앙을 지키려 했던 모습에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투르크인들은 도시 이름을 통해 ‘이곳은 진정 신의 도시’라고 인정했던 것이다. 실제 필라델피아는 아랍인들의 침략 속에서도 끝까지 남아 있던, 소아시아 교회(기독교)의 마지막 보루였다.

 

그리고 미국의 펜실베니아 주에 있는 필라델피아라는 도시 이름도 여기 소아시아 필라델피아의 이름을 본 딴 것이다. 잘못 이용한 예이지만, 1993년 톰행크스 주연의 동성애를 주제로한 영화 '필라델피아'도 소아시아의 필라델피아에 전해져 오던 전승을 이용해서 제목을 정한 것이다. 물론 소아시아의 필라델피아는 동성애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도시이다.

 

[필라델피아(빌라델비아) 위치]

 

 

도시의 위치

 

필라델피아(알라쉐히르)는 리디아 왕국의 중앙 고원 비옥한 평야 지대에 있던 고대 도시로, 북서쪽 100km 지점에는 두아디라(현재 악히사르), 서쪽 130km 지점에는 서머나(현재 이즈미르), 남동쪽 85km 지점에는 라오디게아, 히에라볼리(현재 파묵칼레)가 위치해 있어서 예전부터 도시와 도시를 연결해 주는 주요한 관문(Gateway) 역할을 해왔다.

 

도시의 역사

 

필라델피아(Philadelphia)는 BC 150년경 페르가몬 왕 앗탈로스 2세에 의해 건설됐다가, AD 130년 로마에 귀속되었습니다. 필라델피아라는 이름은 앗탈로스 2세의 이름인 ‘필라델푸스(Philadelphus)’에서 유래되었는데, 그 이름과 함께 감동적인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앗탈로스 2세는 페르가몬(Pergamon) 왕국 앗탈로스 왕조의 4대 왕인 유메네스 2세의 동생이었다. 유메네스 2세는 전쟁에 나갈 때마다 정치와 군사에 대한 지식이 많은 동생 필라델푸스, 즉 앗탈로스 2세에게 내정을 맡기곤 했다.

로마는 인기가 많은 필라델푸스를 필라델피아의 통치자로 세워놓고 자기들 뜻대로 이용하려고 필라델푸스를 충동하였으나, 그는 여기에 넘어가지 않고 끝까지 형인 유메네스 2세에게 신하로서 충성을 다했던 것이다. 유메네스 역시 죽을 때 자식이 아니라 동생인 필라델푸스(앗탈로스 2세)에게 왕위를 계승해 주게 된다.

앗탈로스 2세는 형에게서 왕위를 물려받고 동부 진출의 전초기지로 이 도시를 건설하는데, 도시 이름은 자기의 원래 이름을 따 필라델피아(Philadelphia, 빌라델비아)라고 명명했다.

 

필라델피아는 많은 지진 피해를 겪었다. AD 17년 지진으로 인해 도시가 완전히 파괴되었으며, 처음에는 시민들이 잘 대처하였으나 계속되는 지진으로 인해 도시를 떠나 넓은 평원에 자리잡게 된다. 그리스 지리학자 스트라보는 이렇게 서술했다.

“필라델피아는 지진이 자주 일어나 집이 끊임없이 허물어졌고, 도시 또한 크게 붕괴됐다. 그러므로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별로 많지 않았고, 대부분 기름진 땅이 있는 농촌에서 살았다. 거주지가 불안정할 때마다, 그들은 농촌에서 사는 것을 더 선호하게 됐다.”

 

[끝없이 펼쳐진 필라델피아의 포도농장]

 

포도의 고장, 필라델피아

 

이곳은 예전부터 농업과 가죽제품, 직조업이 주요 산업이었으며, 농산물로는 포도를 주로 재배하였는데, 지금도 이곳에 수십 킬로미터의 포토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실제로 이곳 필라델피아, 즉 알라쉐히르를 비롯한 마니사 주(州)에서는 튀르키예에서 가장 많은 포도를 생산하고 있다. 신문보도에 따르면 2021년 마니사 주에서 생산된 포도 중 23만 톤이 해외로 수출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투르크인들이 아나톨리아를 점령하기 전에는 빌라델비아 교회에서 소아시아 내 300여 교회에서 쓰는 성찬식 포도주를 무료로 공급하여, 필라델피아(Philadelphia)라는 이름답게 형제 사랑을 몸소 실천하였다 한다.

 

[필라델피아의 포도농장]

 

[필라델피아의 포도농장]

 

[필라델피아의 포도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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