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연합(월간, 한국뉴스신문) 홍종오 기자 | 한국국학진흥원은 '조선의 출판문화'라는 주제로 스토리테마파크 웹진 담談 10월호를 발행했다. 조선의 출판 역량과 지식 유통과정에 대한 모습을 다양한 시각에서 살펴보았다.
서적의 유통이 곧 정보의 확산
<조선 시대 서적의 보급과 교육기관의 장서 관리>에서 육수화 연구원(한국고전번역원)은 조선의 출판 활동에 대한 전체적인 조망과 함께 서적의 보급 및 관리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살펴본다.
조선 시대 서적의 출판은 교서관에서 담당하였으며, 서적 보급은 임금이 내려주는 반사의 형식이었다. 조선 후기에는 1776년(정조 즉위년) 정조가 교서관을 규장각에 편입시키며, 규장각이 서적의 출판과 유통까지 관장하는 기구가 되었다. 반사의 대상은 주로 세자시강원, 성균관, 사부학당, 향교, 사액서원 등 교육기관이었다. 세자시강원에는 도서관 외에도 시강원책역소(侍講院冊役所)라는 서적을 출판할 수 있는 별도의 기관이 존재하였다고도 하며, 향교와 서원은 별도의 건물을 지어 서적을 보관하고 도서 목록을 만들어 서적의 출납을 엄격히 확인하는 등의 유사한 규정으로 관리하였다.
한편, 조선 전기 훈구세력은 서적의 유통이 곧 자신들의 권력이 흔들리는 조치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서적의 유통은 막을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었다. 조선 후기 등장한 세책방(貰冊房)과 책을 사고파는 서사는 지식의 대중화와 신분제의 와해에 커다란 기폭제로 작용하기도 했다.
유학자의 문집이 절에서 출판?
<안동의 대표 출판소, 봉정사>에서 이상백 교수(부산대)는 안동 봉정사(鳳停寺)의 출판 공간으로서의 특수했던 역할에 대하여 알아본다. 봉정사 인근에는 많은 사찰이 분포해있다. 또한 학봉 김성일(金誠一, 1538-1593)의 종택(宗宅)을 비롯하여 서원 및 재사 등이 두루 자리하고 있어 불교 문화와 유교 문화가 고르게 서려 있다. 이러한 환경의 영향인지 조선 시대 봉정사에는 사대부, 승려 가리지 않고 많은 이들이 방문했고, 안동 지역에서 다양한 서적을 출판한 대표 출판소로 자리매김하였다.
조선 시대 전국의 사찰은 오랜 기간 불서를 출판한 경험을 바탕으로 문집, 족보 등 지역 사회에서 요구하는 출판을 담당하기도 했다. 봉정사에서도 안동 지역 사대부의 저술, 문집을 출판하였다. 채제공(蔡濟恭, 1720-1799)의 문집인 『번암집(樊巖集)』이 봉정사의 간역소에서 출판되었다.
불서 출판에 대한 흥미로운 기록 두 점도 있다. 바로 1769년(영조 45)에 제작된 「경상좌도안동서영천등산봉정사대장경루판부수급인출체례규모기」와 1770년(영조 46)에 제작된 「안동부서영천등산봉정사고법당대장판전등촉헌답기」 현판이다. 현판에는 월암 지한(月岩旨閒)과 설월 관성(雪月觀性)이 주도하여 전답을 시주 받아 불서 출판을 진행했다고 언급되어 있다. 또한 봉정사에는 당시 인출사업을 진행할 때의 지침도 마련되어 있었다. 간단한 지침이지만 상당히 조직적인 업무 구조에서 진행된 대규모 사업이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이 책 좀 구해주겠소
이외에도 웹진 담談에서는 '조선의 출판문화'에 대한 다양한 에피소드를 다룬다.
<방판 스님>에서는 최흥원의 역중일기(曆中日記) 속 1762년 8월 27일 기록을 발췌하여 동화사의 스님인 한총이 불가가 아닌 유가 서적을 판매한 사연을 웹툰으로 선보인다.
<책 읽어주는 사람, 전기수(傳奇叟)>에서는 뮤지컬 <금란방>을 소개하며 전기수의 유명세와 더불어 그들이 돈을 벌려면 꼭 필요한 이야기, 그것이 담긴 것이 책이라고 떼려야 뗄 수 없는 3요소를 언급한다.
비야의 사건일지 <여섯 권의「규방미담」>에서 산비는 세책방에 들렸다가 같은 자리가 찢긴 책들을 수상히 여기고 추리를 이어 가다 결국 어음을 훔친 대도를 잡는다.
나무판에 새긴 이름, 편액 <무진장(無盡藏) 이어질 기억 저장소, 장판각(藏板閣)>에서는 도산서원의 장판각과 병산서원의 장판각을 통해 조선의 출판 문화를 안내한다.
웹진 담談 10월호는 한국국학진흥원 스토리테마파크 홈페이지(http://story.ugyo.net/front/webzine/index.do)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