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판빙빙(范冰冰)의 대표작 ‘나는 반금련(潘金莲)이 아니다’
2017년 칸 영화제가 5월 17일 평가위원회 팬미팅을 거행했다. 그런데 현장에서 실수의 한 장면이 출현했다. 사회자는 평가위원의 한 명인 판빙빙(范冰冰)을 소개할때 그녀의 대표작을 ‘아가씨’라고 잘못 말했다. ‘아가씨’란 박찬욱 한국 감독의 작품이다.
잘못을 발견한후 사회자는 현장을 향해 사과를 하면서 “판빙빙의 대표작은 ‘나는 반금련이 아니다.”이라고말했다.
보건대 매우 평범한 이 오락 뉴스에 매우 재미있는 점이 있다. 바로 사회자가 선포한 ‘나는 반금련이 아니다’의 영어 번역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은 ‘아이 앰 노트 진롄 판(I Am Not Jinlian Pan)’이 아니라 ‘아이앰 노트 마담 보바리(I Am Not Madame Bovary, 나는 보바리 부인이 아니다)’여야 하는 것이다.
이 문제에서 중국측의 이번 참가자가 번역차원에서 확실히 애를 쓴 것이 엿보이지만 가석하게도 이 노력이 제대로 되지 못했다.
보발리 부인은 19세기 플로베르(Gustave Flaubert)프랑스 작가의 동명소설로서 소설중 엠마는 유년시기 어머니를 잃은 농가녀이지만 부친의 간절한 기대하에 귀족화 교육을 받았다. 성장한후 미인으로 된 엠마는 성실한 의사 보바리에게 시집가 ‘보바리 부인’으로 됐다. 그러나 그는 하늘이 자기에게 안배한 평범한 운명을접수하지 않고 남편의 자기에 대한 사랑에 의존해 빈번하게 바람을 피우면서 최종적으로 한 난봉꾼의 얼림에 들어 남편이 힘들게 번 재산을 탕진했다.
채주가 빚 독촉을 할때 보바리 부인은 핍박에 의해 자살하고 빈곤에 처한 남편도 고통속에서 사망했다.
만일 직관적으로 보면 보바리 부인은 확실히 서방판의 반금련이며 두 사람의 혼인에 대해 충성스럽지 못한‘남편 그릇치기’ 전형이다.
반금련은 무대(武大)를 독살하고 보바리 부인은 남편을 파산시켰다. 그런데 비교해 보면 보바리 부인은 더욱증오스러운 점이 있다. 그녀의 남편은 반금련의 남편처럼 ‘세치 남자도 아니고 마른 나무 껍질’인 무대가 아니라 자산이 적지 않으며 그녀를 매우 사랑한 의사이다. 이것이 그녀의 불충행위를 더욱 가증스럽게 한다.
그러나 반금련과 보바리 부인이 동서방 독자들에게 남긴 문학적 구상은 전혀 다르다. 플로베르는 소설중 원래 매우 가증스러운 인물에게 전례없는 동정을 부여했다. 이러한 서술은 시내암(施耐庵)의 ‘수호전(水浒传)’이나 난릉 소소생(兰陵笑笑生)의 ‘금병매(金瓶梅)’에도 출현하지 않았다.
사실상 플로베르가 이러한 동정심을 너무 과분하게 표현해 보바리 부인이 방금 출판됐을때 프랑스 당국은이 소설이 ‘사회 도덕과 풍속을 문란하게 하며 종교를 더럽히고 여성의 바람행위를 부추긴다’며 플로베르를기소했다. 그러나 상상외로 이 책의 대량의 독자들 특히 여성 독자들의 항의를 받았다.
사람들은 보바리 부인을 위해 변호를 했다. 플로베르 본인의 변호 어구는 더욱 절묘하다.”내가 바로 보바리부인이다.”
반금련과 보바리 부인, 동서방의 이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태도는 사실 같지 않는 세계관을 반영했다. 중국인이 명분을 지킬 것을 강조하는 태도와 달리 유럽인들은 자유와 행복에 대한 갈망이라는 측면에 대해 긍정과 동정을 표시한다.
‘반금련’이 중국어에서는’잡년’이라는 욕하는 말과 달리 ‘보바리 부인’은 서방 언어중에서 더욱 정면적 의의를 가지고 있다.
‘나는 반금련이 아니다’를 ‘나는 보바리 부인이 아니다’로 번역하는 것이 정교로운 것 같지만 기실은 매우 졸렬하다.
이렇게 번역하는 것보다 차라리 플로베르의 그 명언 ‘내가 바로 보바리 부인’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이 영화주인공 리쉐렌(李雪莲)이 운명에 굴하지 않는 투쟁정신을 반영하는 편이 더 바람직하다.
그러면 ‘반금련’을 정확하게 번역할 영어 단어가 없을까? 없는 듯하다. 서방인들은 우리 주변 사람들처럼 몇백년 시간 흥이 나서 한 방탕한 여자를 호되게 꾸짖으로 하지 않을 것이다.
2017戛纳电影节17日举办评委会见面会,不过现场出现乌龙一幕:主持人介绍评委之一范冰冰时,误将她的代表作说成《小姐》(韩国导演朴赞郁的代表作)。发现错误后,主持人向全场道歉:“(范冰冰的代表作)应该是《我不是潘金莲》。”
这则看似挺普通的娱乐新闻中有一个挺有意思的点,就是主持人所宣布的《我不是潘金莲》的英文译名并非我们所想象的《I Am Not Jinlian Pan》,而是《I Am Not Madame Bovary》(我不是包法利夫人)。可以看出中方的此次送展者在翻译上确实下了一番苦工,很可惜,这份苦工并不到位。
包法利夫人出自法国十九世纪作家福楼拜所写的同名小说。在小说中,主人公爱玛原本只是个幼年丧母的农家女,却在父亲的殷切期望下受了一整套贵族化的教育。长大后,出落成美人的爱玛嫁给了老实的医生包法利,成了“包法利夫人”,但她却不愿意接受上天安排给自己的平凡的命运。依仗丈夫对自己的宠爱,频繁在外出轨,追求自己所渴望的爱情,最终她受了一位花花公子的欺骗,丈夫辛苦积蓄的家财被骗光。当债主上门逼债时,包法利夫人被迫自杀,留下穷困潦倒的丈夫在痛苦中死去。
如果直观地看,包法利夫人确实是个西方版的潘金莲,两人都是对婚姻不忠的“坑夫”典型:潘金莲毒杀了武大,而包法利夫人则害得丈夫破产。仔细比较起来,包法利夫人似乎有更多可恨之处——毕竟她的丈夫包法利并非“三寸丁,枯树皮”的武大,而是小有资财且十分宠爱她的医生,这使得她的不忠更显可恶。
然而,潘金莲与包法利夫人留给东西方读者的文学意象却又是截然不同的,福楼拜在小说中给予了这个原本可恨的角色前所未有的同情,这种笔调,无论是施耐庵的《水浒传》,还是兰陵笑笑生的《金瓶梅》,都是没有的。事实上,由于福楼拜过于表现这种同情,在《包法利夫人》刚刚出版时,法国当局曾经以该小说“伤风败俗,亵渎宗教,教导女性出轨”为由起诉福楼拜,却意想不到地受到了该书的大量读者尤其是女性读者抗议,人们纷纷为包法利夫人辩护。福楼拜本人的辩护词则更绝——“我就是包法利夫人”。
潘金莲和包法利夫人,东西方对这对相似人物的迥异态度,其实反映了双方不同的世界观——与中国人强调安守名分不同,欧洲人更愿意对人性中渴望自由、渴望幸福的那一面给予不同程度的肯定和同情。
与“潘金莲”在中文词汇中等同于“荡妇”、是句骂人话不同,“包法利夫人”在西方语境中其实有更多正面的意义。将《我不是潘金莲》翻译为《我不是包法利夫人》其实似巧实拙,与其如此,不如干脆引用福楼拜的名句,将其翻译为《我就是包法利夫人》,能更传神地反映该片主人公李雪莲不屈于命运的抗争精神。
那么,到底有没有一个词汇能够准确地将“潘金莲”翻译成英文呢?很遗憾,似乎没有——因为西方人并不肯像我们周围有些人,如此兴致勃勃地花上几百年时间,去痛骂一个荡妇。
/新华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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