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연합 (SNSJTV. 아이타임즈M) 윤태준 인턴기자 | 의사·약사·제약회사·도매업체 등 의료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비밀스러운 거래, 리베이트는 과연 어떻게 이뤄질까.
특정 이윤을 추구하는 집단이 기득권을 형성하고 이익을 보전하려는 움직임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능하다. 하지만 만약 그러한 갈등이 반복되어 국민에게 피해가 전가된다면, 적극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본지는 시리즈 보도를 통해 의사, 약사, 제약회사, 도매업체 등이 얽힌 구조를 살펴보고, 특히 먼저 ‘의사’ 집단이 어떻게 리베이트(수수료)를 통해 막대한 이익을 얻어내는지 분석해보려 한다.
짧은 진료와 낯선 약 이름... 그 속에 숨겨진 함의
최근 병원을 방문해본 적이 있는가? 아파서 병원 문턱을 넘으면, 의사와는 2~3분 남짓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의사는 3일치의 약을 처방해주며, “더 아프면 다시 와보라”고 말한다.
환자는 카운터에서 처방전을 건네받고 약국으로 직행한다. 그리고 "식후 30분에 드세요"라는 안내를 듣고 약을 복용한다.
대다수 환자들은 처방전에 적힌 어려운 약 명칭을 살펴보지 않고 넘어가기 마련이다. 그런데 바로 이 처방전에 리베이트의 단서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아래 사진은 기자가 지난1월 15일, 몸살감기로 A 병원에서 직접 받은 실제 처방전이다.
보통 환자들은 “담당 의사가 내 증상에 맞춰 처방해준 약이겠거니”하고 여긴다. 그런데,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의외의 사실을 알 수 있다.
레보투스정은 현대약품의 약품명으로, 기침‧가래 증상을 완화하는 ‘진해거담제’ 역할을 한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왜 ‘진해거담제’라는 성분 대신 특정 제약회사의 제품명이 적혀 있을까?
현대약품 외에도 진해거담제를 만드는 기업은 수십 곳에 이른다. 처방 받은 나머지 의약품 코대원정은 대원제약, 씨잘정은 한국유씨비제약이 만든 약품이다.
결국, 환자는 담당 의사의 선택에 따라 특정 회사가 만든 진해거담제를 먹게 된다. 의사는 여러 선택지가 있음에도 현대약품의 약을 처방했다. 이 상황에서 흔히 알려져있는 리베이트가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병원을 누비는 제약사 영업사원... 의사의 '절대권력' 때문
병원 대기실에 앉아보면, 세련된 정장을 입고 노트북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대부분 제약회사 혹은 의약품 도매업체의 영업직 직원이다. 이들은 방문한 병원의 의사에게 자신들의 약을 처방해 달라고 영업행위를 한다.
왜 의사에게 영업하는지는 간단하다. 특정 의약품이 얼마나 팔릴지는 ‘처방권’을 쥐고 있는 의사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의료업계에서 의사의 권력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다.
의약분업 그 전과 후, ‘처방권’이라는 권력
2000년 7월 1일 이전, 의사들의 약 처방 권한은 더 막강했다. 의약분업 전에는 의사가 직접 약을 조제하고 처방까지 함께 했다. 처방권은 물론 조제권까지 행사할 수 있으니, 이익이 많이 남는 약을 마음대로 선택해 환자에게 제공할 수 있었다.
이같은 문제점을 해소하고자 당시 김대중 정부가 강력히 추진해온 제도가 바로 ‘의약분업’이다. 그 결과 의사와 약사의 권한을 법적으로 분리했지만, 의사의 처방권 자체는 그대로 남았다.
따라서, 제약회사들은 약을 조제하는 권리를 갖고 있는 약사보다, 처방전을 쓰는 의사를 먼저 공략하게 된다. 결국 제약회사는 의사에게 리베이트를 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리베이트의 해결책은?
과도한 리베이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몇 가지 방법이 거론된다. 다만 그 실효성과 한계 역시 분명하다.
성분명 처방
첫 번째로, 처방전을 특정 회사 제품명이 아닌 ‘성분명’으로 발급하자는 의견이다. 예컨대, 기침‧가래 증상 완화를 위해 레보투스정(제품명) 대신 단순히 ‘진해거담제(성분명)’라고 적는 식이다. 약국에서는 이 성분이 들어간 다양한 제약회사의 제품 중 하나를 조제해줄 수 있다.
다만, 이 경우 약사 권한이 강해지면서 제2차 리베이트가 약사를 대상으로 벌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대체조제권 확대
두 번째로, 약사의 대체조제권을 넓히는 방법이 있다. 이는 의사가 처방한 약이 비싸거나, 복제약(제네릭)으로 대체 가능하다고 판단되면 약사가 다른 제품으로 바꿀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는 제도다.
그러나 현행 약사법에 따르면, 대체조제를 하려면 의사에게 일일이 보고하고 허락을 받아야 한다. 대체조제가 가능한 의약품 목록도 제한적이다.
더욱 심각한 구조적 문제는 약국은 병의원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약국을 찾아오는 환자의 대부분은 병의원을 들렸다 오기 때문에, 병원 없이는 약국 스스로 영업하기는 매우 힘들다.
주변을 한 번 둘러보면, 병원 없이 약국만 홀로있는 경우를 눈뜨고 찾기 힘들다. 실제 대체조제율은 1%도 채 되지 않는다는 약사회의 통계가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유통투명성 확보
마지막으로, 특정 병의원이 소수의 의약품만 유독 많이 처방하고 있음을 찾아내면 리베이트 의혹을 밝혀낼 가능성이 커진다. 이를 위해 도매업체를 통한 의약품 유통 과정을 데이터화하고 투명하게 공개하자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보를 중앙에서 모으려면 '개인정보 보호법'에 저촉될 수 있다. 환자의 개인정보, 병원의 영업기밀 등이 얽혀 있어 공개 범위와 활용 방안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리베이트 후폭풍, 결국은 환자의 몫
의사의 리베이트 문제를 단순히 ‘개인의 탐욕’ 정도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제약회사는 영리 목적의 기업이므로, 의사에게 지급한 리베이트 비용을 고스란히 소비자(환자)에게서 회수하려 든다. 의약품 가격이 오르거나, 선택할 수 있는 의약품이 제한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또한, 특정 제약회사와만 거래가 이뤄지면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제약업계 전반의 발전이 느려지고 궁극적으로는 의약품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 아울러 환자들이 합리적으로 의약품을 선택할 기회를 잃게 될 수도 있다.
의사와 제약사 동시 처벌하는 '쌍벌제'... 실효성 미비
정부는 2011년부터 ‘쌍벌제’를 시행하고 있다. 리베이트를 준 제약사와 받은 의료인을 모두 처벌하는 제도다. 하지만 실제로 제약사와 의사의 은밀한 거래를 입증해 처벌까지 이어진 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
의사 입장에서는 “해당 환자 상태에 A약이 필요해서 처방했다”고 주장하면, 수사기관이 이를 뒤집어 증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본지는 앞으로 이어질 시리즈에서 이들의 관계가 어떻게 형성되었고, 어떤 구조적인 문제를 야기하는지 더 심도 있게 파헤칠 예정이다.
리베이트는 단순히 의사의 도덕성 문제가 아니다. 나아가서는 의료 서비스를 받는 국민들에게 그 피해가 돌아갈 수도 있다.
의협과 정부 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의료계 내부의 비밀스러운 거래 구조를 투명하게 드러내고,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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