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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복지

[기획사설] 9월 4일, 치욕의 날을 기억하자.

 

 

데일리연합 (SNSJTV) 조성윤 기자 |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117년 전, 1909년 9월 4일... 

우리 민족에게 결코 잊어서는 안 될 날이다.
바로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한 뒤 청나라와 이른바  '간도협약'을 체결한 날이다.

 

당시 대한제국은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빼앗긴 상태였다. 일본은 우리의 의사와 무관하게 청나라와 간도 문제를 협상했고, 그 과정에서 철도 부설권과 광산 채굴권 등 일본의 이권을 확보하는 대신 간도 지역에 대한 권리를 청나라에 넘겼다는 것이 역사학계와 관련 연구자들이 제기해 온 핵심 문제다.


한국역사영토재단 장계황 대표는 이를 두고 “외교권을 빼앗긴 나라가 자신의 영토를 스스로 처분할 수는 없다”며 간도협약의 법적 효력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물론 간도 영유권 문제는 오늘날 국제법과 한중 관계 속에서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 단순히 과거의 역사적 주장만으로 영토 반환을 현실화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이 문제를 외면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 필요한 것은 감정적인 영토 구호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과 국제법에 대한 냉철한 연구, 그리고 우리 역사에 대한 국민적 기억이다.


간도는 독립군의 피가 흐른 땅이었다
간도를 단순히 지도 위에 표시된 옛 영토로만 기억해서는 안 된다.
그곳은 일제강점기 우리 독립운동가들이 목숨을 걸고 싸웠던 독립운동의 성지였다.
만주와 간도 일대에는 수많은 한인들이 이주해 터전을 일구었고, 그곳에서 독립군의 무장투쟁이 조직됐다.

 


1919년 3·1운동 이후 만주지역에서는 독립군 세력이 본격적으로 성장했다.

북로군정서의 김좌진 장군, 대한독립군의 홍범도 장군, 그리고 수많은 이름 없는 독립군들이 간도와 만주를 무대로 일본군과 싸웠다.


특히 1920년의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은 우리 독립전쟁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역사적 승리다.
홍범도 장군이 이끄는 대한독립군을 비롯한 독립군 연합부대는 봉오동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뒀다.


이어 김좌진 장군이 이끄는 북로군정서군을 중심으로 한 독립군 부대는 청산리 일대에서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만주는 그들에게 단순한 피난처가 아니었다.
나라를 되찾기 위해 싸우는 전장이었다.
독립군들은 추위와 굶주림을 견뎌가며 산악지대를 누볐고, 가족과 고향을 뒤로한 채 조국의 독립을 위해 피를 흘렸다.


그 땅에서 수많은 독립군이 쓰러졌다.
오늘 우리가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국내에서 벌어진 독립운동만의 결과가 아니다. 간도와 만주, 연해주 등 국경 밖에서 목숨을 걸고 싸웠던 독립운동가들의 투쟁도 그 역사의 한 축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땅을 기억하고 있는가?
문제는 오늘날 우리가 간도와 만주에서 벌어진 독립운동의 역사를 얼마나 제대로 기억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우리 국민에게 한반도를 그려보라고 하면 대부분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한 지도를 그린다.
그것은 현재의 국경을 인식하는 자연스러운 결과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간도와 만주 일대에서 살아온 우리 민족의 삶과 독립운동의 역사는 그보다 훨씬 넓었다.


간도에서 학교를 세우고, 교회를 세우고, 독립운동 기지를 만들고, 독립군을 양성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용정, 명동촌, 봉오동, 청산리라는 이름에는 우리 민족의 피와 눈물이 서려 있다.
명동촌에서 교육을 통해 민족의식을 일깨운 사람들, 독립군을 지원했던 주민들, 일본군의 탄압을 피해 산으로 들어간 사람들, 그리고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죽어간 수많은 민초들이 있었다.
간도는 바로 그런 역사의 현장이었다.


‘간도협약’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역사적 망각이다
영토 문제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단순히 땅을 잃는 것이 아니다.
그 땅을 잃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한 세대가 기억하지 않으면 다음 세대는 질문하지 않는다.
질문하지 않으면 연구도 사라진다.


연구가 사라지면 역사적 사실을 둘러싼 논쟁에서도 우리의 목소리는 약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간도 문제는 오늘 당장 중국과 영토분쟁을 벌이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정부가 외교적 현실을 무시하고 무리한 영유권 주장을 하자는 것도 아니다.
우선 해야 할 일은 역사를 연구하고 기록하고 교육하는 것이다.


간도협약이 국제법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당시 대한제국의 외교권 박탈이 영토 문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백두산정계비와 토문강·두만강 문제는 무엇인지, 간도 지역에서 우리 민족이 어떻게 생활했는지, 그리고 그곳에서 독립군이 어떻게 싸웠는지를 학문적으로 치밀하게 연구해야 한다.
독립군의 발자취를 역사교과서에 되살려야 한다


특히 간도와 만주의 독립운동사는 단순한 영토 논쟁의 소재로 다뤄져서는 안 된다.
그곳에서 싸운 독립군들의 역사는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홍범도 장군의 봉오동 전투와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 대첩을 기억하는 것은 특정 지역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선조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위해 싸웠는지를 기억하기 위해서다.
독립군에게 국경은 단순한 선 하나가 아니었다.
그들에게 만주는 조국의 독립을 준비하는 공간이었고, 간도는 민족의 삶과 독립운동이 함께했던 터전이었다.


그곳에서 흘린 피를 기억한다면 우리는 간도를 단순한 ‘옛날의 땅’으로만 바라볼 수 없다.
정부도 이제는 역사영토 연구를 지원해야 한다
정부가 해야 할 일도 분명하다.


당장 영토 반환을 외치는 것보다 먼저 관련 연구기관과 학술단체가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간도협약 관련 사료를 체계적으로 발굴하고, 중국과 일본의 관련 사료까지 비교·검증하며, 국제법적 쟁점을 객관적으로 연구해야 한다.


또한 간도와 만주지역 독립운동 유적을 보존하고 국민에게 알리는 작업도 중요하다.
독립군의 전투지역과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지를 연결한 "만주·간도 독립운동 역사 지도"를 제작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아이들이 교과서에서 봉오동과 청산리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 전투가 어디에서 벌어졌으며 왜 그곳에서 독립군이 싸워야 했는지를 함께 배울 수 있어야 한다.

 


9월 4일,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가?
1909년 9월 4일.
그날 체결된 간도협약을 둘러싼 법적·역사적 논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역사적 사실 하나는 있다.
간도와 만주 일대에서 우리 선조들이 살았고, 그곳에서 독립군이 일본 제국주의와 싸웠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싸움의 궁극적인 목적은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것이었다.
오늘 우리는 그들의 피와 희생 위에서 대한민국을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최소한 기억해야 하지 않겠는가.·
9월 4일을 단순히 달력 속 하루로 흘려보내지 말자.
‘치욕의 날’을 기억하는 것은 과거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다.
역사를 잊지 않고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다.
간도를 되찾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를 떠나 먼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우리의 역사를 우리가 기억하고, 우리 역사를 우리 스스로 연구하는 것이다.
봉오동에서 쓰러진 독립군을 기억하고, 청산리에서 피 흘린 독립군을 기억하자.
이름 없는 수많은 독립군과 만주의 민초들을 기억하자.
그리고 그들이 싸웠던 땅과 그들이 남긴 역사를 기억하자.

 

9월 4일, 이 날은 간도를 기억하는 날이다.
땅을 기억하는 것은 역사를 기억하는 것이고,
역사를 기억하는 것은 독립군의 희생을 기억하는 것이다.
잊지 말자.
그리고 기록하자.
연구하자.
다음 세대에게 끝없이 가르치자.
그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독립군에게 바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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