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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의보 교수, 교육의 본질을 회복하는 학교

심 의 보 (충북교육학회장∘교육학박사)

등록일 2021년02월17일 15시14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교육은 희망, 국가 사회의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

코로나19에 빼앗긴 산하에 어김없이 새해가 왔다. 새해는 새로운 시작이기를 바란다. 후천개벽(後天開闢), 역사의 개벽이기를 바란다. 여명(黎明)의 해돋이를 맞는 마음은 신새벽 이슬 젖은 풀밭을 헤집고 가는 희망이며, 삶의 쇄신과 인격의 변혁과 사회의 혁신을 기구하는 처절한 몸부림이다.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내가 될 수 없듯이, 내일의 내가 오늘의 나와 달라져 있기를 바라는 결연한 몸짓이다.

 

교육은 희망이다.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이다. 국가사회의 경쟁력은 곧 인재의 경쟁력이다. 우리 사회의 성장동력은 새로운 것을 생각하고 만들어 내는 ‘인적 자본’의 육성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교육은 어떠한가?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학력은 저하되고 인성은 무너지고 있다. 실패한 교육을 되돌리기는 지극히 어렵다. 실패를 교훈삼아 더 나은 교육으로의 발전은 가능할 것인가?

지속가능한 사회의 발전을 위해 교육에서 진정 변화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기본으로 돌아가는 교육이다. 인격의 완성, 사회정의의 확립, 국가의 발전이라는 도전에 대하여 결연히 대응하는 것이다. 교육평등 이데올로기와 허위의식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 본질을 벗어남으로 비롯된 반복되는 교육의 실패를 멈추어야 한다. 고통과 갈등의 학교를 즐거운 배움과 행복한 가르침의 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특별히 유념해야 할 것은 국가나 정당은 그들의 목적을 위해서 교육을 지배하고 소유하려는 시도를 버려야 한다. 모든 세력들은 젊은 세대를 자기편에 유리하게 교육시키려 한다. 젊은 세대를 소유하면 미래를 소유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무엇을 목표로 어떻게 교육하라고 지시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교육은 그 무엇으로부터 직접 그 목표와 방법에 관해서 명령을 받을 수 없다.

 


 

교육평등 이데올로기와 허위의식에 대한 반성

절대적 평등교육이 능력 위주의 시장사회를 대신할 유일한 대안인가? 재능이 있는 사람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으면서 재능과 소질의 불공정한 분배를 바로 잡을 수는 없는 것인가?

오늘의 학교는 개인의 차이를 무의미하게 만들고 인격을 도식화하는 절대적 평등을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교육에서의 평등은 차이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차이를 인정하고 계발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 차이를 공정하고 법적 합리성에 근거해 이용하는 것이다.

‘드 트라시’에 의해서 처음 사용된 ‘이데올로기’ 개념을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허위의식’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교육의 본질에 의거할 때 교육평등 이데올로기는 일종의 '허위의식'이다. 인간의 능력과 소질은 차이가 있고, 교육의 유일하고도 중요한 공헌은 인간이 자기의 재능에 가장 잘 어울리고,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고 만족을 느낄 수 있는 분야를 향해 나아가도록 도와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교육 평등은 사람들의 타고난 재능을 사회의 공동재산으로 여기고 그 재능을 활용해 어떤 이익이 생기든 그것을 공유하는 것이다. 우리의 사회와 교육계는 이제 교조적인 이념적 허울, 상투적 허위의식에서 벗어나 역사에 대해 보다 책임있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재능있는 사람을 격려하고 개발하여 이용하게 하되, 그 재능으로서 시장에서 거둬들인 대가를 공동체 전체에게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롤즈’가 『정의론』에서 말하듯이 가장 빠른 주자에게 족쇄를 채우지 말고 최선을 대해 달리게 해야 한다. 단, 우승은 그만의 것이 아니라 재능이 부족한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야 한다.

 


 

실패를 가져오는 반복되는 실수, 교육의 본질을 지향해야

존 듀이를 중심으로 전개된 진보주의(progressivism)는 교사중심이라는 기존의 틀을 거부하고 아동중심이라는 깃발아래 1920-1930년대 미국 전역을 휩쓸었던 교육이다. 루소의 성선설에 근거한 아동관과 실용주의적 철학을 바탕으로 교육의 목적을 아동의 복지에 두고 흥미위주의 교육을 강조했다. 그런 교육이 1940년대부터 시들해지기 시작하더니 1957년 소련의 스푸트니크 위성발사로 결정적으로 쇠퇴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국가경쟁력에서 타국에 뒤처지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곧바로 배글리를 중심으로 미국의 교육향상을 위한 본질주의(essentialism) 교육에 착수했다. 교육은 인류가 쌓아놓은 문화유산 속에서 그 정수(精髓), 즉 본질적인 것(essence)을 차세대에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주개발에 나섰다. 이후 인터넷과 위성항법시스템(GPS)을 개발했고 유인 우주선 아폴로를 달에 착륙시켰다.

 

오늘 우리의 교육은 거꾸로 가고 있다. 4차산업혁명에 대응하는 창의력 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교사의 솔선적인 지도를 폐단이라고 규정하여 학교붕괴와 공교육 위기를 가져왔다. 얄팍한 흥미위주의 교육이 고상한 흥미, 영원히 가질 수 있는 흥미의 기회를 박탈하고, 아동들에 대한 지도와 보호라는 교사의 책임성과 지도성을 위축시켰다. 학습량의 부족과 교권의 실추는 곧 학력저하와 사교육 열풍을 가져왔다.

 

교육에 있어서 아동들의 자유가 존중되어야 하지만 지나친 자유는 방종이다. 자유에는 한계가 있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교사의 통제가 필요하고 교사의 주도성이 인정되어야 한다. 교육내용의 구성에서 아동의 관심사가 포함되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아동의 관심만을 중심으로 하여 구성되어서는 안된다. 민주주의 시민으로 권리를 향유해야 하지만 동시에 공동체에 필요한 책임과 의무의 훈련도 필요하다. 교육의 본질을 회복하는 학교교육이어야 한다.

 


 

즐거운 배움과 행복한 가르침의 학교

오늘의 우리 학교에 배움의 즐거움과 가르치는 행복을 되살려야 한다. 교육자에게나 학생들 모두에게 지독한 '노동'이 되는 것은 불행이다. '학교(school)'라는 말은 본래 '유희', '놀이', 또는 '여유'를 뜻하는 'schole'에서 유래되었다. 우리 교육은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교육의 조건(educational condition)'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무엇이 그들을 행복하게 하고 절망하게 하는지, 그들이 진정 소망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탐구가 필요하다. 학교가 교육의 방법론과 이념의 전쟁터가 되는 것은 옳지 않다. 교총에 따르면, 학부모의 폭언이나 폭행, 악성 민원 등으로 교권침해 건수가 급증하고 있다. 수업을 방해하는 남학생의 어깨를 잡았다가 성추행으로 몰리고, 수업 중 애정행각을 벌이는 학생에게 주의를 주다 고발되는 등 교사로서의 권위는 사라졌다는 것이다.

 

교사가 존경받지 못하는 풍토에서 학생들에게 지식이든, 인성이든 뭔가를 가르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는 어렵다. 교육 현장의 문제로 안정적 직장을 등지고 조기 퇴직을 원하는 교사가 늘고 있는 건 우리사회의 불행이다. 교권 추락으로 더 이상 교사로서의 자부심이나 긍지를 갖지 못하게 된다는 것은 교육의 부재를 의미한다.

 

학생과 선생님들이 무엇으로 행복하게 되는지, 무엇이 그들을 고상하게 만들며 또 비참하게 하는지, 그들의 삶에 있어서 가장 절실한 필요물들이 어떤 것인지 등을 돌아보아야 한다. 교권의 확립으로 학생들과 선생님이 함께 웃는 행복한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미래를 선점하라! 학교교육 제4의 길

그동안 우리의 산업과 교육은 한계가 있었다. 연구와 개발(R&D)보다는 모방과 복사를 주로 했으며, 대면교육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온라인 교육은 코로나시대에 새로운 교육의 장을 열 수 있을 것이다. 꼭 코로나사태에 이르렀기 때문만은 아니다. 온라인 교육은 시공간의 제약에서 자유롭다. 또한 저렴한 비용으로 교육기회의 대중화와 능력별 평등기제가 되어 지식정보의 평등한 전파에 기여한다.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미래를 선점하라!” 미래학자 제이슨 솅커(Jason Schenker)의 제안이다. 블룸버그 뉴스가 선정한 최고의 전망가라는 그는 발상의 전환으로 위기를 기회로 만들라고 주문한다. 기존 질서가 도전을 받아 해체될 위험에 빠진 경우를 위기라 한다면, 이는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는 기회이기도 하다. 과거에 매달려 위기 속에 파묻힐 수 있지만 새로운 질서를 준비하여 기회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최근 학교교육에 대한 위기의식이 널리 퍼져 있다. 학교교육에 대한 불신과 이로 인한 사교육비의 증가 등은 학교교육의 이탈 현상이기도 하다. 따라서 공교육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새로운 방향으로 ‘제4의 길’을 제시한다. ‘제1의 길’이 교육의 내용, 방법, 질 등에서 사교육을 중심으로 불평등한 길이었다면, ‘제2의 길’은 평준화의 기조 아래 학교의 자율성이 상실된 국가주의의 절대평등의 길이었다.

 

제1의 길과 제2의 길, 즉 불평등과 절대적 평등의 교육적 절충안이 제3의 길이었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과도한 정부 통제와 지나친 수량화, 교사들이 교육 목표나 목적을 의욕적․열정적으로 전달하는 데 그치는 일종의 비뚤어진 열정 등으로 인해 학생들을 소외시키고, 교육자들을 교묘히 조종하며, 대중을 기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제3의 길의 한계와 교훈을 토대로 비전의 고취와 혁신을 지향하며 책임감과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제4의 길이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인구 및 사회구조의 변화, 사회의 양극화와 삶의 질 향상, 가치관과 생활양식의 변화 등의 문제가 있다. 지식기반사회의 강화 및 과학기술의 가속화, 창의성이 존중되는 지식·문화의 융합, 개방화·세계화에 대응해야 하는 시대적 과제가 있다. 국가적 비전과 방향을 제시하고 시민의 참여를 촉구하며 교육을 통해 길러야 하는 인간상을 모색해야 한다.

 

교육은 개인적·국가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미래 지향적 활동이다. 장기적인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 코로나19의 대응에서 한국은 높은 시민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위대한 우리 민족이다. 학생들이 스스로 일어나서 공부하고 자기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기회를 주어야 한다. 교육의 기본을 수행하는 학교교육이어야 한다.

 

모두를 위한 수월성 교육, 희망의 계절

교육은 인간의 다양한 능력을 최대한 개발하기 위한 것이다. 평준화 제도 하에서는 학생의 선택권과 학교의 선발권이 제약되기 때문에 교육프로그램의 다양성을 확보하기가 어렵고, 학생들의 학업성취를 극대화하지 못한다. 따라서 학교교육에 만족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사교육을 찾거나 타지역, 또는 해외 유학의 길을 모색하게 됨으로써 결국 지역사회의 학교교육은 무력화된다.

돌아보아야 할 한국 교육의 근본 문제는 ‘국가주의적 통제정책으로 인한 경직된 획일성’ 이다. 평등성은 과정이고 수월성은 목표이다. 특히 이전보다 많은 기술이 발전하게 될 4차 산업 혁명 시대에는 수월성과 평등성 모두를 만족시키는 교육이 요구된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맞춤형 학습을 통해 수월성의 본질을 실현할 수 있는 ‘모두를 위한 수월성 교육’으로 발전되어야 한다.

 
이성용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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