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교회 송구영신예배에서 설교하는 김하나 목사 이날 예배는 김하나 목사가 설교자로 다시 서게 된 가운데, 비대면으로 드려진 예배지만, 매우 뜻깊은 예배 시간이었다. 이날 김 목사는 송구영신예배 설교자로 강단에 서서 명성교회 교인들에게 그 동안 교회를 위해 기도해 주심에 감사한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오늘의 예배를 드리게 된 것은 총회의 절차를 밟으면서 진행된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갖게된 강단권의 첫 메신저로서 서게 된 것이다. 강단권을 갖게 된 배경에는 예장통합 제104회 총회에서 '위임목사 청빙을 2021년 1월 1일 이후로 2017년 11월 12일에 행한 위임식으로 모든 절차를 갈음한다'는 내용의 '명성교회 수습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김하나 목사는 명성교회 제2대 담임목사로, 위임목사로 시무를 목회를 시작한 것이다. '오직 믿음의 담대함이 있는 대장부로 살아갈때 하나님이 도우신다' 김 목사는 이날 열왕기상 2장 1-4절을 본문으로 한 설교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하게 붙잡고 대장부로 살아가자’며,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믿음과 겸손한 삶을 살았다. 우리도 다윗처럼 겸손하자.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자”며, 2020년도 지나가듯이 2021년도
2021년 새해가 밝아 왔다. 한국뉴스신문은 새해 벽두 CPOLITIKA 발행인 겸 편집인(정영호)과 한국뉴스신문(이성용)발행인이한국교회에 대해 대담 중에 한국교회 선교 이야기를 찿던 중 명성교회의 국내외 선교 이야기를 신년 특집으로 기사화했다. 마지막 설교의 영성 , 오직 주님 ! 오직 교회 ! 오직 기도 ! 작년 12월 27일 주일, 명성교회 김삼환 원로목사는 목회 50년 역사를 마무리하는 뜻깊은 예배를 드렸다. 이날 김 목사의 설교는 명성교회 한 교회의 역사로는 40년이며, 김 목사가 서울에서 목사로서 처음 사역했던 1971년을 기점으로 하면 50년 목회의 삶을 정리하는 회고적 성격의 마지막 설교였다. 이날 김삼환 원로목사는 고린도전서 15장 8절에서 10절, 그리고 5절과 58절의 말씀을 본문으로 “오직 주님 50년, 은혜의 50년 ”이란 제목으로 40년 동안 기도와 눈물, 그리고 열정과 사명으로 지켜왔던 강단에서 설교를 했다. 김 목사는 이날 설교를 통해 자신이 1971 년 2 월 4 일 갓 태어난 딸 소리를 데리고 12개의 라면 상자에 모든 짐을 싣고 중앙선을 타고 서울로 올라와 하나님 나라와 그리스도의 복음의 비전을 품고 사명자의 삶을 살기 위해
오늘 하루가 가고, 내일이면, 김하나 목사가 명성교회 담임목사의 업무에 복귀한다. 김목사는 이제 2021년 1월 1일부터 공신력 있는 리더쉽으로 명성교회를 이끌게 되었다. 김 하나 목사의 출발은 조용한 취임식 없이 업무를 시작하는 담임목사의 출발이다. 김하나 목사는 이제 2021년 1월 1일부터 공신력 있는 리더쉽으로 명성교회를 이끌게 되었다. 김목사가 속해 있는 예수교장로회(통합)총회는 2018년 103회 총회에서 아들 승계가 부당하다 결정한 바 있었다. 그러다가 지난해 9월 예장통합 총회는 104회 총회를 열고 명성교회 수습안을 처리한 의결된 결과로, 김 목사를 2021년 1월부터 정식 청빙을 통해, 명성교회 담임목사로 시무하도록 한 것이다. 총회의 폭 넣은 해석이 만들어 놓은 결과이다. 사실. 김하나 목사는 이미 지난 2017년 명성교회 위임목사로 취임하였다. 그런데 2019년 총회 재판국이 김하나 목사의 청빙무효 판결을 내리며 제동이 걸렸고, 이에 대해 명성교회가 이의 제기를 하였고, 명성교회의 내놓은 안건을 위해 명성교회수습전권위원회가 구성되고, 결국 104회 총회에서 다시 명성교회 안건을 지지함으로써 김하나목사는 명성교회로 돌아와 위임목사로 업무를
우리나라에서 700만명의 관객을 돌파한 '보헤미안렙소디'의 주인공 프래디 머큐리는 1946년 탄자니아 잔지바르에서 태어났다. 그는 영국의 비틀즈와 버금갈 정도로 인기가 대단하여 박지성이 뛰었던 웸블던 구장에서 공역을 하기도 하였다. 그의 노래를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그러나 천재가수는 동성애를 추구하다가 에이즈병으로 일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1991년 11월 23일 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 환자임을 스스로 밝혔고, 그 다음 날인 11월 24일 에이즈 합병증으로 인한 기관지 폐렴으로 사망했다. 프레디는 자신의 친구가 게이라고 폭로한 것에 대해서 격노하기도 해다. © 편집인 © 편집인 괘락과 화려함 이면에 늘 죽음의 그림자가 따라 다녔던 것이다. 그것은 노래하는 수녀 자닌데케르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빌보트 차트 1위까지 갔던 그녀는 쓸쓸하게 도미니크를 앵무새처럼 되뇌었지만 결국 동성애자로서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다음의 노래를 부른지 얼마 안되어 자살로 세상을 마감하게 되었다. 도미니크, 니크, 니크 성인은 정말 소박하게 살다갔다네. 용병으로, 청빈하게 노래부르며 모든 길로, 모든 곳으로 그는
주세죽과 박헌영 얼마전에 문재인 대통령의 김원봉 서훈추서에 대해 보수진영이 반발해 결국 취소되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입장에서는 얼마든지 서훈추서를 요청할 수 있는 것이다.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미 노무현대통령이 공산주의자로서 항일운동을 한 박헌영의 부인 주세죽을 서훈한 바 있기 때문이다. 출처 연합뉴스, 주세죽의 딸 "위는 우리나라 자주독립과 국가발전에 이바지한 바 크므로 대한민국 헌법의 규정에 의하여 다음 훈장을 추서함" ▲ ©편집인 주세죽은 러시아이름으로 카레예바이며, 박헌영(朴憲永)의 첫째 부인이다. 1899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나 함흥의 영생여학교에 2년 동안 다녔으며, 3·1운동에 참가하다가 체포되어 1개월 수감되었다. 1925년 1월 허정숙·박원희 등과 함께 조선여성해방동맹을 결성하였고, 그해 4월 고려공산청년회 중앙후보위원에 선임된 뒤 조선공산당에 입당하였다. 1927년 5월 김활란, 유영준,최은희,·박원민,정종명 등과 함께 항일여성운동단체인 근우회(槿友會)를 결성하였으며, 1928년 11월 박헌영과 함께 모스크바로 탈출하였다. 19
중심과 주변의 정의 ‘중심’이란 공간적으로 보았을 때 한 가운데를 말하고,‘주변’은 중앙에서 멀리 벗어나 있거나 떨어져있는 영역을 말한다. 중심과 주변을 특징짓는 것은 공간의 위치이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차별을 의미한다. 중심은 지역, 정치, 경제, 사회, 인종, 언어,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주변과 비교할 때 우세하고 주변은 중심과 비교하였을 때 열악하기 그지없다. 이러한 중심은 계속 중심으로 남고, 주변은 계속 주변으로 되는 경향이 있다. 특히 경제면에 있어서는 부익부 빈익부로 가는 것이 현실이다. 사회학자 월러스테인(Immanuel Wallerstein)도 중심과 주변의 구도를 경제의 종속론을 통해서 해석했다. 전체로서의 세계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라 중심에서는 더욱 시장화, 상품화가 진행하고 주변에서는 특화된 저(低)자금으로 저(低)부가가치의 생산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 양자간의 ‘부등가(不等價) 교환’에 의해 중심은 더욱 번영하고 주변은 더욱 주변화한다는 것이다. 중익중변익변이다. 중심은 주변으로 이동하고, 주변은 중심으로 이동해야 그러나 사회가 안정되려면 중심은 주변으로 이동하고, 주변은 중심으로 이동해야 한다. 주변이 없는 중심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예배 시, “나는 조덕삼의 마부였습니다” 하는 그의 설교에서 그의 겸손을.. 이자익 목사는 누구인가? 이 목사는 후배 목회자들에게 존경받는 인물로서, 전북 김제의 대지주 조덕삼 (조세형 전 국회의원의 조부 )씨와의 일화로 유명하다. 이 목사는, 부모를 일찍 여의고, 나그네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던 중, 그를 불쌍히 여기고 집에, 머슴 겸 마부로 받아들인 이가 김제의 대지주 조덕삼이었다. 대지주 조덕삼씨는 어깨너머로 한글과 한자를 공부하는 그를 눈 여겨 보았고, 자신의 아들과 똑같은 교육을 받게 했다. 두 사람 사이가 끈끈해진 것은, 미국 남 장로교, 최의덕(Lewis Boyd Tate) 선교사를 만나 함께 예수를 영접하면서였다. 1902년에는 ‘ㄱ ’자 교회 금산교회를 짓고, 그해 가을 동시에 세례와 집사 직분을 받았다. 1907년 장로 1명을 투표로 선출할 때 교회 설립자인 조덕삼이 안 되고, 마부 출신인 이자익 목사가 장로로 선출된 것이다. 이때 조덕삼씨는 이를 기분 나쁘게 여기지 않고, 평신도로서 집사의 직분으로 교회를 잘 섬겼다. 그 당시만 하여도 신분 격차가 심하였던 상황을 본다면, 조덕삼 집사의 태도는 존경할 만한 신앙이었다. 특히, 조덕삼씨는
예배 시, “나는 조덕삼의 마부였습니다” 하는 그의 설교에서 그의 겸손을.. 이자익 목사는 누구인가? 이 목사는 후배 목회자들에게 존경받는 인물로서, 전북 김제의 대지주 조덕삼 (조세형 전 국회의원의 조부 )씨와의 일화로 유명하다. 이 목사는, 부모를 일찍 여의고, 나그네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던 중, 그를 불쌍히 여기고 집에, 머슴 겸 마부로 받아들인 이가 김제의 대지주 조덕삼이었다. 대지주 조덕삼씨는 어깨너머로 한글과 한자를 공부하는 그를 눈 여겨 보았고, 자신의 아들과 똑같은 교육을 받게 했다. 두 사람 사이가 끈끈해진 것은, 미국 남 장로교, 최의덕(Lewis Boyd Tate) 선교사를 만나 함께 예수를 영접하면서였다. 1902년에는 ‘ㄱ ’자 교회 금산교회를 짓고, 그해 가을 동시에 세례와 집사 직분을 받았다. 1907년 장로 1명을 투표로 선출할 때 교회 설립자인 조덕삼이 안 되고, 마부 출신인 이자익 목사가 장로로 선출된 것이다. 이때 조덕삼씨는 이를 기분 나쁘게 여기지 않고, 평신도로서 집사의 직분으로 교회를 잘 섬겼다. 그 당시만 하여도 신분 격차가 심하였던 상황을 본다면, 조덕삼 집사의 태도는 존경할 만한 신앙이었다. 특히, 조덕삼씨는
© 편집인 전남에 위치한 광주는 빛의 고을이라는 뜻을 가졌다. 광주라는 명칭은 고려태조 23년(940)에 처음으로 쓰여졌고, 고려말의 3은의 한 사람인 목은 이색이 「석서정기」에서 "光之州"라고 하여 빛의 고을로 해석하고 있다. 광주 사람들은 빛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남장로교 선교사 유진벨이 오면서 광주는 진정한 복음의 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유진벨이 없이는 남도선교를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그는 선교의 열정메이커 였다. 그는 1898년에 목포스테이션을 만들어 영흥학교, 정명여학교, 목포진료소를 설립하였고, 인근지역에 선교를 하였고, 1904년 12월 20일에 광주에 와서 광주스테이션을 설립하여 교회와 광주진료소를 개소하고, 1906년 숭일중학교와 수피와 여고를 세웠다. 교회설립 유진벨은 목포처럼 선교스테이션을 만들면 항시 교회를 건립하였다. 북문안교회는 북문밖에 교회를 분리되면서 훗날 양림교회로 되었다. 배유지 목사는 선교 중심지에 항시 교회를 설립했다. 광주의 4대문 안에 예배당 지을만한 곳을 물색하던 중 한국인 기독교인들이 예배당 신축 부지를 정부로부터 빌려 교인들이 건축헌금으로 거금 40달러를 모았고 선교사들도 교인으로서 80달러
© 편집인 CBS가 명성교회건과 관련하여 수백번 양산해도 어떤 효력이 발생하지 않자 더이상 들을 사람이 없게 되었다. CBS는 반명성측에서 뉴스를 수백번씩 양산해 냈지만 결국 효력은 없었고, 명성교회건은 104회 총회에서 수습차원에서 끝을 마무리 했다. 아무리 CBS가 외쳐도 이제 들을 사람이 없게 되었다. CBS는 늑대 소년이 되었다. "늑대 다"라고 외쳐도 사람들은 더이상 믿지 않는다. © 편집인 CBS가 명성교회건과 관련하여 뉴스 양은 1마일처럼 긴데 뉴스질은 1인치 처럼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CBS가 원하는 대로 명성교회건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는 CBS가 합리적 보도 보다는 정서적 보도를 하고 공평적 보도보다는 편파보도를 하기 때문이다. 지난 2020. 6. 22. "올가을 명성교회 세습문제 또 다른다"에서 105회 총회가 명성교회세습문제를 마치 다시 다룰 것 같은 어조로 뉴스화 한 것은 사실관계를 벗어나 CBS의 기대심리를 갖고 말한 정서보도였다. 불행하게도 CBS가 자신들의 의도를 앞세운 나머지 사실관계를 벗어나 정서관계를 갖고 뉴스화하는 것이다. CBS의 일반화의 오류 현재 105회 총
GTU 도서관(연합신학교 도서관, 버클리 소재) 대한예수교 장로회 새문안교회 이상학 목사의 박사논문(GTU, Ph.D)이 예장통합교단의 신학에 상당히 벗어났음이 드러났다. 기존의 그리스도의 구속을 한의 치유로 보는 것은 전통신학을 뒤엎는 것으로 이단신학이다. 새문안교회 당회는 이상학의 박사논문의 신학성을 교단의 신학교육위원회나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에 검증을 요청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의 구속대신 한의 치유를 구원으로 보는 시각은 이단이기 때문이다. 박사학위 논문제목은 "한의 경험으로부터 구원과 죄악의 이해에 대한 재평가"이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은 기존의 구원에 대한 개념을 그리스도의 구속을 한의 치유로 대신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교리적으로 이단인 것이다. ▲ ©편집인 논문요약에 대한 내용은 기존의 구원론이 예수그리스도의 피를 통한 속죄였다면 이상학목사의 논문은 그리스도의 피를 통한 속죄개념 보다는 한의 치유를 통한 구원의 개념을 다시 제시한다. 그는 "신학이란 오늘의 언어로 하나님의 말씀을 표현하려고 시도하는 것"이라고 말한 해방신학자 구스타보의 글을 인용하면서까지 치유를 통한 새로운 신학의 구원론을 제시하고 있다.
존경하는 성직자 문선명(Reverend Moon) 인용 부산장신대 탁지일 교수는 논문 내용에서 존경하는 문선명(Reverand Moon)을 비판없이 활자체를 부각해서 그대로 인용하여 그의 논문이 문선명의 홍보논문인지, 원리강론홍보논문인지, 양자의 홍보논문인지를 의심하게 하고 있다. 성직자에게는 미국에서 의례적으로 Reverand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타락한 교주에 대해서 '존경하는 문선명 교주님' 이라는 단어를 여과없이 수용하는 것은 자신의 주장의 또 다른 표현으로 긍정한다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영어에서 Reverand는 숭배하거나 존경할 가치가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보통 성직자 앞에 붙이는 용어로 '존경하는 성직자'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 © 기독공보 'Reverend'는 숭배하다, 존경하다를 의미하는 'revere'에서 파생한 명사형이다. ▲ © 기독공보 그는 해외박사학위신고논문 62p에서
친동성애 언론이자 반기독교언론인 뉴스앤조이처럼 예장뉴스도 동성애는 성경적으로 죄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여 사실상 반성경적인 주장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성애는 죄라고 하는 식으로 가는 것은 이론적으로도 부족하고 설득력이 없다" 동성애에 대해 호의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뉴스앤조이는 적극 친동성애이지만 예장뉴스는 동성애를 묵인방조하면서 사실상 호의적 동성애인 것으로 드러났다. © 편집인 일부에서는 친동성애언론이라는 입장도 있다. 그러나 친동성애의 입장을 표명한 적이 없기 때문에 묵인방조하거나 하여 정체성은 모호한 가운데 사실상 반성경적 이면서 호의적인 동성애언론으로 드러났다. 친동성애 허호익교수와 친동성애 학생들의 입장을 통하여 예장뉴스의 동성애에 대한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다. A. 허호익 교수에 대한 입장 예장뉴스는 동성애로 면직출교된 허호익교수를 적극 지지하고 심지어 구명운동까지 벌인다고 하여 허사모를 조직까지 하였을 정도이다. © 편집인 예장뉴스는 동성애건으로 면직출교된 허호익교수를 여전히 칼럼리스트로 하고 있어 허호익교수의 사상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
A. 마르쿠제의 1차원적인 인간 프랑크후르트 학파 마르쿠제는 그의 저서 '1차원적인 인간'에서 인간이 물질주의와 자본주의에 속박되어 있고, 대중매체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노예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마르쿠제는 현존의 산업사회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모두를 비판하면서 현실적인 결함을 폭로했다. 마르쿠제는 마르크스를 재해석하고 자본주의와 산업사회를 비판하고 있다. 마르쿠제는 현대인들이 발달된 산업문명의 노예가 되었고, 개인들은 철두철미 물질적으로 발달된 사회에 의해 지배당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현대사회의 능력은 과거 어느 때보다 무한히 거대하며, 그것은 개인에 대한 사회의 지배가 과거 어느 때보다 무한히 거대하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발달된 과학기술이 인간을 억압하고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학이 가져다 준 편리성과 기술의 혁명에 의존하고 있지만 현대인들은 어느듯 과학과 기술의 노예가 되어 창조적 자유로운적 존재로서 살아가기 어렵게 되었다. 마르쿠제는 이러한 현대인들을 1차원적 인간이라고 보고 있다. 1차원적인 인간은 물질적, 과학적, 노예 상태에 머물러 자신이 억압되어있는 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자동차와 고급
▲ © 기독공보 예장통합교단이 점점 카톨릭화하여 중세로 가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특히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예장통합교단의 정체성이 위기를 맞은 바 있다. A. 제도적 중세 당시 김동엽목사 총회장시절, 김동엽목사는 천주교와 직제일치에 서명을 하였다가 교단목회자들로부터 행정심판을 당했고, 결국 김동엽총회장이 한발 후퇴를 하고 총회장으로서 교리적 고백을 하는 수모까지 겪는 차원에서 끝냈다. ▲ ⓒ 법과 교회 김동엽목사가 2014년 총회장 시절 천주교와 직제일치의 서명이 화근이 되어 이로 인해 많은 봉변을 당하기도 하였다. 총회장이 중세로 가고 있었다. B. 신학적 중세 에장통합교단산하 영성이나 교회사 교수들이 카톨릭신학에서 학위를 하거나 개신대학교에서도 천주교영성과 신학을 전공하고 와서 천주교영성과 신학을 가르치는 것으로 드러나 통합교단이 점점 중세로 가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미 교수들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