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의 3단계는 5인 이상 모이면 안된다. 극장, 교회, 직장, 음식점, 등 5명 이상 모이면 3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한다. 코로나 3단계는 제2 바벨탑사건이다. © 편집인 인간이 모이면 범죄를 하니, 하나님이 아얘 모이지 못하도록 뿔뿔이 흩어놓는 것이다. 빚이 많은 교회는 견디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빚과 소근교회같은 교회는 100억 이상 빚이 많아 버티기가 어려울 것이다. 세 달 은행이자를 내지 못하면 압류가 들어올 것이다. 신도들이 속는 소근 교회는 이번 코로나 재앙에 사라져야 한다. 코로나 바벨탑 사태는 언어의 다름이 아니라 경제의 다름이 나타나 인간들이 점점 힘들게 된다. 코로나는 바벨탑 이상 제 2의 재앙이 될 수 있다. 일단 흩어지면 코로나는 안걸릴 수도 있지만 경제적인 문제때문에 인간은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 이다. 언어의 재앙이 아니라 경제적 재앙이다 언어의 재앙은 아무 것도 아니다. 경제적 재앙이 찾아온다. 경제적 재앙에 준비되지 않은 교회는 속수무책으로 넘어질 것이다. 영국은 이미 코로나 변종으로 사재기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변종 코로나는 아이들까지 걸릴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 © 기독공보 교단산하 교수들이 교단의 신학과 상관없는 교수들의 사적인 신학을 함으로 학교는 죽은 신학의 사회가 되었다. 교수들의 신학이 장로교 교단 신학과 상관없이 카톨릭, 초교파, 통일교옹호, 자유주의, 인본주의, 비성서주의 등으로 학문의 자유를 남용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교수들의 학문의 자유는 교단신학안에서의 자유이다. 직영신학대학에 속한 교수들이기 때문이다. 죽은 신학의 사회 직영신학교는 교단신학안에서 학문의 자유가 한정되어야 한다. 학문의 자유를 추구하고자 하는 교수들은 직영신학대학밖으로 떠나야 한다. 직영신학대학교의 목적은 교단이 원하는 목회자를 양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교수들의 신학을 보면 교단이 원하는 신학이 아니라 교수가 원하는 신학으로 전락했다. 교수가 원하는 신학을 하기위해서는 교단밖에서 교편을 잡아야 한다. 그 교수들이 원하는 신학은 현재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즐기는 것이다. 한 편의 신학이 되어야 교수들의 신학은 과거의 루터와 칼빈, 바르트, 몰트만, 불트만속에 머물러 그들의 입장만 소개
강진은 김영랑의 고향이기도 하다. 김영랑은 가장 땅 끝에 있는 강진에 태어나서 1934년 《문학(文學)》지에 ‘모란이 피기까지“를 발표하였고, 1935년 간행된 《영랑시집(永郞詩集)》에 수록되었다. 그의 시는 다음과 같다. “모란이 피기까지는/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모란이 뚝뚝 떨어져버린 날/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모란이 피기까지는/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 편집인 김소월(金素月)이 진달래꽃은 이별을 노래하고 있지만 김영랑의 모란은 기다림을 노래하고 있다. 모란’은 기다림의 꽃이다. 진달래는 이별을 상징하는 것이지만 모란은 기다림을 상징한다. 모란은 희망이 있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교회재판상담연구소 황규학부소장의 포커스 = 지난 1년 동안 추매애 법무부장관이 한 일은 주로 윤석열 찍어내기였다. 윤석열 찍어내기로 코로나로 어려운 가운에 백신도 일찍 구입하지 못하고 한 해를 다 보내었다. 추미애가 한 일은 윤석열의 두 달의 직무집행 징계였다. 두 달 징계를 하기 위하여 온통 언론의 집중을 가져왔고 법무부장관으로서 자신의 존재감을 여실히 드러내었다. 추미애법무부장관은 16년 전인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했다가 광주에서 2박 3일 간 15km를 삼보일배 했던 여인이다.삼보일배는 자신이 지은 악업을 뉘우치고 자신을 버리는 불교 신자들의 전통적 수행법이다. 추미애는 지난 2016년 8월, 어느 자리에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은 분명 잘못된 것이고, 제 정치 인생 중에 가장 큰 실수고 과오입니다."라고 하며 잘못을 인정하였다. 이제 추미애는 16년 전을 회상하며 관행처럼 다가오는 결정적 오판에 대해서 "윤석열 검찰총장을 탄핵한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고, 제 정치 인생 중에 두번 째 큰 실수고 과오입니다"고 인정해서 다시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번에는 더욱 참회하는 뜻에서 법무부에서 검찰총장실이 있는 곳까지 삼보일배를 할 것
2019년 1학기 청주대학교 무역학 전공 명사 초청 특강 ‘부활’ 영화로 다시금 울즈마톤즈 행복의 미학 강연. KBS 그것은 알고 싶다 로 알려진, PD 구수환를 우리는 너무나 잘 안다. 그는 지금 새로운 열풍으로 그를 맞이하는 곳이 최근 들어 너무나 많다. 왜냐하면, 그를 통한 행복의 미학을 듣기 위해서이다. 그때마다 그는 달려간다. 그리고 명 강의를 한다. 그는 PD로서 말한다. “여러분! 제가 지나오면서 정말 느끼는 것은 최고의 고발 사건은 사랑입니다 라며 그는 오늘 우리에게 행복의 미학을 말한다. 많은 사람들은 KBS를 말한다. 그런데 KSB는 그것은 알고 싶다를 말한다. KBS 그것은 알고 싶다. 로 알려진, PD 구수환!! 왜 그를 이야기 하는가? 최근에는 KBS 스페셜로 큰 인기이다. 동 유럽국회를 KBS 스페셜에서 소개 하면서부터 이다. 그래서 한국뉴스신문(이성용)은 구수환 PD를 응원한다. 그래서 오늘도 구수환을 향한다. 그래서 달려간다. 구수환 PD가 지난해 5월 28일(화)청주대학교에서 특강을 했다. 이날 박승락 교수의 강사 소개로 강연이 시작. 구수환 PD의 행복의 미학을 한국뉴스신문에 담았다. ‘당신은 행복 합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2008년 2월에 10년 4개월간의 영국 생활을 마감하고, 인천공항에 내려서 서울행 버스를 타고 공항을 벗어나기 직전에 눈에 들어온 큼지막한 글씨가 있었다. “부자 되세요” 이 낮선 표현에 순간 내 얼굴이 붉어졌다. 내 조국의 관문에 이런 글귀를 저렇게 높이, 크게 새겨놓다니! 내가 대한민국의 국민인 것이 수치스럽고 모멸스럽기까지 했다. “성경에 기록됐다.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마4:4; 우리말 성경) 40일간 금식하여 생존의 위기에 처했던 예수님께 시험하는 자가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라고 했던 말에 대한 하나님의 아들의 대답이었다. 오늘 우리는 심각한 생존 위기 가운데 전전긍긍하고 있다. 코로나 19, 미세와 초미세먼지로 숨쉬기에 불안과 공포를 느낀다. 언제 어떤 형태로 제2의 한국전쟁이 발발할지 모르는 위협 속에서, ‘설마’라는 근거 없는 낙관에 기대어 집단최면으로 태연한 척 살아가나, 불안을 완전히 잠재우지는 못한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국론의 분열이다. 보수-진보, 좌파-우파, 중도파 등으로 갈라져서 극한 대립으로 타결점을 찾지 못하고, 아니
황종석 12월은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며 기뻐하는 기독교의 큰 축일, 성탄절이 있는 달입니다. 하지만 공휴일로서 성탄은 많은분들이 누리고 또 서로 즐거워하지만, 참된 의미를 따라 성탄을 축하하려는 사람은 올해도 그리 많아 보이질 않습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성탄이 들려주고자 하는 복음으로서 기쁨의 소식보다는 성탄이 가져다주는 연말의 축제 분위기를 더 기뻐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성탄이 가져다주는 기쁜 소식은 누가 들어도 기쁠 소식입니다. 복음이란 우선 그 자체로 기쁜 소식이라는 뜻입니다. 듣는 자에게 기쁜 소식이 복음입니다. 이것이 만약 상대적이라면 또는 상황적이라면 우리에게 기쁜 소식은 각자의 상황과 형편에 따라 다르게 들릴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서 나에게는 기쁜 소식이지만 누군가에는 슬픈 소식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이런 경우를 종종 보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 취업을 위해 시험 준비를 하는 모든 사람들이 다 합격할 수 없지요. 이들에게 누군가의 합격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합격할 자리가 하나 사라진 기쁘지 않은 소식일 수 있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집값이 오르는 건 내게는 기쁜 소식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내 집 마련이 멀어지는
21세기 고도 산업사회는 물질적 풍요에 의한 삶의 질 향상이라는 긍정적인 면과 사회 양극화, 저 출산?고령화라는 부정적인 면을 동시에 갖고 있다. 특히 물질적 풍요를 부르짖는 경쟁사회에서 장애인들은 사회적으로 뒤처져 낙오자가 될 가능성이 크며, 사회 양극화 현상의 가장 큰 희생자가 될 소지가 높다. 경제가 발전하면 장애인의 복지와 삶의 질이 높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낙관적 전망이 무한경쟁 사회에서는 쉽게 일어나기 힘들다. 지난 40여 년 동안 한국 사회는 사회복지제도 면으로 볼 때 많이 발전했음에도 장애인들의 사회적응 문제는 여전히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다. 심지어 장애인들의 생명과 복지를 위협하는 빈도는 계속 높아가고 있다. 다양한 직업과 여가활동, 교육과 훈련 기회의 확대, 발전된 교통수단 등이 우리 사회를 한 단계 발전시키고 있지만, 정작 장애인에게는 문화권, 정보권, 교육권, 참여권, 이동권 등이 충분히 보장되어 있지 못하다. 그리고 사회구성원들이 장애인을 대하는 인식도 편견과 낙인의 굴레를 완전히 벗어버리지 못하고 있다. 장애인 시설이 우리 동네에 들어선다면 기를 쓰고 반대한다. 이 뿐만 아니다. 교회 안에 조차도 장애인 편의시설이 충분히 갖추어져
‘16∼19세기 고 서양지도 60여종 공개로 독도를 설명’ "독도는 역사적으로, 지리적으로, 국제법적으로 한국 영토입니다. 저는 이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40여년 동안 서양 고지도를 수집했습니다." 총신대 학장과 대신대 총장을 지낸 신학자인 정성구(75)박사는 광복절을 앞둔 9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있는 한국칼빈주의연구원에서 간담회를 열어 그동안 모은 고지도 60여 종을 공개했다. 정 박사는 수집한 지도 가운데 학계에 이미 알려진 자료도 있지만, 1840년 영국 런던에서 출판된 크러클리(Cruchley)의 일본 지도는 소개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 지도에는 한반도 동쪽에 울릉도와 독도로 보이는 두 개의 섬이 표시돼 있다. 정성구 박사는 그는 이외에도 1809년 핑커튼(Pinkerton) 지도, 1851년 존 탈리스(John Tallis)가 제작한 '한국과 일본 지도' 등을 선보였다. 정 박사는 "교회 개혁자인 칼뱅의 사상을 연구하면서 틈틈이 한국과 일본이 그려져 있는 고지도를 사들였다"며 "독도가 한국 영토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지도 수집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독도 영유권 문제는 감성에 치우치지 말고 이성적으로
교회사적으로 볼 때 한국교회는 자국인에 의한 시작이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의주 청년 4명(백홍준 서상륜 이성하 김진기)이 상업차 만주로 가게 되면서 로스와 매킨타이어 선교사를 만나게 되고, 세례를 받고 번역한 성서를 가지고 들어오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솔래(송천)교회를 세웠기 때문이다. 이후 의료 선교사 알렌(1884년)과 같은 이가 들어와서 의료 선교뿐만 아니라 학교를 세웠다. 이때의 역사적인 현실은 이미 나라의 주권과 문화를 모두 잃고 있을 때이다. 이러한 가운데 교회는 제국주의자 일본인에게 침탈당한 백성들에게 친구로 들어와서 그들을 돕는 종교가 되었고 따라서 기독교는 사회 속에 깊숙이 들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전통이 3.1운동 이후 문화정부가 들어서면서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일본 정부는 이제 모든 선교사들에게 종교의 자유를 줄 테니 출애굽기와 느헤미야서는 강당에서 설교도 못하게 하는 등 민족적 정치적 운동을 막으면서 한국교회 강단은 변질되기 시작하였다. 이때부터 선포되는 메시지는 이 땅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하늘에 대한 것, 죽어서 가는 천국만 전하는 종교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교회가 세상에 대해서 눈감고 입을 닫게 되었다. 그러다가
심의보(교육학박사·충북교육학회장) 학교의 자율성은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교육의 자율성에 근거한다. 헌법 제31조 4항은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할 것을 선언하고 있다. 교육의 자율성을 국가가 보장해야 할 핵심적인 가치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국가주의, 또는 관 주도의 교육으로부터의 자율, 즉 학교가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의 회복을 의미한다. 국가의 정치세력이나 사회의 다른 세력이 교육에 관한 전문가들인 교원의 활동에 대해 지나치게 간섭하고 규제한다면 교육의 목적은 달성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국가나 정당이나 혹은 종교는 그들의 목적을 위해서 교육을 지배하고 소유하려 한다. 국가는 그 추구하는 정책에 유용하고도 순종하는 인간을 원하고, 정당은 그의 정치적인 이념에 찬동하는 인간을 원하고, 종교는 그의 세계관과 신앙을 받아들이는 인간을 원한다. 모든 세력들은 젊은 세대를 자기편에 유리하게 교육시키려 한다. 젊은 세대를 소유하면 미래를 소유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무엇을 목표로 어떻게 교육하라고 지시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교육은 결코 정치나 경제나 종교로부터 직접 그 목표와
‘한국미디어포럼 (주)한국미디어그룹)주관’ 한국뉴스 신문은 올 2020년은 시인 도종환의원(현, 문화체육위원장. 전 문화체육부 장관)을 모시는 그랜드프라자와 한국뉴스센터에서 열리는 2번의 포럼을 가졌다. 이곳에서 똑같은 시 낭송이 있었는데, 그것은 도종환 장관의 대표 시 ‘담쟁이’였다. ‘시 – 담쟁이, 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 아남을 수 없는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경민대학교는 교육은 제2의 독립운동이다”란 설립이념에 따라‘섬김, 모심, 채움, 나눔’을 실천하는 글로벌 인재양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전문기술 습득을 통한 자기 개발과 자아성취, 행동으로 실천하는 끊임없는 젊은 도전정신, 그리고 상호존중과 배려를 통해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올바른 인간관계 등‘실력, 실천, 봉사’ 삼박자를 고루 갖춘 경민의 인재상을 제시하고 있다. "사람이 된 후에, 학문이다. 명예이다. 재물이다” 경민대학교는 12월 30일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부설 고등직업 교육평가인증원으로부터, ‘2013년도 전문대학 기관평가인증’을 획득했다(1월 16일 인증서 수여). ‘기관평가인증제’는 ’11년도부터 시행되어 고등직업교육기관인 전문대학 교육의 질을 제고 하고, 기관의 책무성을 증진 시키며, 지속적인 직업교육의 품질 개선을 유도하기 위한 제도이다. 경민대학교는 전문대학 평가에서 대학의 사명과 발전계획 등 9개 기준과 세부기준 27개, 평가요소 72개를 모두 충족하여 기관평가 인증을 받았다. 그 당시, 2013년도 신청대학 52개 대학 중 80%만이 인증을 받은 가운데, 경민대학교는 좋은 성적으로 기관평가인증을 받아 학교발전을 가져온 대학이다. 특히 이번
통계에 의하면, 2007년 말 현재 호주에 거주하는 한국동포의 숫자는 7만의 동포가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사실 호주 이민 한국전쟁 직후에 시작된 한국 동포들의 호주이민사는 이제까지 사실상 양적 성장에 주력할 수밖에 없었다. 초창기 호주 인민 사회는 어떠하였을까? 초창기 이민에 대해 김인기님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 당시 한인들이 호주에 도착한 이유는 명백하지 않으나 1895년에 한국에 파견된 호주 선교사들이 목회 사명을 마치고 호주로 귀국할 때, 양 자녀를 데리고 온 것을 한국 사람의 이민초기라고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호주정부 이민사를 고찰하면 적은 규모의 한국인들이 호주에 거주한 증거도 있습니다. 기록상으로는 1921년부터 1941년 사이 호주로 유학 온 사실도 있는데 재미교포 학자들은 다시 미국으로 이주한 사실이 있다지만 확증할만한 기록이 없어 의구심을 표하게 됩니다. 호주 이민성은 한국인들의 공식적인 호주 유입시기를 한국전쟁 시기인 1950-1953년 사이로 잡으면서 전쟁미망인 들이 군인을 따라 호주에 오고 전쟁고아들이 이때부터 호주 가정에 입양되면서 이민역사가 시작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당시 누군가 한인역사에 관
어느 날 지인에게서 사진 몇 장을 소개받았다. 사진 속 풍경은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그리고 체코, 남모라비아로 떠났다. 그곳은 비옥하고 풍요로운 땅이었다. 근대 선교역사에 100년 동안 매일 24시간씩 무릎을 꿇었던 모라비안 교도의 기도가 평화로운 대지를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많은 시간 동안 카메라를 둘러메고 여러 곳을 다녔지만 체코는 특별했다. 선과 색과 패턴이 주는 조화를 뛰어 넘어 300mm 화각에 알맞은 특이한 풍광의 이미지는 잊을 수 없다. 봄에는 땅이 넉넉해서인지 곳곳에 갈색의 휴경지가 있다. 비에 촉촉해진 까만 흙과 녹색의 밀밭, 군데군데 노란 유채꽃이 색감을 자랑 한다. 가을엔 평범한 옥수수밭도 추수가 끝나면 트랙터가 지난 자리로 멋진 궤적을 만들어 낸다. 더구나 수확을 기다리며 온몸을 까맣게 태우는 해바라기 밭도 패턴 속에 있다. 그래서 5차례나 모라비아에 갔다. 풍광은 매번 달랐지만 언덕과 언덕이 만나는 선과 색과 면의 평화로움은 같았다. 그 중에서도 군더더기를 뺀 단순화된 패턴을 찾아 구릉을 몇 번이나 넘었던가!. 그리고 체코의 들판은 나에게 속삭여 주었다 . 이렇게 찍으라고 14년의 내 사진 작업 방향을 정립해준 체코의 들녘이 사랑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