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연합 (SNSJTV) 김용두 기자 | 글로벌 반도체 산업이 인공지능(AI) 중심으로 재편되는 가운데, 대한민국이 기술력에서는 ‘초격차’를 유지하면서도 제도와 입법 측면에서는 상대적으로 뒤처지고 있다는 구조적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기술 경쟁이 아닌 ‘법·제도 경쟁’이 새로운 패권 변수로 부상하는 상황에서, 행정부와 입법부의 대응 속도 차가 산업 리스크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현재 반도체 시장은 CHIPS and Science Act를 중심으로 한 미국 주도의 공급망 재편과, European Chips Act를 통한 유럽의 자급률 강화 전략이 맞물리며 ‘블록화’ 흐름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들 법안은 단순한 산업 지원을 넘어 세제·보조금·안보 규제를 결합한 ‘패키지 입법’이라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반면 한국은 ‘K-반도체 전략’을 통해 대규모 민간 투자를 유도하고 있으나, 이를 뒷받침할 법적 기반은 아직 ‘가칭’ 단계에 머물러 있다. 특히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조치법’은 정책 방향 제시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실제 기업 활동을 규정하는 세부 조항과 실행력 확보 측면에서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AI 반도체 시장이 기존 메모리 중심 구조를 넘어 HBM, 첨단 패키징, 시스템 반도체로 급속히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한 투자 확대만으로는 대응이 불가능하며, 기술 보호·데이터 규제·인력 이동·수출 통제까지 포괄하는 복합적 입법 체계를 요구한다.
실제 미국은 CHIPS Act와 함께 수출 통제 및 기술 이전 제한 조치를 병행하며 ‘기술 주권’을 입법으로 구현하고 있다. 중국 역시 국가 차원의 반도체 굴기를 추진하며 기술 내재화에 집중하는 등, 주요국은 이미 ‘법 기반 산업 전략’ 단계로 진입한 상태다.
이와 비교해 한국은 행정부 중심의 정책 추진이 강한 반면, 국회 차원의 입법 속도는 상대적으로 지연되고 있다는 평가다. 산업계에서는 “AI 반도체 경쟁은 기술이 아닌 법과 제도의 싸움으로 전환됐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AI 산업과 직결된 데이터 활용 규제, 연구개발(R&D) 세액 공제, 첨단 인력 비자 정책, 국가 핵심기술 보호 범위 설정 등은 입법 지연 시 직접적인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는 영역이다. 반도체 기업들이 해외 투자 확대를 선택하는 배경에도 이러한 제도적 불확실성이 영향을 미친다는 지적이다.
국내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HBM 및 첨단 메모리 분야에서 글로벌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기업 단위 투자만으로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규제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또 다른 핵심 변수는 인력이다. AI 반도체는 단순 생산 기술이 아닌 설계, 소프트웨어, 데이터 처리 역량이 결합된 고난도 산업으로, 기존 반도체 인력 구조만으로는 대응이 제한적이다. 하지만 국내 인력 양성 정책 역시 교육·이민·산학 협력 구조를 통합하는 입법적 설계가 부족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현재 한국은 기술 경쟁력에서는 선도권을 유지하고 있으나, 제도 경쟁에서는 후발주자에 가깝다”며 “입법 공백이 지속될 경우 기술 초격차 역시 장기적으로 유지되기 어렵다”고 경고한다.
결국 핵심은 ‘속도’다. 기술 발전 속도에 맞춘 입법 체계 정비, 정책과 법의 정합성 확보, 그리고 행정부-입법부 간 협력 구조 구축이 동시에 요구된다. 특히 반도체 산업을 단순 제조업이 아닌 ‘국가 전략 산업’으로 재정의하고, 이에 맞는 입법 패키지를 신속히 마련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글로벌 AI 반도체 패권 경쟁은 이미 기술 단계를 넘어 제도 경쟁으로 진입했다. 한국이 ‘초격차’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술 투자뿐 아니라, 법과 정책의 속도 역시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재설정해야 할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