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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분석

속보 뉴스 후 기획) “국가폭력, 끝까지 책임 묻는다”…공소시효 배제 선언이 던진 한국 사회의 전환점

제주 4·3에서 시작된 법적 재정립 논의…
국가범죄 처벌체계 전면 개편과 미래 국가 책임 구조의 방향

 

데일리연합 (SNSJTV) 정상규 기자 |   국가가 행사한 폭력은 어디까지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오랜 시간 한국 사회에서 반복되어 왔다. 그러나 그 질문은 늘 과거사 정리라는 틀 안에 갇혀 있었고, 법적 책임과 제도적 구조로 확장되지 못한 채 제한적인 해결에 머물러 있었다.

 

제주 4·3 희생자 유족들과의 자리에서 제시된 공소시효와 민사상 소멸시효 배제 방침은 이러한 흐름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선언으로 읽힌다. 단순히 과거 사건을 재평가하는 수준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의 관계를 다시 정의하고 권력의 책임 구조를 새롭게 설계하겠다는 방향이기 때문이다.

 

제주 4·3은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국가폭력 사건 중 하나로 평가된다. 이념 대립과 권력의 충돌 속에서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됐고, 이후 수십 년 동안 진실 규명과 명예 회복은 제한적으로만 이루어졌다. 국가폭력이라는 개념 자체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시기에는 피해 사실조차 기록되지 못하거나 왜곡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단순한 과거의 비극이 아니라, 국가 권력이 통제되지 않을 경우 어떤 결과가 발생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남아 있다.

 

이번 논의의 핵심은 국가폭력 범죄를 일반 범죄와 동일한 기준으로 볼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서 출발한다. 기존 법 체계에서 공소시효와 소멸시효는 법적 안정성과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장치로 기능해 왔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처벌과 책임을 제한함으로써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려는 취지다.

 

그러나 국가가 권력을 이용해 조직적으로 행사한 폭력은 개인 간 범죄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피해 규모와 지속성, 권력의 비대칭성은 일반 범죄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국제 사회에서도 이미 제도화된 바 있다. 반인도적 범죄나 전쟁범죄의 경우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며, 시간이 경과하더라도 책임을 묻는 구조가 형성되어 있다. 이번 발언에서 언급된 나치 전범 처벌 사례 역시 이러한 국제 기준을 반영한 것이다. 국가가 저지른 범죄에 대해 시간의 경과를 이유로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원칙은 점차 보편적인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번 공소시효와 소멸시효 배제 방침은 이러한 흐름을 한국 사회에 적용하겠다는 의미를 가진다. 특히 민사상 소멸시효까지 함께 배제하겠다는 점은 중요한 변화로 평가된다. 지금까지는 피해자와 유족이 일정 기간 내에 권리를 행사하지 못할 경우 법적 구제를 받기 어려웠지만, 앞으로는 시간의 제약 없이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이는 단순한 제도 개선이 아니라 피해자의 권리를 국가가 지속적으로 보장하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또 하나 주목되는 부분은 책임의 범위를 확장하려는 시도다. 상속 범위 내에서 책임을 인정하겠다는 발언은 개인의 행위를 넘어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겠다는 개념을 포함한다. 이는 국가폭력의 결과가 단순히 한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라는 인식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책임을 단절시키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결과를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보완하겠다는 방향이다.

 

이와 함께 제시된 제도 보완 방안들도 의미를 갖는다. 제주 4·3 진압 관련 서훈 취소 근거 마련, 역사 왜곡과 폄훼에 대한 대응 체계 구축, 희생자 신고 및 보상 기간 연장, 유족 지원 법적 근거 강화, 기록물 아카이브 구축 등은 단편적인 조치가 아니라 하나의 체계로 연결된다. 이는 단순한 보상이나 사과를 넘어 기억과 기록, 책임을 동시에 유지하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특히 기록물 관리와 아카이브 구축은 국가폭력 문제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건의 기억은 희미해지고, 해석은 달라지며, 때로는 왜곡되기도 한다. 기록을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관리하는 것은 단순한 역사 정리가 아니라, 국가의 책임을 지속시키는 제도적 장치로 기능한다. 기억이 사라지지 않는 한 책임도 사라지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동시에 여러 과제를 동반한다.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법적 기준의 정교화다. 국가폭력 범죄의 범위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 적용 대상과 책임 범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마련되어야 한다. 기준이 불명확할 경우 법적 혼란과 사회적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공소시효 배제와 법적 안정성 간의 균형 문제도 중요한 쟁점으로 남는다. 책임을 무기한으로 확장할 경우 법 체계의 예측 가능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정치적 해석의 위험 역시 배제할 수 없다. 국가폭력의 정의와 적용 범위를 둘러싼 논쟁이 정치적 갈등으로 확대될 경우, 제도의 본래 취지가 왜곡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결국 제도의 도입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설계하고 운영할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사회적 합의와 법적 정밀성이 동시에 확보되지 않으면 제도는 오히려 갈등을 확대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이번 논의는 한국 사회가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고 미래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단순히 과거 사건을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저지른 잘못을 어떤 방식으로 인정하고 책임질 것인지에 대한 선택이다. 이 선택은 미래의 국가 운영 원칙과 직결된다. 권력이 행사되는 방식과 그 책임의 범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에 따라 국가의 성격 자체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폭력에 대한 공소시효 배제는 단순한 법률 개정이 아니라 하나의 원칙 선언으로 볼 수 있다. 시간의 경과가 책임을 면제하는 이유가 될 수 없으며, 국가 권력은 언제든지 국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기준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이 제도화될 경우, 한국 사회는 국가와 국민의 관계를 새로운 기준 위에서 다시 정립하게 된다.

 

이번 논의는 아직 입법과 제도 설계라는 과정을 남겨두고 있다. 그러나 방향은 분명하다. 국가폭력에 대한 책임을 끝까지 묻겠다는 선언은 과거를 정리하는 동시에 미래를 설계하는 작업이다. 국가가 국민 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에 대해 책임을 지는 존재로 자리매김하는 과정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

 

결국 이 문제의 핵심은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국가는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달라질 때, 국가의 모습도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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