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왼쪽 사진은 빌 앤드류스(Bill Andrews) 박사. 오른쪽 사진에서 회색으로 보이는 것은 인간 염색체이며, 그 양쪽
끝에 보이는 흰색 점은 염색소립 '텔로미어(telomere)'다.
지난 6일 오후 서울 중구 롯데호텔의 작은 회의실에는 190cm를 훌쩍 넘는 미국 남성이 온화한 미소로 '노화치료 연구ㆍ사업계약 체결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인공은 미국 노화치료연구소 '씨에라 사이언스(Sierra Sciences)'의 대표이자 노화억제 효소 '텔로머라아제(telomerase)' 권위자인 빌 앤드류스(Bill Andrews) 박사(63)다.
앤드류스 박사는 텔로머라아제가 함유된 화장품 '디파이타임(defytimeㆍ'시간을 거스르다'라는 뜻)'을 소개하며 노화와 수명, 건강 등에 관여하는 염색소립(染色小粒) '텔로미어(telomere)'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인간 염색체 끝 부분에 붙어있는 텔로미어는 세포분열 시 유전자 염색체가 닳아 없어지는 것을 막아주지만, 시간이 지나 세포분열 횟수가 늘수록 텔로미어의 길이가 짧아져 노화가 진행되고 수명이 단축된다"고 말했다.
그리스어 '텔로스(telosㆍ끝)'와 '메로스(merosㆍ부분)'의 합성어인 텔로미어는 운동화 끈이 풀리지 않도록 끝을 플라스틱으로 감아놓은 것처럼 세포의 염색체 말단부가 풀어지지 않게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텔로미어가 짧아지는 것을 막기 위해 앤드류스 박사는 지난 1995년 과학학술지 사이언스에 텔로머라아제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고, 1997년 미국특허청에서 주는 '올해의 국립 발명가(National Inventor of the Year)' 은상을 받았다.
그는 텔로머라아제에 대해 "텔로미어의 길이가 줄어드는 것을 막는 단백질 효소다. 실제로 4년 전에 했던 동물 실험 중 노후한 쥐의 등에 텔로머라아제를 활성화하는 유전자를 투입한 결과 피부 변화, 뇌 활성화 등 엄청난 효과를 봤다"고 덧붙였다.
씨에라 사이언스는 텔로머라아제를 활성화시키는 물질 중 가장 효과적인 물질 '탐-818(TAM-818)'을 개발해 텔로미어 길이가 줄어드는 속도를 17% 정도 늦추는 것을 확인했다. 해당 물질을 화장품 등에 적용했고, 그 첫 번째 제품으로 노화억제 화장품 개발회사 '디파이타임 글로벌아시아'와 함께 임상시험을 마친 '디파이타임'이 개발됐다.
박사는 "여성 100명을 대상으로 60일간 실험을 진행했더니 피험자 대부분의 피부에서 주름이 사라지고 손상도가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앤드류스 박사의 연구 열정은 의학계뿐만 아니라 영화계에서도 러브콜을 받았다.
그의 텔로미어 연구와 쥐 실험, 안티에이징 비법 등을 담은 다큐멘터리 '디 이모털리스트(The Immortalistㆍ불사신)'은 미국의 다큐멘터리 아카데미인 '2014 SXSW 필름 페스티벌(SXSW World Premiere Documentary)'에서 1위 후보로 뽑혀 오는 28일 뉴욕, 12월 로스앤젤레스 영화관에서 상영될 예정이다. 해당 작품에는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앤드류스 박사의 아버지도 나와 부자지간의 정을 엿보게 한다.
그는 "아버지는 어렸을 때부터 수명이나 건강에 관심이 많아 내게 관련 연구를 하라며 독려했다. 처음에는 나를 위해 연구했지만, 4년 전 아버지가 알츠하이머에 걸렸다는 것을 알고 더욱 연구에 박차를 가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노화연구에 한 평생을 바쳐온 앤드류스 박사의 듬성듬성한 머리숱과 희끗희끗한 턱수염, 주름진 이마는 친근한 동네 할아버지를 연상시킨다. "노화 지연 박사가 왜 주름이 많냐"는 질문을 자주 받아왔다고 너털웃음을 짓는 그는 외모와는 달리 규칙적인 운동과 식습관을 생활화하고 있다.
앤드류스 박사는 "한 달에 한 번은 100㎞ 이상을 달리는 '울트라 마라톤'을 한다. 아내도 마라톤을 하다 만났고, 2년 전에 히말라야를 종주하며 결혼했다. 평소 흡연하고 되도록 고기는 먹지 않으려 한다. 텔로미어 연구를 통해서도 운동하면 그 길이가 늘어나는 반면 운동하지 않고 오래 앉아있으면 길이가 짧아지는 것이 밝혀졌다"고 강조했다.
박사는 디파이타임 글로벌아시아와 협력해 텔로머라아제로 수명을 예측하고 암 등 기타 질병을 진단할 수 있는 '텔로테크(telotech)' 서비스를 한국에 도입할 예정이다. 또한 지난 5월부터는 제주도 서귀포시에 텔로미어 연구를 이어갈 '헬스케어가든' 설립도 진행하고 있다.
그는 "제주도는 지정학적으로 아시아로 뻗어나가기 매우 좋은 장소며, 제주 자생식물에는 텔로머라아제를 작동시키는 화합물이 있을 것으로 추정돼 연구 중"이라고 얘기했다.
자신의 연구가 인위적인 생명 연장이 아니라 건강하게 늙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하는 앤드류스 박사는 앞으로도 울트라 마라톤에 도전하며 노화를 이겨낼 것이라 포부를 밝혔다.
"130세가 되는 해(2081년)에 1마일(1.6㎞)을 7분 안에 주파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국윤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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