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와 교회개혁실천연대가 한국교회개혁을 한다고 하면서 뉴스앤조이는 20년동안 불법적인 모금을 한 의혹이 있다. 교회개혁실천연대와 뉴스앤조이는 금융실명제법도 위반한 의혹이 있다. 두 단체가 한빛누리 공익기금으로 후원금을 받았기 때문이다. A. 금융실명제법 위반 1. 뉴스앤조이 금융실명제란 금융회사와 금융거래시 실지명의를 사용하도록 의무화하고(사인간의 거래는 제외) 실명거래에 의한 금융거래정보에 대해서는 비밀을 보장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에서 규정하고 있다. 이 법은 1997.12.31. 제정된 이후 2014.5.28. 불법목적의 차명 거래를 금지하는 것을 골자로 개정되었다. 뉴스앤조이가 남의 명의를 사용하여 후원금을 받고 있는 의혹이 드러났다. © 편집인 뉴스앤조이는 "한빛누리공익기금을 통해 정기후원회의 후원금을 수령하고 있습니다"고 했다 © 편집인 "기부금 영수증을 발급을 원하시는 경우 국민은행 한빛누리 계좌로 입금해 주셔야 합니다"고 하여 차명계좌임을 스스로 드러냈다. 이처럼 후원금은 한빛누리계좌로 받고 있어 금융실명제법을위반한 의혹이 있다
A. 마르쿠제의 1차원적인 인간 프랑크후르트 학파 마르쿠제는 그의 저서 '1차원적인 인간'에서 인간이 물질주의와 자본주의에 속박되어 있고, 대중매체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노예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마르쿠제는 현존의 산업사회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모두를 비판하면서 현실적인 결함을 폭로했다. 마르쿠제는 마르크스를 재해석하고 자본주의와 산업사회를 비판하고 있다. 마르쿠제는 현대인들이 발달된 산업문명의 노예가 되었고, 개인들은 철두철미 물질적으로 발달된 사회에 의해 지배당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현대사회의 능력은 과거 어느 때보다 무한히 거대하며, 그것은 개인에 대한 사회의 지배가 과거 어느 때보다 무한히 거대하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발달된 과학기술이 인간을 억압하고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학이 가져다 준 편리성과 기술의 혁명에 의존하고 있지만 현대인들은 어느듯 과학과 기술의 노예가 되어 창조적 자유로운적 존재로서 살아가기 어렵게 되었다. 마르쿠제는 이러한 현대인들을 1차원적 인간이라고 보고 있다. 1차원적인 인간은 물질적, 과학적, 노예 상태에 머물러 자신이 억압되어있는 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자동차와 고급
▲ © 기독공보 예장통합교단이 점점 카톨릭화하여 중세로 가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특히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예장통합교단의 정체성이 위기를 맞은 바 있다. A. 제도적 중세 당시 김동엽목사 총회장시절, 김동엽목사는 천주교와 직제일치에 서명을 하였다가 교단목회자들로부터 행정심판을 당했고, 결국 김동엽총회장이 한발 후퇴를 하고 총회장으로서 교리적 고백을 하는 수모까지 겪는 차원에서 끝냈다. ▲ ⓒ 법과 교회 김동엽목사가 2014년 총회장 시절 천주교와 직제일치의 서명이 화근이 되어 이로 인해 많은 봉변을 당하기도 하였다. 총회장이 중세로 가고 있었다. B. 신학적 중세 에장통합교단산하 영성이나 교회사 교수들이 카톨릭신학에서 학위를 하거나 개신대학교에서도 천주교영성과 신학을 전공하고 와서 천주교영성과 신학을 가르치는 것으로 드러나 통합교단이 점점 중세로 가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미 교수들의
코로나의 3단계는 5인 이상 모이면 안된다. 극장, 교회, 직장, 음식점, 등 5명 이상 모이면 3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한다. 코로나 3단계는 제2 바벨탑사건이다. © 편집인 인간이 모이면 범죄를 하니, 하나님이 아얘 모이지 못하도록 뿔뿔이 흩어놓는 것이다. 빚이 많은 교회는 견디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빚과 소근교회같은 교회는 100억 이상 빚이 많아 버티기가 어려울 것이다. 세 달 은행이자를 내지 못하면 압류가 들어올 것이다. 신도들이 속는 소근 교회는 이번 코로나 재앙에 사라져야 한다. 코로나 바벨탑 사태는 언어의 다름이 아니라 경제의 다름이 나타나 인간들이 점점 힘들게 된다. 코로나는 바벨탑 이상 제 2의 재앙이 될 수 있다. 일단 흩어지면 코로나는 안걸릴 수도 있지만 경제적인 문제때문에 인간은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 이다. 언어의 재앙이 아니라 경제적 재앙이다 언어의 재앙은 아무 것도 아니다. 경제적 재앙이 찾아온다. 경제적 재앙에 준비되지 않은 교회는 속수무책으로 넘어질 것이다. 영국은 이미 코로나 변종으로 사재기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변종 코로나는 아이들까지 걸릴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 © 기독공보 교단산하 교수들이 교단의 신학과 상관없는 교수들의 사적인 신학을 함으로 학교는 죽은 신학의 사회가 되었다. 교수들의 신학이 장로교 교단 신학과 상관없이 카톨릭, 초교파, 통일교옹호, 자유주의, 인본주의, 비성서주의 등으로 학문의 자유를 남용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교수들의 학문의 자유는 교단신학안에서의 자유이다. 직영신학대학에 속한 교수들이기 때문이다. 죽은 신학의 사회 직영신학교는 교단신학안에서 학문의 자유가 한정되어야 한다. 학문의 자유를 추구하고자 하는 교수들은 직영신학대학밖으로 떠나야 한다. 직영신학대학교의 목적은 교단이 원하는 목회자를 양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교수들의 신학을 보면 교단이 원하는 신학이 아니라 교수가 원하는 신학으로 전락했다. 교수가 원하는 신학을 하기위해서는 교단밖에서 교편을 잡아야 한다. 그 교수들이 원하는 신학은 현재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즐기는 것이다. 한 편의 신학이 되어야 교수들의 신학은 과거의 루터와 칼빈, 바르트, 몰트만, 불트만속에 머물러 그들의 입장만 소개
강진은 김영랑의 고향이기도 하다. 김영랑은 가장 땅 끝에 있는 강진에 태어나서 1934년 《문학(文學)》지에 ‘모란이 피기까지“를 발표하였고, 1935년 간행된 《영랑시집(永郞詩集)》에 수록되었다. 그의 시는 다음과 같다. “모란이 피기까지는/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모란이 뚝뚝 떨어져버린 날/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모란이 피기까지는/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 편집인 김소월(金素月)이 진달래꽃은 이별을 노래하고 있지만 김영랑의 모란은 기다림을 노래하고 있다. 모란’은 기다림의 꽃이다. 진달래는 이별을 상징하는 것이지만 모란은 기다림을 상징한다. 모란은 희망이 있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