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은 '안전불감증'에 빠져있다
지난 2월 13일 남양주시 도농동 빙그레 제2공장 암모니아 탱크배관에서 흘러나온 가스가 폭발해 협력업체 직원이 암모니아 가스 중독으로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공장장 등 관계자들은 폭발 당시 4시간 동안 암모니아 누출 사실을 은폐했다. 또 위험상황 경고방송이나 출입금지 표시 등 안전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제2의 사고로 연결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아 여론으로부터 뭇매를 맞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 2월 17일, 이례적인 폭설로 인해 경북 경주 마우나 리조트의 체육관 지붕이 붕괴되면서 부산외국어대 학생 9명과 이벤트 업체 직원 1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붕괴 당시 체육관에는 부산외대 신입생과 교직원, 이벤트 업체 직원 등 300여 명이 레크리에이션에 참여하고 있었다.
붕괴사고가 발생한 강당은 대부분 구조물이 조립식 샌드위치 패널로 임시 건물과 비슷한 것이었다. 전문가들은 샌드위치 패널 구조인 조립식 강당 건물이었기 때문에 폭설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분석했다.
눈의 하중에 약할 수밖에 없는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리조트 측은 사고가 발생하기 4일 전 연이어 폭설이 내려 경주시에서 "제설 작업을 철저히 해달라"는 요청을 했지만 이를 묵살했다.
그로부터 두 달 후인 4월 16일 '세월호 침몰', 온 국민의 가슴을 저리게 한 이 날의 사고 또한 철저하지 못한 안전관리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최대 1077톤을 실을 수 있던 세월호는 당시 2142톤의 화물을 싣고 출항했다. 변침을 시도했던 세월호는 결국 화물이 쏟아져 내리며 팽목항 앞바다에서 서서히 가라앉았다.
이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안산 단원고등학교 학생들과 교사들, 일반인 승객 등 수많은 사람들이 맥없이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현재까지 세월호 사고 희생자는 294명으로 아직도 10명의 희생자는 차가운 바닷속에 갇혀있다.
서울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 이해우 과장은 "최근 수많은 사건ㆍ사고들로 인해 피해자가 내 가족이나 친지가 아니더라도 영향을 받는 경우가 있다"며 "과거에 비슷한 사건ㆍ사고들을 겪은 사람들은 비록 현재는 그 트라우마를 극복했을지라도 최근 사고 소식을 접하게 되면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면서 재경험하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뿐만 아니라 과거에 아무런 사고가 없었던 일반인이라도 매체나 미디어를 통해 지속적으로 비보를 접하게 되면 과도하게 몰입하게 될 수 있다"며 "특히 일시적으로 우울감을 느끼거나 '내가 사는 곳은 안전한 곳이 아니다' 등의 불안함을 느낄 수 있다"고 밝혔다.
◇ 군대 內 억압, 참으면 '윤 일병' 못 참으면 '임 병장'?
최근 일명 '윤 일병' 사망 사건으로 전국에서 분노의 물결이 일고 있다. 윤 일병의 이야기가 세상에 드러나기 두 달 전, 'GOP 임 병장 총기 난사 사건'으로 거슬러가 보자.
지난 6월 21일 22사단에서 관심사병이었던 임모(23) 병장이 동료들에게 총기를 난사하고 탈영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5명의 부대원들이 숨지고 7명이 부상했다.
부대원들에게 갖은 모욕과 폭행을 당해오던 임 병장은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악마의 탈을 써버리고 만 것이다. 이날 숨진 부대원들에 대해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과연 임 병장만의 잘못인가" "살인은 살인일 뿐 어떠한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등의 열띤 공방이 오가기도 했다.
그로부터 두 달 후, 더이상 없을 것만 같았던 일명 '악마의 선임병'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다.
지난 4월 7일 육군 28사단 부대에서 복무중이던 윤모(23) 일병은 부대원들의 지속적인 구타로 사망했다. 지난 31일 군인권센터가 기자회견에서 수사기록을 토대로 밝힌 내용에 따르면 가해자들은 윤 일병에게 가래침 핥아 먹기, 성기에 안티프라민 바르기, 치약 한 통 먹이기 등 극악무도한 짓을 가했다.
특히 가해자들은 윤 일병이 사망하기 직전까지 폭행을 멈추지 않았다. 윤 일병이 쓰러진 후 맥박과 산소포화를 측정한 결과 정상으로 나오자 꾀병을 부린다며 또다시 폭행하기까지 했다.
윤 일병의 사인에 대해 군인권센터는 지속적 구타에 따른 '외상성 뇌 손상'일 가능성 제기했으나 국방부는 직접 사인이 '기도폐쇄에 의한 질식사'라는 입장을 고수하는 등 진실공방이 오가고 있다.
한편 국방부 검찰단은 윤 일병 사망사건 가해자에게 살인죄를 적용할지에 대한 의견을 이번 주까지 종합해 수사 주체인 육군 3군사령부 검찰부에 전달할 것으로 전해졌다.
◇ 온 국민이 겪는 트라우마 "지속적으로 우울감, 불안함 느끼면 상담 받는 것이 좋아"
이 외에도 송파 버스 질주, 대구 버스 추락, 울산 현대중공업 화재, 고양터미널 화재, 장성 요양병원 화재, 광주 헬기 추락 등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국내뿐만은 아니었다. 아프가니스탄 산사태, 터키 소마 광산 사고, 말레이시아 여객기 격추, 대만 항공 비행기 불시착 등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몇천 명까지의 사상자를 낸 사고들은 연이어 터졌다.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사건ㆍ사고에 국민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평소 안전관리에 대한 경각심을 깨우치고 제2, 제3의 '불행의 2014년'이 되지 않도록 모두가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렇다면 주변에 사건ㆍ사고로 가족이나 지인을 잃은 사람들에게 어떠한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이 과장은 "제일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힘든 일을 겪었다는 것을 인정해주는 것'이라며 "특히 어느 정도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한데,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그것들을 제공해주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일을 돕는 등 개인적인 시간과 공간을 주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또 "뉴스나 미디어를 통해 사건들을 계속 접하는 것에 대해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고, '나는 네 마음을 다 알아' 등의 막연한 위로 보다는 그 사람의 고통스러움과 힘들어하는 것들을 충분히 잘 들어주는 것이 더 큰 위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 과장은 "최근의 사건들로 과거의 기억이 떠올라 또다시 우울감을 느끼거나 상실감을 느끼는 등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있다면 언제든지 병원에 내원해서 전문의와의 지속적인 상담을 통해 트라우마를 극복해가는 것이 좋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