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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고객은 나의 가장 친근한 동반자입니다’


잠시 주방의 일손을 멈추고 표창장을 받아안은 김춘일 씨

   원종희 김춘일 부부  

원종희, 김춘일 양꼬치 부부가 들려준 이야기  

내가 (안해 김춘일) 신길동에서 신길양꼬치(新吉串城)간판을 건지도 어언 6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2004년도에 남편을 따라 한국에 왔을때는 감히 음식점 경영을 하리라곤 전혀 생각도 못했지만 오늘 낯설고 물설은 타향에서, 그것도 난생 처음 밟아보는 한국땅에서 양꼬치집을 일떠세웠으니 지금 생각하니 마음만 벅찰뿐이다.

돌이켜보니 나의 한국행도 피치못할 사연이 있었다. 목단강 사범을 졸업하고 녕안 와룡중학교에서 몇 년간 교편을 잡고 있었는데 조선족들의 인구가 급격이 줄어들면서 학생내원이 고갈되어 결국 학교가 없어지고 만 것이다. 당시 한국 간지 4년 남짓한 남편이 돈을 보내줘 생활을 유지하기는 했으나 부모를 모시고 또 애를 공부시키는데 드는 비용이 만만치않아 돈을 더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처음 한국에 가겠다는 생각을 비치자 남편이 허약한 몸으로 한국에 와 일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며 별로 내키지않는 눈치였지만 그래도 마음먹고 11살 나는 딸애를 부모님께 맡기고 한국행에 올랐다.

한국에 가는 조선족이라면 누구나 그러하듯이 나도 할빈공항에서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면서 궁금한 점이 많았다. 종래로 무거운 일이란 겪어보지못한 내가 한국가면 무슨 일을 할가? 하루 12시간씩 일한다는데 과연 내가 견뎌낼 수 있을가? 등등의 생각으로 근심이 앞섰다. 그래도 남편이 이미 한국에 자리를 잡았으니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뒤심이 있다는데서 마음적인 위안이 갔다.

며칠 쉬고 어느 한식점에 들어가 서빙을 하게 되었는데 우선 말이 통하지않아 문제였다. 브로콜리(十字花科), 샐러드, 셀프 등 명칭을 비롯해 대부분 외래어 명칭들이 오가고 했는데 도무지 뭔지 알 수 없었다. 특히 커피자판기에 셀프(自我)라고 씌어있어 처음에는 뭔지 몰라 어리둥절했는데 고객들이 식사하고 나갈 때 허락없이 한컵씩 받아 마시는걸 보고 대체적으로 공짜라는 뜻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결국 하루 일했는데 주인이 이튿날부터는 오지말라고 했다. 지금 일 현장에서 자주 쓰는 말로 하면 하루만에 잘리우고 만 것이다.

중국에 있을때는 학교 교사로 떠받들리우며 지냈지만 한국에 와서는 운명이 100% 바뀌였구나 생각하니 자존심이 상하고 마음 슬프기 짝이 없었다. 인간은 환경의 지배를 받기 마련이니 이와같은 환경에서 신세타령만 한다는 것도 현실적이 못되었다. 이 시점에서 나는 모든걸 새로 시작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새로 배우고 새로 느끼며 나름의 생활을 창조해가리라 마음먹었다.

세상의 일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자존심같은걸 잠시 뒤로하니 마음 편하고 고된 일에도 별로 힘들지않았다. 나는 음식점에서 부지런히 일해 아껴 쓰고 아껴 먹으면서 조금씩이라도 자금을 모았다. 한편 계속하여 식당일만 한다는 게 장구지책이 아니라 생각되어 2007년에는 1년간 직업소개소도 해보고 2010년에는 한국에서 번 돈으로 중국에 들어가 음식업도 해보았다. 허나 별로 성공못하고 다시 한국에 들어와 종전대로 신길동의 한 음식점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그 음식점 자리가 지금 하고 있는 신길양꼬치이다. 당시 무슨 영문인지 모르나 이 음식점이 불경기상태로 겨우 유지하다가 주인이 내놓았는데 우리 부부가 상론하고 보증금과 기타 비용을 이후 벌어서 갚기로 하고 맡은 것이다. 처음에는 장사가 잘 안되어 골머리를 앓았다. 주말에는 중국인 고객들이 많아 괜찮았으나 평일에는 아예 손님이 없없다. 고심 끝에 그래도 한국인 고객을 끌기위해 양꼬치 맛에 대해 많은 신경을 쓰기로 했다. 우선 한국인들의 입맛을 끌기 위해서는 향신료 맛을 줄여야 했다. 그리고 극막 즉 심줄을 제거하는 것으로 부드러운 맛을 살리고 꼬치 양을 푼푼이 하여 고기를 숯불에 구워도 더 줄어든다는 감이 없게 하였다. 서비스도 넉넉하게 했다. 3만원 이상씩 소비하면 도장 1개 찍어주고 10번 차면 요리 하나를 무료로 드린다. 차음 한국인 손님이 찾아들기 시작하였는데 우리 양꼬치가 중국에 가 먹던 양꼬치 보다 더 맛있다고 평가했다.

양꼬치 장사를 시작하서 2년 후에는 평일에도 찾아오는 손님이 빌새 없었다. 나는 그간 중국의 볶음 요리 솜씨를 많이 익혀 직접 탕수욕과 지삼선 등 중국 전통 요리를 만들었는데 역시 좋은 평가를 받아 주문이 끊임없다. 이때라 생각하고 남편과 상론한후 서울시 영등포구 양평동에 또 하나의 양꼬치 집 호운(好運)양꼬치를 오픈했다. ‘신길양꼬치와 똑 같은 맛과 경영방식으로 역시 호황을 이루어 한국인 손님이 90%에 달한다. 사실 남편은 한국에 와 처음 시작한 업이 맛사지 샵이다. 시험을 쳐 자격증을 획득하고 약손이란 간판을 걸고 4년간이나 경영했다. 한국에 온지도 더 일찍하고 경험도 많아 사업에서는 막히는 일 없다. 현재 두 양꼬치집에 단골들이 많이 생겨 점점 번성해가고 있다. 서울 여의도에 단골들이 가장 많이 찾아오것으로 기억되는데 이들을 볼때마다 힘이 절로 나고 자부를 느낀다. 그들은 나의 가장 친근한 동반자이다. 항상 양꼬치 맛을 보러 온다는 생각보다는 어쩌면 우리 양꼬치집을 도와 줄려고 오는 듯한 느낌이 더 들기도 한다.

신길양꼬치소문이 어떻게 나갔는지는 알 수 없으나 금년 418일 조길형 구청장으로부터 표창장을 받게 되는 영광을 가져 기쁨을 감출 수 없다. 표창장에는 귀하께서는 평소 구민건강을 위하여 음식문화개선과 위생서비스향상에 적극 동참하였으며 투철한 봉사정신으로 정감넘치는 지역사회 조선에 기여한 공이 크므로 이에 표창합니다라는 글이 적혀있어 조선족 출신인 내가 구청장으로부터 표창을 받았다는 데서 감격함을 금할 수 없다.

한가지만 더 이야기할게 있다. 한국에 와 제일 기쁜 일은 이곳에서 둘째 아들을 낳았다는 사실이다. 타향에서 고달픔과 고독함을 달래며 힘겨운 나날을 보내는 와중에 뜻밖의 아들을 보아 더 없는 행복과 즐거움을 느낀다. 우리 가정을 놓고 말하면 한국은 두 번째 고향이나 다름없다. 자신의 피타는 노력과 신근한 땀으로 창업의 단 맛을 보아 보다 윤택나는 삶을 영위해가고 있으니 우리의 미래는 더욱 희망차고 아름다울 것이라 믿어 의심치않는다.  

/박홍남 전춘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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