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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개혁개방 40년]심천의 기적으로 보는 개혁개방 40년(1 )

머리글

하나의 도시는 한시대의 정화를 고도로 농축시킨 축도이고 하나의 정당은 한갈래 탄탄대로를 개척해낸 인솔자이다.

마치 법술이라도 펴내듯 40년도 채 안 되는 사이에 이름 없던 변경의 한 작은 진으로부터 2000만 명 인구를 가진 현대화국제도시로 궐기한 심천은 기적적인 발전으로 중국 남방에 우뚝 솟아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

무엇이 심수를 이렇게 변화시켰을가?

개혁개방의 청신한 봄바람이, 개혁개방의 강대한 활력이 심천으로 하여금 전례 없는 생명력을 불러일으키게 하였으며 중국특색의 사회주의길은 갈수록 광활하다는 것을 유력하게 증명해주고 있다.

20세기 80년대 심천의 사구(蛇口)공업구(자료사진)

제1편

격정의 세월-역사적 격정과 교전의 연대를 돌아보면 심천의 근 40년간의 꿈 같은 궐기는 철 같은 사실로 중국공산당원들의 위대한 각성을 보여주며 개혁개방은 중국특색의 사회주의를 견지하고 발전시키는 필연적인 경로임을 증명한다.

심천의 남두반도에 위치한 전해(前海)는 “특별구 중의 특별구”로 불린다. 근 5년간 이곳에는 해마다 평균 3만 여 개의 기업소가 탄생하여 새로운 개혁개방의 선행자, 시험자로 나선다.

“곧바로 중국의 개혁개방 선풍이 가장 일찍 불어 친 곳에 가 그 현장에서 개혁개방 역사발전과정을 돌이켜보면서 개혁개방을 계속 앞으로 밀고 나아가야 한다. ”

2012년 12월 7일, 시진핑 총서기는 당의 18차 당대회가 끝난 후 선참으로 북경을 떠나 광동을 고찰하기로 결정하였으며 첫걸음으로 심천 전해로 발길을 돌렸다.

“우리 나라 개혁은 이미 난관을 돌파하는 단계에 이르렀고 수심이 깊은 곳에 당도하였습니다. 막중한 임무를 과감히 떠메고 파도 세찬 여울목을 건너야 합니다.” 이 개혁의 천초지에서 시진핑 총서기는 세인을 향해 개혁을 부단히 추진하고 개방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견정한 신념을 표시하였다.

신시대 신기점에 서서 개혁개방 40년을 맞는 2018년 전국 ”양회”때 시진핑 총서기는 광동대표단의 심의에 참석하여 “보다 넓은 시야로 보다 높은 목표와 요구로, 보다 유력한 조치로 전면 개방하고 보다 높은 차원에서 개방형경제를 다그쳐 발전시켜야 한다.” 고 명확히 제기하였다.

개혁개방은 심천에서 도약식 발전을 실현한 근본 동력이며 한 나라 한 민족이 자기 운명의 전변을 실현한 “비밀번호”이다.

전해와 사구(蛇口)는 심천 남두반도의 양측에 갈라져 있다. 역사는 바로 이곳에서 합류한다. 39년전, 바다를 메워 항구를 건설하는 “개산포”소리가 먼저 사구에서 울리며 만청양무운동에서 탄생한 백년초상국(투자유치)이 첫 수출공업가공구역를 설립하고 경제특별구를 창립하는 탐색자로 나섰다.

1979년 3월 5일, 국무원에서는 광동성보안현을 심천시로 고칠 것을 정식비준하였다. 홍콩에 인접해 있는 심천진을 도시로 고쳐 처음부터 향항을 겨냥하면서 국제일류도시로 건설목표를 세운 것이다.

1979년 4월, 광동성위에서는 광동성이 홍콩과 마카오(오문)와 인접해있고 화교가 많은 특점을 고려하여 중앙에서 특수정책을 내려 보낼 것을 바라면서 심천, 주해, 산두에 수출가공구를 세웠던 것이다. 이런 설계가 등소평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았다. 

등소평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 지역을 금을 그어놓고 특별구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섬감녕변구도 특별구역이 아니였습니까! 중앙에서는 돈이 없기에 정책을 주어 그들 자체로 건설하도록 살길을 열어준 겁니다. ”

혁명전쟁년대를 돌아보면 섬감녕특별구는 정신적 등대로 되여 혁명의 승리를 쟁취하고 새중국을 건설하는데 마멸할 수 없는 공훈을 세웠던 것이다.

개혁개방시대에 들어서면서 특별구정신은 시공을 넘어 대를 이어 전해지면서 개혁의 불길을 신주대지에 지펴 곳곳에 만물이 소생하게 하였다.

심천사구공업구 사무청사(자료사진) (신화사 기자 서우주 찍음)

1980년 8월 26일, 제5차전국인대상무위원회 제15차회의에서는 경제특별구를 설치할 데 대해 비준하였으며“광동성경제특별구잠행조례”를 통과하여 중국에서 경제특별구를 정식 탄생시켰다. 해외매체들에서는 “중국의 대변혁의 지침이 소리 높이 작동하기 시작하였다.”고 찬탄을 아끼지 않았다.

역사적 대작이 펼쳐지기 시작하니 페지마다 참신하였다.

“특별구는 하나의 창구로서 기술창구, 관리창구, 지식창구, 대외정책의 창구였다. ”

1984년, 등소평은 처음으로 심천에 당도해 경제특별구의 발전과 전국의 개혁개방에 명확한 방향을 제시해주었다.

격정의 불꽃 튕기는 세월-작은 언덕배기가 심천으로 되고 농촌에서 도시에로 연해에서 연변(沿边)으로 개혁개방의 거센 물결은 조국의 강산을 휩쓸었다.

인심을 흥분시키는 시대—심천, 주해, 산두, 하문 4개 경제특별구역이 설립된 후 1984년에는 14개 연해도시가 대외개방을 선포했고 1988년에는 해남이 성으로 개편됨과 동시에 경제특별구로 획분되었으며 1990년에는 상해 포동을 개방한다고 선포하였다…뭇별처럼 총총한 도시와 특별구들은 중국개혁개방의 바둑판을 그려내고 있었다.

경제특별구의 시험은 사구공업구의 2.14평방키로메터에 달하는 땅에서 재빨리 진척되기 시작하였다.사구공업구의 책임자 원경은 기업관리간부양성훈련반에서 다음과 같은 비유를 하였다. “황포군관학교는 ‘혁명자가 아니면 이 문으로 들어서지 말라’고 했듯이 이곳에서는 ‘개혁자가 아니면 이 문에 들어서지 말라’고 합니다.”

사구공업구에 이어 라호구에서도 전역을 펼치며 대규모적인 도시 개발과 건설을 전면 실행하였다. 1985년 상반년, 라호성구에서는 18층이상 고층건물 60동을 지어냈고 그해 연말에 준공한 국제무역청사는 “3일에 한층씩 지어낸” 중국건축사상 새로운 기록을 돌파하였으며 ‘심천속도’를 상징하게 되었다.

“인민들은 실천적 결과를 지켜본다. 인민들이 사회주의가 좋고 개혁개방이 좋다고 하면 우리의 사업은 만고에 길이 빛나는 것이다.” “시장경제는 자본주의를 의미하지 않는다. 사회주의사회에도 시장이 있다.” 1992년 봄, 등소평은 다시 심천에 와서 일계렬의 중요한 연설을 발표함으로써 중국에 또 하나의 사상해방의 봄을 앞당겨주었다.

심천 사구공업구의 여종업원들(자료사진)

1992년 10월, 14차 당대회는 “우리 나라 경제제체개혁의 목표는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를 건립하는 것”이라고 명확히 제시하였다. 당년에 339개 현을 포함한 3억명에 달하는 인구, 50만평방키로메터에 달하는 대외개방지역에서 전방위적이고 다층차적이며 광활한 영역의 대외개방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것이다.

“개혁개방 40년이래 중국에서 가장 이목을 끈 실천이 곧 경제특별구역이였다. 전세계적으로 4000여개를 초월하는 경제특별구역의 특대성공전형도‘심천의 기적’을 초과하지 못한다.” 영국 《경제학인》의 평가이다.

철 같은 사실들이 개혁개방은 중국이 발전진보하는 필연적인 경로임을 명시하였다.

생산력이 크게 해방되었다. 심천의 GDP는 1979년의 1.97억위안에서 지난해는 2.24억만위안에 달해 북경, 상해 버금으로 갔으며 이미 거대한 차이를 두고 있던 홍콩과 맞먹게 되었다. 하여 보다 많은 홍콩사람들이 심천에 가 창업하며 정기거주하고 있다.

도시면모가 천지개벽의 변화를 가져왔다. 심천에는 워낙 최고층건물이라야 3층밖에 되지 못했으나 지금은 100메터이상 되는 하늘에 닿을 듯 한 빌딩들이 근 1000동에 달한다. 도로로정 역시 6000키로메터를 초과하고 지하철통차 길이는 297키로메터에 달하며 1.000 여개의 공원이 도처에 분포되어 있어 “공원도시”로 불리우고 있다.

제18차 당대회 이래 심천시는 시종 시진핑 총서기의 부탁을 명심하고 착실하게 신발전이념을 실천하고 부단히 개혁과 개방을 진행하여 현대화하고 국제화한 신형의 도시를 건설하였다. 지난 5년간 심천의 GDP 연평균 성장율은 9.2%로서 지구촌 도시 30강에 들었다. 부단히 고품질발전을 도모하고 발전동력을 부단히 증강하여 백성의 복지를 온당하게 개선하였으며 도시문명을 진일보 제고하고 녹색발전의 특색을 돌출시키면서 신시대 신장정의 길에서 부단히 보다 높고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하였다.

한편의 심천발전사는 곧 중국공산당이 억만 인민을 단결하고 인솔하여 파란만장한 개혁개방의 대조류를 일으킨 실천적 증명이다. 

한편의 심천발전사는 곧 중국공산당이 억만인민을 단결하고 인솔하여 중국특색의 사회주의길을 개척한 생동한 화폭이다.

바로 이 시각, 개혁개방 40년의 역사적 순간에 이르러 심천을 되돌아보고 중국의 비범한 한단락 여정을 되돌아보노라면 개혁개방이 신시대 중국발전에 주는 심각한 역사적 의의와 심원한 미래지향적 의미를 더욱 절실히 느껴보게 된다.

“오직 사회주의만이 중국을 구할 수 있고 오직 개혁개방만이 중국을 발전시킬 수 있고 사회주의를 발전시킬 수 있으며 맑스주의를 발전시킬 수 있다.”—19차 당대회 보고에서 한  시진핑 총서기의 이 말은 시대적인 선언이며 더우기는 인민들의 목소리인 것이다.

/편역 길림신문 김청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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