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최석영 한방부인과 전문의
연이은 가을비로 아침 기온이 뚝 떨어져 출근길에는 겉옷과 머플러로 쌀쌀한 바람을 막아본다. 가을은 한의학에서 숙강(肅降)의 계절이라 하여 천지자연이 엄숙해지고 맑아지며, 기운이 가라앉고 갈무리하는 시기이다.
『황제내경(黃帝內徑)』의 사기조신대론(四氣調神大論)에서 제시하는 계절별 양생법에 의하면, 가을철에는 하늘의 기운이 빠르게 돌아가기 때문에 이에 적응하기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고 일찍 일어나야 하며,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정신을 잘 수렴하여 가을의 기운과 조화되도록 해야 한다. 가을은 수렴의 계절로서, 봄에 태어나 여름에 번창했던 기운을 가을에 거두어 다가오는 겨울을 준비하게 된다.
가을철에는 심한 일교차와 급격한 기온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인체 대사가 증가하고 면역력이 쉽게 떨어지기 때문에 각별한 건강관리가 필요하다. 요즘과 같은 환절기에 보약을 먹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약을 먹는 데 어떤 특별한 시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보약의 글자를 풀이해보면, ‘보(補)’는 ‘옷 의(衣)’와 ‘클 보(甫)’가 합쳐진 것으로 옷이 크고 튼튼하게 되도록 ‘돕다’라는 뜻이며, ‘약(藥)’은 ‘즐거울 락(樂)’에 ‘풀 초(草)’를 더하여 '즐거움을 주는 풀'이라는 라는 뜻이다. 보약은 체력이 저하되고 쇠약해진 몸을 튼튼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먹으면 즐거움을 주는 약이다.
한의학에서 보약이란, 치료법을 분류한 팔법(八法: 汗, 吐, 下, 和, 溫, 淸, 消, 補) 중 보법(補法)에 사용되는 약을 이른다. 보법은 정기(正氣)가 허약할 때 이를 보충함으로써 면역력이나 자연 치유력을 향상하여 질병에 걸리는 것을 예방하는 한의학의 독특한 치미병(治未病) 개념에서 비롯되었다.
보약은 나이와 성별, 체질과 허약한 정도, 그리고 병의 원인과 경중에 따라 각기 다르게 처방되기 때문에 어떤 약이 한 사람에게 잘 맞는다고 해서 누구에게나 다 좋은 것은 아니다. 보약도 보법을 위한 치료약이기 때문에 한의사의 정확한 진단에 따라 약을 처방받아 먹도록 해야 한다.
한약을 복용할 때 돼지고기, 닭고기, 녹두, 술, 밀가루 등을 삼가라고 하는 것은 한약의 흡수를 방해해 약효를 떨어뜨리고 소화 장애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평소에 속이 차서 비위 기능이 약한 사람의 경우, 한약을 먹는 동안 성질이 찬 음식을 과식하면 소화 장애를 일으킬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돼지고기는 기름기가 많고 찬 음식에 해당하기 때문에 속이 찬 사람에게 좋지 않고, 반대로 닭고기는 더운 성질의 음식이기 때문에 많이 먹으면 몸 안의 열을 더욱 조장할 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녹두는 강한 해독 작용을 가지고 있어 한약과 녹두를 함께 복용하면 약의 효능까지 중화시켜 한약의 효과를 떨어뜨릴 수 있다.
그 외에 술, 자극적인 음식, 인스턴트식품 등 몸에 해로운 음식들도 한약의 흡수를 방해하기 때문에 되도록 삼가는 것이 좋다. 밀가루 음식은 대부분 성질이 차고 체내 습담(濕痰)을 조장하며 비위에 부담을 주기 때문에 평소 위가 약하거나 소화 장애가 있는 사람은 피하는 것이 좋다.
최석영 한방부인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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