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전춘봉(길림신문한국지사장)
김파 선생이 2017년 2월 길림신문한국지사에서 남긴 사진
중국 조선족문단의 이름있는 시인 김파 선생을 알게 된 것은 벌써 20년 전의 일이다. 당시 나는 길림신문의 문예편집이였던 관계로 투고된 원고를 접수하였는데 김 선생은 매달 두 편의 시편을 보내왔었다. 봉투 속지에는 번마다 시가 마음에 들면 신문에 싣고 마음에 들지않으면 사정없이 버려도 된다는 글구를 남기곤 했다. 물론 매한편의 시가 모두 출중하여 빠짐없이 문예전문란에 싣곤 했다. 그때마다 꼭 전화로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며 자신의 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며 부족한 점이 있으면 가차없이 말해달라고 했다. 유명 시인의 시작에 대해 내가 어찌 감히 평가하겠는가. 항상 겸손한 그 자세에 심히 감동되었다.
그후 사업관계로 문예편집을 그만둔 후에도 자주 연계하였는데 그간 시집 몇편 냈고 수상도 했다면서 시집을 비롯해 ‘김파시 평론집’등 서적들을 보내오기도 했다. 나는 사업차로 대련에 갔을 때 몇 번인가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 일이 있다. 그때마다 선생은 어김없이 기차역에 나와 마중하였으며 떠날때는 식사까지 잘 대접하여 바래주군 하였다. 문단에서 알아주는 시인이면서 그처럼 인자하고 후덥고 열정적인 그 모습이 오늘까지도 눈앞에 얼른거린다.
2011년 나는 신문사의 파견으로 한국에 오게 되면서 한동안 김 선생과의 연계가 끊어지게 되었다. 그간 어떻게 보내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문안의 전화 한통도 못드려 죄송한 마음 앞섰다. 그러던중 2017년 2월 한국에서 전화가 왔는데 나를 찾는다고 숱한 고생을 했다면서 마침내는 만나게 되었다며 반기였다. 선생은 사무실 주소를 물어보고는 곧 지하철을 타고 찾아왔다. 손꼽아보니 8년만에 재 상봉 한 것이다.
선생은 그간 장편소설 ‘흑색태양(1,2,3집)’을 집필한다고 바삐 보냈으며 지난 1월에 이미 한국에서 출판되었다는 소식을 알렸다. 그리고 어느 기획사에서 드라마로 개편하겠다고 하여 현재 협상중에 있다고 하였다. 평생 시를 써오다가 이번에 큰 마음먹고 소설을 썼는데 이제 드라마로 찍을 경우 이보다 더 큰 성공이 어디 있겠는가며 기뻐했다.
선생은 며칠후 ‘흑색태양’20권을 들고 사무실에 찾아와 흥취있는 사람들이 읽도록 하하라며 두고 갔다. 주위에 책읽기 좋아하는 지인들이 있어 몇권 가져갔는데 모두 재미있다는 평가였다. 이야기 경개가 핍진적이고 개성있는 인물들이 많이 등장해 책을 들면 놓기싶지않다고들 말했다.
지난 12월 20일, 나는 당시 한국에 잠시 거주하고 있는 김선생께 전화를 걸어 24일 길림신문한국지사 송년회가 있는데 그때 책을 우수독자들에게 선물로 주는게 어떻겠냐는 청을 들었다. 선생은 그게 좋겠다고 하면서 유감스럽게도 23일 중국에 들어가기에 송년회에 참석못해 아쉽다고 했다. 그런데 이것이 그와의 마지막 통화가 될 줄이야. 송년회를 마치고 한 동안 지나 문안 인사를 할려고 중국에 전화하니 집의 사모님이 울먹한 목소리로 지난 12월 28일 선생이 급작스레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알리는 것이였다. 청천벽력이였다. 28일이면 귀국하여 엿새만에 돌아갔단 말이 아닌가! 믿기지않았지만 사모님이 직접 전한 것이라 그 엄연한 현실을 받아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드라마를 찍겠다고 그처럼 열심히 뛰어다니더니, 아니 이제 봄을 맞아 따뜻해지면 또 한국에 올 것이라는 약속을 남겨놓고는 어찌하여 이처럼 말없이 영영 떠난단말안가.
아직도 사무실 책장에 정히 세워져 있는 ‘흑색태양’에 눈길이 쏠릴때마다 그 따스한 숨결과 입김을 피부로 느끼며 비통함을 금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