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예뻐졌어요”라고 말을 건넨 건 인사치레가 아니었다. 배우 한예리(30)는 지난해 2월 영화‘남쪽으로 튀어’(감독 임순례) 때보다 더 여성스러워졌고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감독님께서 저를 영화에 예쁘게 담아 주셔서 그런 것 같아요”라며 웃었다.
영화‘해무’(감독 심성보) 속 한예리는 매력이 넘친다. 조선족‘홍매’로 오빠를 만나기 위해 밀항자가 돼‘전진호’에 몸을 실었다. 생명의 위협을 받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막내 선원‘동식’(박유천)과 사랑을 꽃 피운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해무 속에서 그녀는 뜨거운 사랑을 했으며, 생존을 위해 발버둥쳤다.
“홍매가 너무 매력적이라 꼭 출연하고 싶었어요. 이 여자의 속이 무엇인지 너무 궁금했고 어디서부터가 진심인지도 알아보고 싶었죠. 이제껏 여배우가 이런 캐릭터로 나온 적이 없었거든요. 또 여성스럽고 동식에게 사랑스러워 보이는 점도 연기하고 싶었어요.”
홍매의 감정은 불친절하다.‘전진호’의 선원 김윤석을 포함해 김상호·이희준·문성근·유승목·박유천 등은 각각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지만 홍매의 감정 만은 절제돼 있다.“여섯 선원에게는 홍매가 해무 같은 존재예요. 바다에 해무가 끼고 나서 배는 어딘가에 붕 떠 있는 기분이죠. 홍매는 판타지적 인물이기도 하고요. 저도 가끔 연기하면서 이 여자가 살아있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죠.”
결말의 강렬함도 홍매의 감정에서 파생된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홍매의 선택에 고개를 갸우뚱한다. 누군가는 홍매의 태도를 보고 손가락질했으며, 누군가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한예리는“스포일러 부분이라 많은 걸 얘기할 수는 없지만 분명 홍매에게도 동식은 사랑입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우리 영화는 멜로라고 생각합니다”며 넉살도 부렸다.
결과물은 훌륭하지만 연기하기에는 쉽지 않았다. 눈앞에서 사람들이 죽어 나갈 때도 숨죽여야 했고 속으로 폭발해야 하는 장면들이 많았다. 숨을 죽이고 생명의 위험에 끊임없이 노출되며, 꿋꿋이 버텨야만 했다.
“감독님께서 작아서 잘 숨고 보이지 않는 웅크린 흰 고양이처럼 연기해달라고 주문하셨어요. 연기할 때는 숨도 잘 못 쉬는 느낌으로요. 목소리가 밖으로 나오지 않는 느낌이랄까. 소리를 내고 조금만 움직여도 선원들이 눈치를 챌 수 있잖아요. 또 밀폐된 공간에서 죽음을 목격하니 경직됐죠. 감정의 기복을 크게 표현할 수 없어서 어려웠어요.”
그러면서도“홍매는 나보다 더 강한 여자”라고 이해했다.“의지도 강하고 생활도 강해요. 저에게 홍매 같은 상황이 닥쳤다면 이겨내기보다는 삶을 포기하려는 부분이 컸을 것 같아요. 홍매니까 가능한 거였죠”라며 캐릭터에 애정을 드러냈다.
매력적인 홍매의 탄생 이면에는 큰 고충이 있다. 특히 밀항 장면을 촬영할 때로 시간을 돌리자 손과 고개가 절로 흔들렸다.“추위와 비, 바람, 물폭탄, 와이어 액션 다 있었어요. 한 테이크 찍고 나면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너무 힘들었어요.‘건져져서’다시 타이어에 매달리고 촬영했죠. 정신력으로 버티다가 4일을 꼬박 찍고 몸살이 났죠. 촬영마다 안 떨려고 몸에 힘을 줬던 기억이 나네요”라며 모든 것을 초월한 듯 미소지었다.
한예리의 매력이 통한 것일까. 영화는 청소년관람불가임에도 순항 중이다.“영화가 무겁다는 얘기가 있어요. 하지만 드라마 초반 선원들의 일상이 소소하고 재미있게 그려져요. 사람들을 관찰하다 보면 웃음이 나죠. 또 동식과 홍매의 로맨스도 영화에 보여요. 잔인함은 사운드로 처리되니 눈 가리고 보지 않아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