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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완주군 "혁삼외이 거리두기" 방역조치 홍보 총력전 펼친다

- 혁신도시 지역은 3단계, 이외 지역은 2단계로 나눠 적용
- 14개 시군 중 유일하게 분리적용, 행정력 동원 적극 홍보

데일리연합(월간, 한국뉴스신문) 권오연 기자 | 완주군(군수 박성일)은 사회적 거리두기의 혁신도시 3단계와 이외 지역의 2단계 등 이른바 "혁삼외이 단계 - 혁신도시 3단계, 이외지역 2단계"의 분리 적용에 맞춰 주요 방역조치 홍보에 적극 나사고 있다.

지난 8일 전북도의 거리두기 단계 연장 행정명령에 따라, 완주군 혁신도시는 3단계로, 혁신도시 이외 지역은 2단계로 각각 적용돼 군청 각 부서와 읍면 차원에서 주요 방역조치 홍보에 주력하고 있다.

 

전북 14개 기초단체 중에서 거리두기 2단계와 3단계가 둘로 나뉘어 적용되는 곳은 완주군이 유일해 주민 홍보 필요성이 더욱 요청되기 때문이다.

 

이날부터 오는 22일까지 2주간 연장된 거리두기는 사적모임의 경우 2단계(혁신도시 이외 지역)나 3단계(혁신도시) 지역 모두 4인까지만 가능, 5인 이상의 모임은 금지된다.

 

사적모임 예외적용 사항으로는 △동거가족, 돌봄, 임종을 지키는 경우 △예방접종 완료자는 예외 적용해 사적모임 제한 인원에 미포함 △상견례는 8인까지, 돌잔치의 경우 최대 16인까지 허용 △만 12세 이하 인원 동반 시 8인까지 가능(만 12세 이하 외 인원 4인까지만 가능) 등이 있다.

 

식당과 카페의 경우 2단계의 혁신도시 이외 지역이나 3단계의 혁신도시 지역 모두 테이블 간 1m 거리를 두거나 한 칸 틔우기 또는 테이블 간 칸막이를 설치(50㎡ 이상 시설)해야 한다. 다만, 2단계 지역은 24시 이후 포장배달만 허용되는 반면 3단계 지역인 혁신도시 내 식당과 카페는 22시 이후 포장배달만 하용된다.

 

유흥시설과 노래연습장 역시 2단계 지역이나 3단계 지역 모두 시설면적 8㎡당 1명만 허용되지만 2단계 지역은 24시 이후 운영이 제한되는 반면 3단계 지역은 22시 이후 운영 제한된다.

 

실내체육시설은 2단계에서는 체육도장 겨루기와 대련 시합 등이 제한되지만 3단계 지역에서는 샤워실 운영도 금지되며, 특히 수영장은 22시 이후 운영이 제한된다.

 

학원은 2단계 지역에서 좌석 한 칸 띄우기나 시설 면적 6㎡ 당 1명만 허용되는 반면 3단계 지역에서는 좌석 두 칸 띄우기나 시설 면적 6㎡ 당 1명이 허용된다.

 

종교시설의 경우 2단계 지역에서는 수용인원의 30%(좌석 두 칸 띄우기)만 허용되고 실외행사도 100인 미만만 가능하지만 3단계 지역에서는 수용인원의 20%(좌석 네 칸 띄우기)만 허용되며 실외행사도 50인 미만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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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 뉴스 후 기획) “국가폭력, 끝까지 책임 묻는다”…공소시효 배제 선언이 던진 한국 사회의 전환점

데일리연합 (SNSJTV) 정상규 기자 | 국가가 행사한 폭력은 어디까지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오랜 시간 한국 사회에서 반복되어 왔다. 그러나 그 질문은 늘 과거사 정리라는 틀 안에 갇혀 있었고, 법적 책임과 제도적 구조로 확장되지 못한 채 제한적인 해결에 머물러 있었다. 제주 4·3 희생자 유족들과의 자리에서 제시된 공소시효와 민사상 소멸시효 배제 방침은 이러한 흐름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선언으로 읽힌다. 단순히 과거 사건을 재평가하는 수준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의 관계를 다시 정의하고 권력의 책임 구조를 새롭게 설계하겠다는 방향이기 때문이다. 제주 4·3은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국가폭력 사건 중 하나로 평가된다. 이념 대립과 권력의 충돌 속에서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됐고, 이후 수십 년 동안 진실 규명과 명예 회복은 제한적으로만 이루어졌다. 국가폭력이라는 개념 자체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시기에는 피해 사실조차 기록되지 못하거나 왜곡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단순한 과거의 비극이 아니라, 국가 권력이 통제되지 않을 경우 어떤 결과가 발생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남아 있다. 이번 논의의 핵심은 국가폭력 범죄를 일반 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