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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동포'라는 경계선 : 자이니치의 시선


저는 자이니치입니다

저는 김이향입니다. 재일동포3세입니다. 한국에서 자기소개를 할 때 저는 이름 다음에 꼭 본인이 재일동포라고 말합니다. 재일동포니까 이렇게 한국어가 서투른 것을 이해해주기 바라며 한국 문화를 잘 모르는 것을 인정해달라는 일종의 자기방위의 표시입니다.

한편으로 일본에서 자기소개를 할 때에는 저는 항상 '자이니치'라고 말합니다. 이 자이니치라는 말은 '일본에 있다'라는 뜻밖에 없고 정확히는 '자이니치 조센진'이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자이니치라고만 해도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식민지 시대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반도 출신자와 그 후손을 가장 먼저 떠올립니다. 여기서 제가 자이니치라고 하는 이유 역시 제 이름 때문입니다. 일본에서는 '김'이라는 성이 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제 이름을 듣고 이상하다고 생각하기 전에 제가 미리 자기 신분을 밝히는 것입니다.

일본에서 자라면서 일본인 문화를 갖고 있었습니다.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저는 자기 스스로의 이질성을 자기소개를 하면서부터 항상 느끼고 또 표출해야만 했었지만 자이니치 3세로서 태어난 저는 실제적으로 일본인과 똑같은 문화를 갖고 있었습니다.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일반 학교를 다니고 아무도 한국어를 모르는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명절 때에는 친척들이 모여서 제사를 지냈지만 부모님은 제사라고 하지 않고 제사를 뜻하는 '호지'라는 일본어를 썼기 때문에 어렸을 때 저는 제사가 한국 전통 의례인 줄도 몰랐습니다. 커가면서 자이니치 특유의 문화인 것을 알게 되었지만 알고 나서는 이렇게 가부장적인 행사를 갖는 자이니치와는 절대로 결혼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결국 제 이름에서 나타나는 절대적인 한민족으로서의 민족성과 반대로 저는 한국인, 조선인으로서의 민족성을 하나도 내면화하지 않았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던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 어머니는 달랐습니다. 어머니는 학생 시절에 민단의 학생회에서 활동하셨고 지문 날인 거부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를 했던 사람입니다. 2002년 한일공동 월드컵이 열렸을 때에는 빨간색 T셔츠를 입고 소리 지르면서 한국을 응원하고 한류 드라마에 나오는 순진한 한국인 모습에 자신의 민족성을 겹쳐서 스스로 위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딸에게도 "너는 한국인이야"라고 자꾸 말했었습니다.

일본으로 귀화하겠다고 말 한 순간

 그 모습을 보면서 저는 한 마디로 창피했습니다. 저는 어머니와 달리 한국어를 모르고 제대로 된 한국문화도 없는 가운데 '혈통'에 매달려서 스스로를 한국인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고 유일한 증거물인 한국 국적을 낙인으로 생각했었습니다.

이 국적 때문에 이름이 이상하고 일본인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이 국적을 없애면 완전한 일본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저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용기를 내서 귀화, 즉 일본국적으로 바꾸고 싶다고 부모님한테 말했습니다. 그것이 제가 부모님한테 자기의 정체성 이야기를 처음으로 했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귀화'라는 말을 듣자마자 어머니는 미친 듯이 울기 시작하면서 나와의 인연을 끊겠다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제 담임선생님한테 전화까지 해서 저를 설득시키려고 했습니다. 저는 처음으로 보는 어머니 모습에 너무나 당황을 해서 일단 국적 이야기는 안 하기로 했고, 그 때 어머니에게도 국적이라는 것이 어머니와 한국을 맺는 유일한 거미줄이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국적밖에 없으면서 한국인임을 실천하려는 어머니를 여전히 공감 못했지만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물론 어머니는 자이니치2세로서 저보다 훨씬 많은 차별을 받았을 것이고 그러한 외부적인 환경이 어머니로 하여금 한국인으로서의 자의식을 갖게 만들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한편 그 때 이후 국적이나 정체성에 관련된 이야기는 우리 가족 안에서 일종의 금기( taboo)가 되어 저의 고민은 이제 가족에게도 완전히 토로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국적이라는 낙인을 밝히고 나서...

대학교에 들어간 저는 국적이라는 낙인을 숨기지 말고 대놓고 이야기하기로 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는 친구가 국적을 물어보면 일본인이라고 거짓말하거나 혼혈이라고 하면서 자이니치임을 최대한 비가시화하려 했는데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것 같아서 너무나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이제 처음부터 자이니치라고 밝히고 그래도 친하게 해주는 친구와 친해지려고 한 셈이었습니다. 마침 한류가 대중화되어 일본에서 한국인에 대한 시선이 달라진 시점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자이니치라고 당당하게 말함으로써 생기는 또 하나의 낙인은 바로 한국어를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 저는 '자이니치'라는 말을 일본인이 아니라고 용감하게 표출하는 도구인 동시에 한국어를 모르는 것에 대한 근거로 쓰고 있었지만, 조선학교 출신자의 친구나 한국 친구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자이니치라서 한국어를 못한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지요. 그 때부터 저는 한국어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과거를 되돌아보면 그 동안 제 삶은 낙인을 관리하는 역사로 요약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에는 회피함으로써, 대학교 입학 이후는 일부러 가시화함으로써, 그리고 한국어를 배우고 나서는 최대한 한국의 문화적 자본을 가짐으로써 자이니치에 부여된 낙인을 제거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한국에 와서 한국인이 되고 싶지 않은 나를 발견

 그런데 한국에 살고 한국어를 공부하고 한국인 친구와 교류하면 할수록 저는 스스로가 한국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또 한국인이 되고 싶지도 않는 스스로를 발견했습니다.

옛날에 서대문형무소를 갔다 왔다고 한 저한테 어떤 한국 친구가 "아, 역시 너는 우리랑 같은 한국인이네"라고 했을 때 저는 처음에는 순수하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일본사회에서 소외감을 느꼈던 제가 처음으로 국가라는 공동체 안으로 소속감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그 친구는 한국과 일본이라는 두 가지 국가 기준으로만 저를 규정하려고 한 것이며, 국가의 경계에 있는 자이니치의 민감하고 애매한 정체성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친구는 제가 분명히 '한국인'으로서의 시선으로 서대문형무소 전시물을 보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 친구들은 제가 어색한 한국어를 쓰는 것을 이해 못하기 마련입니다. 한국과 일본의 이분법적인 구조 속에서만 저를 보는 한국사회에서 저는 한국에서도 이방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동안 상상하기만 했던 '고향'을 한국에서 찾으려고 했지만, 결국 저에게 고향이란 이미 존재하지 않는 기억 속의 조선반도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제가 마음의 안식처라고 생각할 수 있는 실제 고향은 일본에 있다는 것을 솔직하게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동포라는 말

 여기서 처음에 제가 자기소개를 할 때 썼던 '동포'라는 말을 다시 생각해 봅시다. 저는 한국에서 재일동포라고 할 때마다 스스로를, 그리고 상대방을 속이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동포'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형제자매" 혹은 "같은 나라 또는 같은 민족의 사람을 다정하게 이르는 말"이라고 나옵니다. 그리고 교포라는 말은 "다른 나라에 아예 정착하여 그 나라 국민으로 살고 있는 동포"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참 아름답게 들리는 이 '동포' 그리고 '교포'라는 말은 그러나 한민족이라는 민족의식을 갖고 있음을 전제로 합니다. 따라서 '동포'가 요구하는 '민족의식'이 가끔씩 저한테는 부담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저는 한국과 일본 어느 쪽에도 소속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은데 '재일동포'라고 자기소개를 하는 순간 저는 한민족의 일원이 되는 것 같아서 답답하게 느낄 때도 있습니다. 2000년대 이후 한국에서는 '다문화공생'이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쓰여 있지만 한민족 그리고 동포 안의 다문화성에는 아직도 귀를 기울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얄궂게도 한국사회는 동포를 국가 기준으로 구별하기도 하지요. 재미동포나 재일동포에 대한 동경과 비슷한 우호적인 감정에 대해 조선족, 탈북자 사람들에 대해서는 차별의식과 편견이 가득 찬 시선으로 바라보고 고려인에 대해서도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는 현상만으로도 충분히 '동포'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모순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재일동포도 경제적 동경의 대상뿐만 아닙니다. 일본에서 왔다는 이유로 한국 사람들은 우리에게 반일감정의 화살을 돌리기도 하고 반공주의의 필터를 통해서 우리를 구별 짓기도 합니다.

재일동포, 재일교포, 자이니치, 재일코리안, 재일조선인 등 우리를 정의하는 호칭은 다양하게 존재하지만 이것은 거꾸로 말하면 자이니치 사회가 결코 하나의 역사와 정체성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어떤 사람은 한국 또는 북한에 충성을 보이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조선반도를 조국이라고 믿고 아직도 한국국적을 취득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와 같은 경계선에 서고자 하는 디아스포라도 있습니다. 특히 어디에도 소속하고 싶지 않는 저는 아직도 스스로를 규정하는 언어를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제3의 입장을 취하고 싶어도 이 양쪽 국가는 저를 한국인 아니면 일본인이라는 국가 차원으로만 판단합니다. 그러한 가운데 국가가 요구하는 '애국'의 수준에 도달하지 못할 경우에는 동포는 제도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취약함을 자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민족의식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묶이는 공동체

 저의 조상은 조선반도 출신이고 제 몸에는 조선인의 피가 흘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형제간에서도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갖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해외동포들도 국가마다 그리고 개인마다 다양한 가치관과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동포 공동체뿐만 아니라 거주국 사회 사람들이나 한국인, 북한사람들과의 사회적 유대를 나름대로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이제는 동북아시아 동포로서의 공동체가 필요하다면 그 공동체는 민족의식이나 하나의 정체성으로 묶이는 공동체가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까요? 솔직히 저는 아직도 명백한 답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1,2세대가 중심이었을 때는 언제나 '투쟁'의 주체였던 해외동포는 이제는 확실히 공생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포로서 생기는 낙인은 여전히 많습니다만 한국과 거주국을 서로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디아스포라에게는 큰 장점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디에도 소속하지 않음으로써 생기는 소속감이라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글쓴이 / 김이향
 재일교포, 도쿄 출생
 서울대 인류학과 대학원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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