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일(수) 오전 10시30분, 신돌석 장군 유적지 내 충의사에서 열려 ◈
대한제국 말기의 항일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신돌석 장군을 기리는 「신돌석 장군 순국 110주기 추모행사」가 20일(수) 오전 10시 30분, 신돌석장군 유적지 내 충의사에서 장산 신돌석장군 숭모위원회(위원장 김호경) 주관으로 열린다.
이 날 추모식에는 김대훈 경북남부보훈지청장을 비롯한 각계인사와 유족, 시민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참석 내빈의 추모제향을 시작으로 숭모사, 기념사, 숭모문 낭독, 추모공연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 식 순 ◈
■ 추모제향 ■ 개회, 국민의례 ■ 인사말씀 김호경 숭모위원장 ■ 숭모사 차상수 영덕군문화관광과장 ■ 기념사 김대훈 경북남부보훈지청장, 조주홍 경북도의회의원 ■ 유족대표 인사 신재식(신돌석 장군 손자) ■ 숭모문 낭독 각계 대표(미정) ■ 추모공연, 추모시, 추모가 축산중학교 교사 및 학생 ■ 폐회 |
◈ 신돌석 장군 공적 ◈
신돌석 선생은 1878년 11월 3일 경북 영해군 남면 복평리(현재 영덕군 축산면 부곡리)에서 신석주(申錫柱)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평산(平山)이고, 자는 순경(舜卿)이며, 이명으로 대호(大浩)·태호(泰浩)·태을(泰乙)·돌석(乭錫)·돌석(突石) 등이 있다.
1895년 일본군의 명성황후(明成皇后)의 살해(을미사변)와 단발령(斷髮令)으로 국민들의 대일 감정은 극도로 악화되었고 그 결과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봉기하였다. 1896년 선생은 경상북도 영해(寧海)에서 19세의 젊은 나이로 100명의 의병을 이끌고 거사를 일으켰다.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 : 양국 간의 평등한 조약이 아니라 일본이 대한제국 정부를 강압하여 체결한 조약) 체결로 또 다시 전국 각처에서 의병이 봉기하자 1906년 3월 의병 100여 명을 규합하여 영릉의병장(寧陵義兵長)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봉기하였다. 4월에 울진 장흥관(長興館)에서 일본군의 배 9척을 기습 파괴하고, 6월에는 강원도 원주의 병정들을 습격해 항복을 받았다. 이어서 삼척, 강릉, 양양, 간성 등지에 주둔한 일본군을 공격하였고, 그들이 전선을 가설하는 작업을 공격하여 방해하기도 하였다.
1907년에는 울진 매화당(梅花堂)에서 수동(壽洞)으로 돌아와 다시 의병을 증모하였고, 영덕의 관공서를 공격하였다. 또한 일본군이 청송에 집결해 있을 때 이를 공격하기 위해 의병을 가까운 청부(靑鳧)역으로 진군시켰다. 이러한 소식을 접한 주민들이 자청하여 의병은 3,000여 명으로 증가하였다. 이에 일본군이 영양의 주곡(注谷)으로 퇴각하자 이를 공격하여 격퇴시켰다. 이어 진보(眞寶)의 삼위(三危)에서 적을 격파하고 경주의 대산성(垈山城)에서 연일 대일 전투를 벌였으며, 청하에서 조현(鳥峴)에 이르러서도 적과 싸워 승리하고 소항을 지나 대동(大洞)으로 진출하였다. 10월에는 영해경무서를 공격하였다.
1907년 12월 전국의 의병은 서울을 공격하기 위해 이인영(李麟榮)을 중심으로 13도 의병이 연합하여 양주(陽州)에 집결하였고, 선생도 경상도 의병을 대표하여 의병 1,000여 명을 모아 양주에 올라왔다. 그러나 선생은 의병진 재편 과정에서 평민 출신이라는 이유로 제외되었다. 당시 13도 연합의병의 지도부는 양반이나 유생 출신이 지휘하였다. 결국 13도 연합의병은 계획과 지도력의 미흡으로 서울 공격을 성사시키지 못한 채 해산되었다.
이후 선생은 의병을 이끌고 영해로 돌아와 1908년 1월 평해의 독곡(獨谷
var MYNEWS_PHOTO_LIMIT_WIDTH = parseInt("790");
var imageLoaded = function(obj) {
// Run onload code.
var title = obj.attr('title');
obj.attr('alt', title);
obj.removeAttr('title');
var image_align_class = "";
var clazz = obj.attr('class');
if (clazz != null && clazz.length > 0) {
image_align_class = " "+clazz;
}
obj.attr('class', 'img');
obj.removeAttr('xtype');
var w = obj.width();
if (isNaN(w)) {
w = 0;
}
var h = parseInt(obj.css('height'));
if (isNaN(h)) {
h = 0;
}
if (w <= 0) {
var timg = new Image();
timg.src = this.src;
w = parseInt(timg.width);
if (isNaN(w)) {
//...
}
}
if (w > MYNEWS_PHOTO_LIMIT_WIDTH) {
var pct = parseFloat(MYNEWS_PHOTO_LIMIT_WIDTH) / parseFloat(w);
w = MYNEWS_PHOTO_LIMIT_WIDTH;
if (pct > 0 && pct < 1 && h > 0) {
h = Math.floor(parseFloat(h) * pct);
}
}
obj.css('width', w+"px");
if (h > 0) {
obj.css('height', h+"px");
}
if(image_align_class.trim() == "sm-image-c")
{
obj.wrap("");
}
else
{
obj.wrap("");
}
if (title != null && title.length > 1) { // 기본 공백 무시
if (title.indexOf('▲') == -1) {
title = '▲ ' + title;
}
// obj.af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