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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성 박사, '비행기 폭격수에서 복음의 사수로'

              ▲ 이종성 박사 살아생전 세계선교관 특강 후, 장영일교수. 노영상 교수기념촬영.

                 (‘통전적 신학’ 강의차 대전으로 차량으로  이성용 목사와 이동하기 전 모습).

 

고, 이종성 박사는 말했다. “제가 일본에서 중학교를 다닐 때입니다. 이때 제가 야구선수로 꽤 날렸습니다. 또한, 문학을 좋아해서, 일본어로 번역된 세계문학전집과 일본문학전집을 통독했습니다. 작문 발표회에서 상도 탔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 두 가지 분야에서 생을 재미있게 보내려고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와세다대학 문학부에 입학원서를 제출했습니다.

 

그러나 뜻밖의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너는 조센징이기 때문에 문학 같은 고급공부는 하지 말고, 무기를 만드는 공부를 해서, 미국 놈들과 전쟁을 하는데 도움을 주라.” 라며, 그들은 원서를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화가 나서 못 참을 지경이었으나 약자의 설음을 마음에 품고 청산학원 공과대학 항공기과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공과대학을 지원한 이유를 밝히자면, 장차 항공사가 되어 동경 궁성을 폭격하여 천황을 죽이거나, 그것이 실패로 돌아가면 비행기로 미국에 망명할 계획이었습니다. 그전에도 다른 기회에 동경 도민을 몰살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때, 하숙하고 있던 김병섭이라고 하는 선배와 함께 생각한 것이, 상수도에 독약을 넣어 동경도민을 죽이려는 것이었습니다. 동경도민을 죽일 수 있는 양의 약을 사려고 했으나 약을 살 돈이 없어 단념한 일었습니다.

 

그런데 1945년 3월 9일 미국 공군의 동경 대폭격이 일어났습니다. 다섯 시간 동안 동경의 약 3분의 1이 완전 소진 되었습니다. 30만 명이 사상을 당했으며, 동경이 그야말로 생 지옥이 되었습니다. 공터에는 타다 남은 검은 시체가 산더미처럼 싸여 있었습니다. 나는 한 시간 동안 그 광경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 후 일주일 동안 몽유병자가 되었습니다. 그때까지 살아온 궤도에 대 혼란이 일어났습니다. 내가 이때까지 살아온 길이 어디로 가는 길인지, 내가 생각하고 계획했던 일이 잘된 것인지, 한국 땅에서 이 일본 땅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나의 설 자리는 어디에 있는지, 이러한 생각이 뒤범벅이 되어 일주일을 지냈습니다. 일주일이 지나고 혼란은 가라앉고, 마음이 정돈되었습니다. 다음 주일날 다니던 교회에 가서 조용히 예배를 드릴 때는 마음에 서광이 비추었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공부를 그만두고 사람을 살리는 공부를 하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옳다. 이것이다. 교회에서 예사롭게 들리던 그 말, 내 이웃을 사랑하라. 살인하지 말라. 예수님은 만인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다는 말을 얼마나 많이 들었는가? 그 동안 너는 사람을 죽이는 방법과 공부만 하지 않았는가. 아니다. 삶의 방향과 목표를 바꾸라. 옳다. 사람을 죽이는 공부가 아니라 살리는 공부를 하자. 그러한 공부가 있을까? 의학과 신학이다. 의학은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신학을 하여 만민에게 살 수 있는 방향을 가르치자.” 주사위는 던져졌습니다. 다니던 공과대학을 중퇴하고 신학대학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동경신학대학(일본 기독교 신학전문학교) 예과에 입학하여 6년간의 신학을 공부한 것이 1945년 5월이었습니다.

 

이러게 하여 사람을 죽이는 기술을 배우던 내가 사람을 살리는 기술인 신학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6년간의 신학 공부를 마치고 1년 동안 전도사로 목회한 후 목사 안수를 받은 것이 1952년 3월 2일 일본 동경교회에서였습니다. 그리고 현재, 가르치는 신학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약 4,000명의 제자를 신학 전문가로 길렀으며, 그 중 대다수는 목회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비행기 폭격수 후보생에서 복음의 사수가 된 나는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에 놀라는 동시에 한량없는 감사의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를 알리려고, 인간 언어의 부족함을 알면서도 그 언어와 논리로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쓴 책이 60권이나 됩니다. 그러나 아직도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를 알기에는 너무 부족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제 이 세상에서의 순례자로 서의 여정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쉬지 않으렵니다. 나의 삶의 푯대를 향하여 꾸준히 달려가렵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살리기 위하여.

 

이종성 박사 약력

동경신학대학 졸업(1951년), 풀러신학대학교(B.D), 루이스빌신학대학교(Th.m),

프린스톤대학교, 샌프란시스코 신학대학교(Ph.d), 장로회신학대학교 총장역임.

예장 총회(통합) 증경총회장, 기독교학술원장, 웨스트민스트신학대학교 총장,

저서: (전통과 혁신), (거리의 신학), (신앙과 신학).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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