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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칼럼) 한국정치권에서 논하는 보수 진보정치란 무엇인가?

친일과 친북을 탈피한 보수 진보 정치를 펼쳐야

한국정치권에서 논하는 보수, 진보정치란 무엇인가?

 

 21세기형 대한민국의 보수라고 한다면 이른바 ‘태극기 부대’에 참여하고 있거나,  극성스러운 특정 종교 성향의 전광훈 목사를 흔히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사실 보수라는 어원은 정치적 노선을 일컫는 말이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한계가 있을지라도 지금 체제가 최선이고 변화를 모색하더라도 어디까지나 현 체제 안에서 시도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렇게 따지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보수라는 구분 안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실제로 상당 기간 동안 대한민국 정치의 주류는 보수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정치 지형이 변화되었지만 원래 개별 유권자들의 성향으로서 존재했던 보수정치적 요인들이 다른 데로 옮겨 간 것은 아니다. 앞으로의 정치적 환경은 이런 요소들이 어떤 방식으로 표현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이를 가늠해보기 위해서는 정치에서 보수적 요인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형성돼 왔는지를 따져보는 게 중요할 것 같다. 

 

지금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는 보수정치의 흐름은 크게 두 갈래로 나눌 수 있다. 이중 첫 번째 경우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시대로부터 이어져 온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스스로를 4·19혁명 직후 혼란을 일소하고 국가의 기틀을 잡은 인물로 규정했다. 이승만 시대가 대외 원조를 통한 전후 재건을 모색하는 단계였다면 박정희 시대는 축적된 자원을 본격적으로 활용해 개발에 나서는 시기였다. 국가 주도의 수출 중심 경제 모델은 극도의 효율성을 추구했다.  

 

대의민주주의 원리의 실현이나 인권의 보장 등은 경제 개발의 긴급한 필요에 밀려 상당 기간 유예되었다. 이후 군사독재 정권은 앞의 박정희 정부와 경제정책 면에서 색깔을 달리했지만 적어도 어떤 효율의 달성을 위해 민주주의와 인권을 희생할 수 있다는 가치관은 그대로 유지했다. 이런 식의 통치 원리를 내면화 해 삶의 중요한 가치관으로 삼는 이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앞서 언급한 ‘태극기 부대’의 주력이 이에 해당할 것이다. 여의도 정치의 기준으로 보면 이들과 정체성을 같이 하는 세력은 문민정부 탄생 과정에서 밀려났다가 박근혜 정권에 이어 윤석열정부 들어 와서야 정치적으로 복권되었다. 

 

하지만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사상의 문제로 따지면 앞서 서술한 형태의 ‘박정희주의’는 보수정치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이 공유하는 정신적 축의 하나로 오랫동안 생명을 유지해왔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생은 이들의 청춘을 지배했던 박정희주의가 아직 체제적 원리로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는 하나의 증거처럼 간주되었다. 

 

때문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은 이러한 세계관을 일거에 붕괴시키는 트라우마적 사건이었다. 박정희주의의 기준으로 보면 어떤 수단을 쓰던 결과적으로 나라를 잘 운영하면 그만인 것이다. 국민이 위임한 통치권을 사사롭게 사인에게 넘겨준 것이나 기업을 겁박해 공적 목적이 불분명한 재단 출연을 강요한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체제는 바로 이러한 행위가 ‘위헌적’이라는 이유로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 내렸다.  

 

이 시점에서 대한민국은 더 이상 ‘나’의 나라가 아니라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그래서 ‘태극기 부대’는 자신들만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들이 거리에 있으면서 결코 다른 사람과 소통하지 않고 공중파 방송과 주류 언론을 모두 거부한 채 자신들의 세계관을 끊임없이 재생산해주는 유튜브 방송에 중독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정치권에서의 보수 진보는 어떻게 구분되어져야 하는가?

 

한국에서는 진보, 좌파라는 단어에 대한 이미지는 보수, 우파에 비해 상당히 부정적이다. 보수, 우파라는 단어는 안전지대에서 보호받는 것이 보장된다는 고정관념이 지배적이다. 우파는 아무데서나 ‘나 보수요, 우파요’라고 큰 소리를 칠 정도다. 체제로부터 보호받고 있다는 큰 공감대 속에서 안도감과 상당한 정도의 우월감을 느끼는 그런 태도다.  

 

그러나 진보, 좌파, 종북 이라는 단어는 비우호적이거나 반사회적, 반체제적이라는 의미로 통용된다. 이들 단어에서 주류사회에 대해 비판적이거나 그래서 사회에서 걱정스런 눈초리를 보내는 그런 존재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좌파는 현실 속에서 우파가 겪지 않아도 되는 유무형의 불이익을 감수하거나 강요당한다.  

 

대소 선거에서 그렇듯이 우파는 진보, 좌파, 종북을 한 데 묶어서 말이 되건 안 되건 간에 비판하고 공격한다. 이 세 단어가 각각 차이가 있을 법하지만 그것을 구분하지 않는다. 싸잡아서 비판하는데 그것은 북에 동조하거나 남한 체제에 적대적인 것이라는 의미가 담긴 듯이 사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북한에 퍼주기를 한 좌파에게 정권을 넘길 수 없다. 진보 정권이 나라를 망쳤다’는 식으로 짧은 문장에 담아 TV 토론에서나 유세장에서 외친다.  

 

보수 정치인들이 종북, 좌파 발언을 하는 것은 국가보안법에 세뇌된 한국 사회 유권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쳐 자신에게 유리한 것인가를 계산한 결과라 하겠다. 국보법이 보장하는 정치적 부당 이익에 눈이 먼 작태다. 북한 핵과 미사일, 사드 등으로 한반도의 전쟁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유권자들에게 북한을 연계시킨 종북 몰이 발언을 하는 것은 국보법에 의한 기울어진 선거 운동장이 여전하다는 것을 드러낸다. 유권자의 최대 정치 잔치인 대선 유세 과정에서 매카시즘이 난무하는 현실은 이 사회의 후진성, 야만성이 어느 정도인가를 드러낸다.  

 

오늘날 한국 정치권에서 제1여당은 보수, 제1야당은 진보로 지칭되고 있으나 그 속내를 살피면 서구의 보수, 진보와는 큰 차이가 있다. 국보법이 존속하는 제한된 사상의 공간 속에서 한국의 거대 정당은 보수 성향 쪽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승만이 만들어 놓은 국보법의 테두리 안에 갇히고 그 독기에 중독된 형국이다. 오늘날 한반도 비핵화 추진 과정에서 남북 관계가 호전되고 있지만 보수진영에서는 나라가 좌파에 의해 거덜 나고 있다는 식의 가짜 뉴스를 대량생산해 유포하고 있다.   

 

특히 한국의 보수는 조선의 지배층, 친일세력, 친미세력이 변신한 것이다. 일본에 대해 우호적이고 미국을 혈맹으로 여기면서 북한에 대해 적대적이다. 하지만 분단 상황을 악용해 안보 우선주의를 앞세워 정략적, 정파적 이해관계를 챙겨왔다. 보수층은 해방이후 한국 사회의 주류세력이 되면서 부정부패의 온상처럼 되었고 오늘날에도 시정되지 않고 있다.  

 

한국의 진보는 보수 세력에 대한 비판 또는 대항적 의미를 지닌 세력으로 출발했다. 진보세력은 보수세력이 지닌 속성과 반대되는 방향을 지향하는 것으로 비춰지기도 하고 한국 사회의 비주류로 인식되고 있다. 진보는 보수의 친일, 친미 등 외세 의존적 성향에 비판적이고 북한과의 평화공존과 민족이 함께하는 협력을 추구한다. 

 

한국에서 진보 정치세력에 대한 탄압은 국보법이 만들어진 1948년부터 본격화되었다. 특히 이승만, 박정희 독재 시절 진보세력에 대한 탄압이 심했다. 4.19 혁명, 5.16 군사쿠데타 전후 수년 동안 한국에서의 혁신 정치, 진보 정치 세력이 큰 타격을 입었다. 이승만의 조봉암 사법 살인과 박정희의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 불법 살인 등이 대표적이다. 한국의 진보세력은 80년대 이후 겨우 기지개를 켰지만 김일성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세력들이 존재했고 지령에 따른 간첩활동 등을 21세기 들어와서도 계속됨에 따라 박근혜 정권에서는 통합진보당을 강제 해산 시키기도 하였다. 

 

한국 사회에는 진보, 보수간에 상한선 없는 논쟁이 존재하지 않았고 현재도 마찬가지다. 국보법이 그것을 막고 있다. 국보법은 북한을 반드시 괴멸시켜야 할 불구대천의 원수로 규정하고 경계하기 때문에 북한의 장단점을 객관적으로 분석, 평가하는 것은 금물이다. ‘북한이 잘했다거나 긍정적이다 또는 합리적이다’라는 표현은 한국 사회에서 금기 사항이었고 비핵화가 추진되는 과정에서도 대부분의 언론은 미국 위주의 보도에 매달리고 있다.  

 

반면에 서구의 개념으로 보면, 보수주의는 역사적으로 진화하면서, 지속성과 안전성을 지닌 제도와 행위를 선호하는 이데올로기 또는 태도다. 보수주의는 추상적이거나 이상적인 것보다 역사적으로 계승된 것을 선호한다. 보수주의자는 변화는 최소한으로, 그리고 점진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이상주의라기보다 현실주의자다.

 

진보는 대체로 개인의 자유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그것은 생각하고 신뢰하고 자신의 견해를 표현하고 토론하거나 정당을 만드는 등의 결사의 자유와 직업 선택의 자유, 자신의 노동력을 포함한 상품을 사고파는 자유, 정부 형태는 물론 자신의 지배자를 선택하는 자유, 심지어 혁명으로 그것을 교체하는 자유 등이 포함된다. 이러니 진보는 분열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진보의 분열에 대해 부정적인 낙인을 찍어 진보를 옥죄는 사회적 프레임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보수주의는 구체적인 전통을 중시하는 반면 진보주의는 추상적 이론화를 시도한다. 이런 탓으로 보수주의자들은 진보주의나 급진주의자들의 이론적 성과에 필적할만한 이론 개발의 성과가 없다. 보수주의는 사회가 너무 복잡해서 진보주의 등에서 제시하는 사회개혁 프로그램이 무익하고 위험하다고 주장한다. 

 

서구사회의 진보와 보수는 경쟁과 협력, 대립과 협조, 갈등과 화해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상대의 장점을 취하며 자기의 단점을 버리는 식으로 진화를 거듭했다. 서구의 자본주의가 사회주의에서 많은 것을 차용한 것처럼 진보와 보수도 마찬가지였다. 서구의 진보와 보수는 21세기 들어 국민투표를 통한 집권을 중시하면서 그 차이점이 많이 희석되었다. 예를 들어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 문제, 복지정책의 경우 보수와 진보의 차이는 많이 좁혀져 있다.  

 

한국의 보수와 진보도 북한과 일본을 제외한다면 서구와 마찬가지로 그 차이가 많이 희석해지고 복지정책 등에서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등 보수와 진보가 공동의 가치로 나아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월간, 한국뉴스신문) 김상문 칼럼리스트  정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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