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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역경에서도 포기하지않는 정신은 성공의 지름길

글로벌조선족성공인

 박동호 사장 


생산공장


각종 철제 받침대 제품들


중국의 천진직할시 징하이(静海)경제개발구에 들어서면 천진헝펑진다금속구조유한공사(天津恒丰金达金属结构有限公司)’(이하 헝펑이라 약칭)라고 쓴 간판이 멀리 안팎에서도 유표하게 안겨온다. 부지면적이 2만평방메터 되는 넓은 공간엔 높고 낮은 공장건물이 우뚝우뚝 솟아 있고 창고안에는 이름 모를 금속기기 그리고 반완성품, 완성품인듯한 제품들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다. 각종 철제 제품들을 만재한 트럭들이 공장 출입구를 빠져나와 뿌연 연기를 내뱉고는 순식간에 저멀리로 살아진다. 얼핏봐도 규모화된, 잘나가는 기업이라는 느낌이 확실하게 다가온다. 이 기업을 이끄는 이가 바로 박동호 사장, 갖은 곤난을 겪으며 마침내 이 낯설고 물설은 고장에 와 금속구조업계의 굴지기업을 일떠세워 그 이름이 자자하다. 

대담하게 창업에 뛰어들다

고향이 흑룡강성 밀산인 박동호 사장은 원래 남부럽지않는 국가공무원으로 농간당학교에서 근무했다. 시장경제에 각별한 관심이 많았던 그는 정상적인 출근외에 짬짬이 무역에도 종사하면서 비즈니스 경험을 쌓아갔다. 1997년 당시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폭발해 각 나라, 지역마다 그 위기에 휘말려 진통을 겪고 있을 때 그만은 이럴때일 수록 기회가 온다고 생각하고 과감히 안락한 직장을 떠나 창업의 길에 올랐다. 처음에는 자금을 축적하기 위해 위해, 상해 등 지를 전전하며 시장관리도 하고 제품판매도 하면서 힘든 나날을 보냈다. 한동안은 물고기를 파는 일을 했는데 받는 월급이 1200위안으로 얼마안되었지만 아껴 쓰고 아껴 먹으면서 모은 덕분으로 얼마간의 자금을 축적하게 되었다.

일만 하지말고 그 자금으로 자그마한 장사라도 해보는게 어떨가? 생각 끝에 할빈의 어느 호박농사짓는 농가와 연계하여 호박을 팔기로 하였다. 자금이 부족하기에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좀씩 꿔서 10만위안을 만든후 되거리 장사군들과 계약을 체결하고 곧 자금을 지불하였다. 그런데 누가 알았으랴? 처음으로 하는 장사라 꼼꼼이 생각하며 빈틈없이 추진했건만 물건은 오지않고 자금도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알고보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 사기군들의 사기극에 말려든 것이다.

아글타글 모은 돈으로 시작한 장사가 실패를 보자 수입내원이 없는 그에게는 엄청 큰 타격이 아닐 수 없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허약한 몸에 기침이 나 병원에 가보니 처음에는 폐염이라 하여 의사가 준 약을 먹고 치료하기로 하였다. 며칠 지나도 계속 통증이 나 다시 병원에 가보니 폐암이라는 청천벽력같은 판결이 나왔다. 큰 일을 해보겠다고 집을 떠난지 꼭 2년만이다. 그는 할 수 없이 다시 할빈에 가게 되었고 혹시나 하여 재검사 하였는데 암이 아니고 일반 염증라는 판정이 나왔다. 시름놓고 집에서 소염약을 먹으며 한동안 치료에만 열중하였다.

한번 먹은 마음 굽힐 수 없어

치료를 통해 얼마간 건강이 회복되자 박동호는 집에만 붙박혀 있을 수 없었다. 한번 먹은 마음 굽힐 수 없었던 그는 2002년에 재차 집을 떠나 천진의 한 금속제품유한회사에 입사하였다. 한동안 이 회사에 근무하면서 돈을 벌려면 그래도 부동산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부동산업자와 합작하여 집을 짓기로 마음먹었다.

당시 8000평방메터나 되는 부지면적에 집을 지었는데 예상밖으로 집이 팔리지않아 얼마안가 600만위안이라는 거액의 빚을 지게 되었다. 그에게는 천문수자나 다름없는 큰 돈이였기에 더는 헤어나올 수 없는 궁지에 몰리게 되면서 실망 끝에 이 세상을 떠나려는 최후의 각오까지도 하게 된다.

“600만위안이란 빚을 짊어지고 나니 앞이 캄캄해 도무지 이 세상을 살아갈 방도가 나지 않았다. 지나가는 기차를 보면서 저기 철길에 이몸을 맡기면 그만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도 거듭 해봤지만 가정이 있고 자식이 있는 나, 그보다는 만약 이렇게만 된다면 죽어서도 세상 사람들의 차거운 비난을 받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죽음보다도 더 무섭게 뇌리를 쳤다. 용기를 내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데 살아 남을 방도를 찾아야지

박동호 사장은 그때의 심리상황을 이와같이 술회했다. 막다른 골목에 으르고 보니 별의별 생각이 다 나더라는 그의 솔직한 얘기였다. 허나 역경속에 기회는 있다. 아무리 막다른 처지에 이른다해도 순간적으로 생각이 바뀌면 상상외의 기적이 일어날때도 있다. 박사장은 집이 팔리지않으면 임대업은 어떨가? 하는 기발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는 즉시 동료와 계약을 맺고 2000평의 세집을 내 임대업을 시작했다. 당시 천진시도 한창 개발단계에 들어갔기에 외지 민공들이 쉴새없이 모여들었다. 세집 광고를 내자 숱한 사람들이 찾아왔고 임대업이 호황을 맞이해 수입이 짭짤했다. 그덕에 2년도 안돼 엄청난 빚을 청산하고 거듭 소생의 기회를 맞이하게 되었다. 

자신의 우세를 발휘하면 성공이 뒤따른다

성공 경영자들의 비결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박동호는 스스로 믿는 것이 첫 번째 비결이라 생각했다. 임대업으로 성공은 했지만 부동산이란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자주 발생하기에 항상 위기가 뒤따른다. 그는 자신이 결코 부동산으로 더 큰 발전을 하기 어려울 것이라 판단했다. 전에 부대 공정병으로 있을 때 기계작업을 많이 하면서 어느정도 기계를 다루는 재간을 익혔다. 강재를 자르고 부품을 가설하고 지어 전기를 다루는 일은 누구보다 못지않게 해낼 자신이 있었다. 또 금속제품유한회사에 다니면서 얼마간 경험도 쌓은 상태다. 이는 자신만의 우세라고 생각한 그는 수중에 있는 자금으로 용접기며 타공기 그리고 절단기를 갖춰 건축용 철골구조 조립을 시작했다.

그가 이 건축자재를 생산하게 된 계기는 어느 하루 TV를 통해 시청한 중동지역 관련 뉴스였다. 듀바이, 아랍연합추장국, 아만 등 나라와 지역에서 부동산 건설이 급속도로 추진되는데 건축방식을 보면 철골구조 자재가 엄청 수요된다. 한순간의 판단이지만 기업인으로서의 민감성은 그 정확성을 어느정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국, 일본 등 나라의 업자들과 교류하면서 진일보로 관련 소식을 알아봤다.

비즈니스의 최종목적은 돈이 아니라 고객만족이다. 박동호는 이 점을 명심했다. 고객만족에서 우선은 품질이다. 품질에 대한 평가는 고객들에게 의뢰하는게 가장 바람직하다. 하여 관련 바이오들을 초청하여 직접 현장에 와 확인하도록 하였다. 당시 여러 나라의 바이오들이 현장 고찰을 한후에는 아예 즉석에서 제품을 주문하였는데 그 수자가 엄청나 일군 130여명이 밤낮으로 일하며 임무를 완성해야 했다. 적을때에는 한달에 3040콘테나, 많을때에는 100콘테나가 실려나갔다니 물량이 얼마였겠는가는 알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한편 하루에도 일사천리를 내달리며 호황을 이루던 시기도 잠간, 2009년 세계경제위기 도래로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면서 또 한차례 된 서리를 맞게 되었다. 제품 가격이 맞지않아 주문량이 대폭 줄어들었고 지어 재고품이 팔리지않아 헐값으로 처리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몇 달안에 또 300만위안이라는 빚을 짊어지게 되었다. 100명이상되던 일군들이 하나둘 떠나더니 결국 56명 밖에 남지않는 비참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생각을 바꾸면 혁신이 일어난다

박동호 사장은 포기하지않는 정신이 있다면 그어떤 역경에서도 새로운 기회를 찾아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창업 첫 시작부터 거듭되는 위기에 직면했지만 용케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항상 포기하지않는 정신적 자세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2009년의 경제위기는 타격이 심했다. 자금은 거덜이 나고 일군들도 몇몇 남지않았다. 창업을 시작해 최대의 위기를 맞은 것이다.

상황이 어찌되었든 경영인으로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어떤 방법으로든 탈출구를 찾아야했다. 이럴때일수록 생각을 바꿔야만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게 박동호 사장의 사고방식이였다. 하루가 멀다하게 발전하는 현대사회에서 전통적인 경영방식은 한계가 있다. 1%의 가능성만 있다해도 새로운 방향을 찾고싶었다. 그러던중 컴퓨터를 이용한 온라인 쇼핑몰을 생각하게 되었고 즉시 당시 중국에서 성행하고 있는 최대 쇼핑몰 알리바바와 연계를 가지게 되었다. 마침 알리바바측에서는 이 회사의 온라인 판매를 허락하였고 어쩔 수 없이 부도의 위기에 처했더 회사가 재생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제품이 온라인에 등록되자 중동은 물론 아프리카 나라 지어 미국에서까지도 문의가 들어왔다. 2012년부터 얼어붙었던 시장이 다시 활성화되면서 주문이 급속도로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일군들이 급히 수요되었다. 종래로 경제효과는 일군들의 손에서 창조된다는 경영이념을 굳혀온 박 사장은 이번에는 일군들에 대한 대우에 더욱 신경을 썼다. 대부분 일군들은 독신자이기에 주숙, 식사 모두 문제였다. 회사에서는 자금을 더 쓰면서라도 숙식을 해결해주고 하루 세끼는 물론 밤참까지도 제공하였다. 누구든 1전한푼 들이지않고도 이 회사에 와 일할 수 있다. 하루를 일해도 일당으로 쳐주고 야근을 하면 더욱 후하게 대해줬다. 아무리 어려워도 급여는 약속된 날자에 넣어주고 명절이면 뽀나스도 챙겨주었다. 전에 떠나갔던 일군들이 그 소문을 듣고 하나 둘 찾아오면서 쥐죽은 듯 조용하던 생산현장이 다시 생기를 띠기 시작하였다.

이 회사는 이미 자동화 용접생산선, 도색작업장, 부품가공공장, 수치제어, 천공기 등 시설이 구전하며 각종 건축용 파이프, 조절 가능 철제 받침대, 문형비계, 비계부품, 울짱 등 제품들을 전문 생산한다. 제품의 질을 보장하기 위해 ISO9001-2008표준에 따라 잘량관리체계를 갖췄으며 여러 가지 철제 받침대 계열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한달 산량이 20만 세트에 달하며 각종 부품을 고객들의 요구에 따라 제조해낼 수 있다. 천진헝펑진다금속구조유한공사는 대외무역을 추진하기 위해 두 개의 국제무역회사도 설립, 생산된 제품이 세계 여러 나라에 수출되면서 업계에서 공인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음하였다.

어떤 역경속에서도 포기하지않고 남다른 용기로 대응하면서 오늘의 성공을 이룩한 박동호 사장이다. 그는 글로벌적인 안목으로 새로운 기회와 변화를 모색하면서 보다 회망찬 미래를 행해 나갈 것이라며 신심있게 말했다 

/전춘봉 기자 qcf20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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