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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생생한 터키 이야기] 차지도 덥지도 않았던 라오디게아

목화의 성 파묵칼레
부유했으나 가난했던 도시 라오디게아

[폐허가 된 라오디게아의 모습]

 

데일리연합(월간, 한국뉴스신문) 터키 원소명 특파원 | 이제 대한민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코로나19 팬데믹을 지나 포스트 코로나 시대로 진입하며 일상을 준비하고 있다. 터키도 이제 코로나19 팬데믹을 지나 일상을 다시 시작하려고 기지개를 켜고 있다.

 

특히 터키는 유럽의 유명한 여행지에 뒤지지 않는, 아니 오히려 유럽의 여행지를 능가하는 여행지들이 많이 있고 코로나19 이전에는 전세계에서 터키를 여행하려는 여행객으로 문전성시를 이루던 곳이었다. 빼어난 자연 환경과 헬라·로마 제국 및 기독교 문명이 만든 역사적 유물이 많기 때문이다.

 

그 중 파묵칼레(Pamukkale)는 빼놓을 수 없는 관광명소인데, 유럽과 아시아, 중동, 유라시아 대륙에서 온 관광객은 물론이고 한국 관광객들도 아름다운 석회봉과 온천수 때문에 패키지여행객이든 배낭여행객이든 예외 없이 반드시 방문하는 곳이다.

 

[목화의 성, 파묵칼레]

 

라오디게아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파묵칼레는 알고 있지만, 그 근처에 신약성서에 나오는 지명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일반인은 물론 기독교인들조차 그렇다.

 

파묵칼레 근처에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소아시아 7교회 중 하나인 라오디게아(Laodikeia), '골로새서'(COLOSSIANS)의 수신지인 골로새(Colossae), 그리고 히에라볼리(Hierapolis) 등 신약성서의 역사적, 지리적 배경이 되었던 곳들이 자리 잡고 있다.

 

라오디게아는 원래 기원전 2천년 경 그리스 본토에서 아나톨리아로 이주한 이오니아인들에 의해 세워져 디오스폴리스(Diospolis) 혹은 로아스(Rhoas)라고 불렸으나, 지중해 세계에 헬라제국 시대를 연 알렉산더 대왕 사후 시리아를 중심으로 세워진 셀류쿠스(Seleucus) 왕조 안티오코스(Antiochos) 2세가 기원전 261년과 253년 사이 도시를 재건하면서 자신의 부인인 라오디케(Laodike)의 이름을 따 라오디게아라 명명했다.

 

라오디게아는 로마제국 시대에 에베소(Ephesus)에서 동쪽 수리아(Suria) 지역으로 가는 길에 있어,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관문도시 중 하나였다. 라오디게아를 관통하는 길은 서쪽 에베소 해안에서 시작해 해발 약 2,800미터 높이의 중앙 고원을 올라가는 길인데, 깎아지른 듯한 메안델강의 협곡을 피해 완만한 리쿠스(Lycus) 계곡을 거쳐야 수리아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라오디게아는 빌라델비아(Philadelphia)에서 동남쪽으로 약 72km 떨어진 곳에, 에베소에서는 동쪽으로 약 160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상기한 대로 도시의 맞은편 북쪽으로 약 9km 떨어진 곳에는 히에라볼리가, 북동쪽으로 약 14km 지점에는 골로새가 있습니다. 이 세 도시는 모두 신약성서의 바울서신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부유했던 도시

 

라오디게아는 금융의 중심지였다. 이곳은 동방과 서방을 이어주던 실크로드 주요 지점에 세워진 관문 도시여서, 많은 물자의 교류와 사람들의 왕래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돈이 많이 몰리게 됐고, 금융 산업이 발달한 부유한 도시가 되었다.

 

그래서 은행업자들과 고리대금업자들이 많이 활동했었는데, 당시 로마 라티움 출신의 유명한 정치가이자 철학가, 문학가인 키케로(Cicero)는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보내는 20파운드(9kg 정도)의 금을 빼앗았다고 기술하고 있다. BC 51년 소아시아를 여행할 때, 그는 이곳에서 두 달 동안 머물며 수표를 현금으로 교환해 간 일이 있었다고 한다.

 

또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Tacitus)의 기록에 의하면 라오디게아는 당시 지중해 세계에서 가장 부요한 도시 중 하나였는데, AD 13년과 61년 대지진으로 완전히 파괴되었을 때도 로마 중앙정부의 지원 없이 지방정부만의 힘과 재정으로 막대한 피해를 재건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폐허로 남아있는 라오디게아]

 

모직·면직 산업의 발달

 

라오디게아는 교통의 요충지였을 뿐 아니라, 모직과 면직 산업의 중심지였다. 리쿠스 계곡의 넓고 기름진 땅에서 목양과 목화 재배가 활발했기 때문이다. 고대 지리학자 스트라보(Strabo, 주전 64년-주후 25년)는 그의 저서 『지리학』에서 라오디게아의 목양에서 얻은 털의 부드러움과 그 연함이 밀레시안(Milesian)의 그것을 훨씬 능가한다고 기록했다

 

이 지역의 현재 지명이 파묵칼레(Pamukkale)인데, 터키어로 '파묵'(Pamuk)은 ‘목화’, '칼레'(Kale)는 ‘성’이란 뜻이다. 그래서 파묵칼레는 '목화의 성'이란 뜻인데, 히에라볼리 바로 아래에 관광객이 많이 찾는 하얀 석회봉이 있고 그곳 때문에 현재 지명도 파묵칼레로 불리게 되었다.

 

그처럼 예전 모직·면직 산업이 상당히 발달했기 때문에 현재 지명도 자연스럽게 '목화의 성(Pamukkale)'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이 지방에서 나는 면제품의 질이 좋았기 때문에, 로마 제국이 이 지역을 통치할 때는 원로원에서 입는 흰 옷을 라오디게아에 주문·제작하기도 했다고 한다.

 

의학의 발달

 

라오디게아는 의학이 발달한 곳이기도 했다. 고대 버가모(Pergamum)의 유명한 철학자이자 의사였던 갈렌(Galen)에 의하면, 기원후 2세기까지 오직 라오디게아에서만 생산되는 방향성 식물로 귀를 튼튼하게 만드는 약이 조제됐으며, 안약 산지로도 유명했다.

 

프리기안 가루(Phrygian)로 만든 가루를 필요한 부분에 펴서 바르는 안약이 눈병 치료로 널리 사용됐다고 묘사된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도 프리기안 가루를 안약으로 언급했다. 또 의학교 교수 이름이 동전에 새겨질 정도로 의학으로 명성을 떨치던 곳이었다.

 

당시 라오디게아는 근처 히에라볼리에서 흘러내리는 따뜻한 온천물이 이곳에서 메안더(Meander) 강 지류인 리쿠스강과 만나기 때문에, 곳곳에서 제사를 드리면서 잡은 짐승의 피가 미지근한 물로 인해 오염돼 많은 질병, 특히 눈병과 귀 질환을 유발시키게 되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이 지방에서 나는 귓병 치료 특효약과 콜로니온(Colonion)이라 불리는 안약은 특히 유명했고, 그래서 라오디게아는 의료 도시로 명성을 얻게 되었다.

 

현재도 대부분의 터키인들이 일상생활에서 개인위생을 위해서 ‘콜로니아’라 불리는 일종의 세정제를 사용하고 있다.

 

[라오디게아]

 

물 공급

 

라오디게아는 위치적 중요성으로만 보아도 상업 및 전략적 중심지로 만들기에 충분한 구릉지이다. 그러나 그로인해 라오디게아에는 결정적인 핸디캡이 있었는데, 외부에서 도시로 수원이 들어와야 했다. 그래서 라오디게아에서 약 10km 떨어진 히에라볼리(Pamukkale)의 온천수를 수로를 통해 들어오게 해야만 했다. 온천수 덕분에 당시 라오디게아는 귓병을 치료하는 특효약과 안약의 산지인 의료 도시로 명성을 얻게 되었다.

 

라오디게아에서 북동쪽으로 14km 떨어진 곳에는 골로새(Colossae)가 있었다. 에베소에서 바울의 전도를 받아 회심한 에바브로가 골로새 지역에서 포교활동을 해서 세운 골로새교회가 있던 곳이다. 골로새 뒤편에는 만년설이 쌓여 있을 정도로 높은 바바산에서 만년설이 녹아 흐르는 아주 차가운 물이 있는데, 이 차가운 물을 라오디게아로 수로를 만들어 사용했다. 그런데 히에라볼리의 뜨거운 온천수처럼, 이 차가운 물도 14km를 지나다 보면 점차 미지근해져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은 마시기 역겨운 물이 되었다.

 

성서와 라오디게아(요한계시록 3:14~22)

 

[라오디게아]

 

라오디게아 사람들은 '자칭 부요한 사람'이라 할 정도로 부하여 신(God)의 존재까지도 필요치 않았다. 또 그들은 그곳에서 생산하는 멋지고 아름다운 의복을 자랑했지만, 성서에서는 ‘벌거벗은 자와 같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들은 눈병을 치료하는 기술을 과신했지만, 요한은 정작 ‘자신들이 눈먼 줄 모르고 있다’고 책망했다. 신의 계시를 받은 요한은 그들의 신앙이 히에라볼리와 골로새로부터 라오디게아로 흘러오는 물 같이, 덥지도 차지도 않음을 책망했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시들과 같이 이렇듯 멋지고, 아름답고, 부유한 삶을 살았던 라오디게아는 이제는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삭막한 모습으로 변해서 몇몇 관광객만이 잠시 들러가는 유적지가 되었다.

 

잘 나가던 라오디게아가 폐허로 남게 된 것은 거듭되는 자연 재해와 대형 지진 때문이다. AD 1710년과 1899년 대지진 때 이곳은 완전히 파괴되었는데, 2016년 이후부터 데니즐리 지방정부의 대대적인 투자로 인해 시장, 원형경기장, 신전, 목욕탕, 상점 등 많은 유적지를 복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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