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가 배럴당 60달러선까지 붕괴되면서 2009년 이후 5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국내 최대 정유사인 SK이노베이션을 비롯한 주요 정유·석유화학 기업의 막대한 손실이 우려된다.
문제는 지금의 상황이 개선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제유가는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감산에 반대, 공급 과잉 우려가 계속되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셰일가스 붐으로 원유 생산량이 늘어난 것도 악재다.
글로벌 경기 침체는 원유수요 감소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국내 주유소 휘발유 값은 25주 연속 하락하며 전국 평균 리터당 1500원대까지 낮아졌다.
이로인해 SK이노베이션 뿐만 아니라 GS칼텍스, 에쓰오일(S-Oil(010950)), 현대오일뱅크 등 정유사들은 모두 긴급 경영에 나서고 있다. 정유4사는 4분기(10~12월) 역대 최악의 성적표를 거둘 것으로 전망된다. 유가 급락이 장기화하며 비축해 둔 원유 재고평가손실이 점차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정유사들이 비축해 놓은 원유 재고 물량은 약 1000만~2000만 배럴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유가 내림세가 장기화하면서 환율 효과를 감안해도 정유사들의 4분기 재고평가손실은 3분기보다 2~3배 늘어날 것이란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3분기(7~9월) 국제 유가 하락으로 약 1900억원의 재고평가손실을 봤다. 전체 영업손실 2261억원의 84%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같은 기간 에쓰오일은 710억원, GS칼텍스는 380억원의 재고평가손을 각각 기록했다.
현대오일뱅크는 정유부문 악화에도 3분기 495억원의 영업이익을 봤지만, 4분기에는 적자를 피해갈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유사들은 올해 정제마진 악화와 막대한 재고평가손실로 누적 적자가 1조원을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정유사들은 최악의 시기를 맞아 실시간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원가 절감과 원유 도입처 다변화 등 개선에 나서고 있다. 정유부문을 축소하고 화학사업을 강화해 돌파구를 찾으려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화학부문이라고 해서 해결을 위한 돌파구는 아니다. LG화학(051910)과 롯데케미칼 등 주요 석유화학업체들은 올 들어 주원료인 나프타 가격이 떨어질 때 일시적으로 마진율이 높아지기도 했다. 하지만 유가 급락이 수요부진에서 비롯된 것이라 제품가격 하락을 피할 수 없었다.
에탄가스로 무장한 중동과 셰일가스를 등에 업은 미국이 원가 경쟁력으로 공세를 취하는데다, 석유화학 산업기반을 착실히 다진 중국이 기술력과 물량으로 압박하고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내년부터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와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 화학물질관리법 등 각종 환경규제가 시작되는 것도 악재다. 세금 부담도 커졌다. 최근 정부는 유가 급락에 따라 내년부터 나프타 제조용 원유에 1%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방침을 정했다.
석유화학협회의 한 관계자는 "경기 부진에 각종 환경규제까지 겹쳐 내년에도 많은 어려움이 예상된다"면서 "여기다 정부가 나프타 제조용 원유에 관세까지 부활시켜 이중, 삼중의 어려움을 겪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