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연합 (SNSJTV) 김민제 기자 | 막을 수 있었다. 아니, 막았어야 했다. K갤러리 폰지사기 사태 이후 불과 몇 개월 만에 터진 서정아트센터 1100억 원대 사기 사건을 두고 업계와 피해자들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터져 나온 말이다. 이미 한 차례 대형 사고를 겪고도, 제도와 행정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그 결과는 더 크고, 더 잔혹한 피해로 돌아왔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사기 사건이 아니다. 예견된 위험 신호를 방치한 행정의 실패, 그리고 미술품 유통 시장을 금융 규제 바깥에 방치해 온 구조적 책임이 결합해 만들어진 복합적 참사다.
“판박이 수법”… 왜 학습 효과는 작동하지 않았나
서정아트센터 사건의 전개 방식은 K갤러리 사태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갤러리라는 실체를 앞세워 신뢰를 확보하고, 고수익과 원금 보장을 약속하며, 신규 투자금으로 기존 투자자의 수익을 충당하는 구조다. 그리고 결국 지급 불능 상태에 빠지는 결말까지 동일하다.
문제는 이 모든 과정이 이미 한 차례 공개적으로 드러났음에도, 어떠한 선제적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K갤러리 사태 이후 금융당국과 관계 부처가 유사 영업 행태를 보이는 업체들에 대한 전수 점검에 나섰다면, 서정아트센터 피해 규모는 지금과 같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미술품 거래는 금융이 아니다”라는 인식 속에서 관할 책임은 공중에 떠 있었고, 그 공백은 고스란히 피해자들의 몫이 됐다. 결과적으로 이는 단순 관리 부실을 넘어선 행정적 책임이 따르는 구조적 방치에 가깝다.
‘깜깜이 감정’이 만든 범죄의 놀이터
아트테크 사기가 반복되는 핵심 원인은 명확하다. 미술품에는 객관적 가격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
주식이나 부동산과 달리, 미술품은 공시 가격도, 통합 거래 시스템도 없다. 갤러리가 자체 감정을 통해 가격을 산정하고, 그 가격이 곧 ‘공신력 있는 가치’처럼 포장된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이를 검증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 이 구조 속에서 사기 세력은 저평가 작품이나 무명 작가 작품을 고가로 책정하고, 이를 근거로 투자자를 유인한다. 결국 피해자들이 믿은 것은 작품의 가치가 아니라 갤러리가 만들어낸 숫자였다.
1100억 원이라는 피해액은 예술의 가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조작된 감정 시스템이 낳은 허상이었다.
미술품 거래 가장한 ‘유사 금융’, 법은 멈춰 있어..
서정아트센터가 내세운 ‘미술품 판매 후 재렌탈 및 재매입’ 구조는 겉으로 보면 정상적 거래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질을 들여다보면 이는 미술품을 매개로 한 자금 차입 구조, 즉 유사 수신 행위와 다르지 않다.
갤러리는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확보하고, 매월 일정 수익을 지급하다가 만기에 원금을 반환하는 구조를 반복했다. 미술품은 금융 규제를 피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행 제도는 이를 금융 상품으로 분류하지 못했고, 감독 역시 이루어지지 않았다. 법의 사각지대가 범죄의 통로가 된 셈이다.
제도 보완 없이는 제2·제3의 사태 반복되...
이번 사건이 대표 구속으로 마무리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도 시장에는 ‘원금 보장’, ‘확정 수익’을 내세운 아트테크 상품들이 유통되고 있다.
데일리연합은 다음과 같은 제도 개선을 강력히 제안한다.
첫째, 아트테크 등록제 도입이다. 일정 수익을 약속하며 투자금을 모집하는 행위에 대해 금융당국 신고와 등록을 의무화해야 한다.
둘째, 유사 아트테크 전수 조사다. 재매입 약정과 고정 수익 구조를 가진 업체들에 대한 자금 흐름과 실체 점검이 시급하다.
셋째, 피해자 보호 장치 강화다. 범죄 수익에 대한 기소 전 몰수 보전 확대와 신속한 피해 회복 절차 마련이 필요하다.
신뢰를 깨뜨린 대가, 이제는 시장이 치루게 되..
연이은 사기 사건은 건전하게 활동해온 작가와 갤러리, 그리고 국내 미술 시장 전체에 치명적인 불신을 남겼다. 신뢰는 한 번 무너지면 회복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K-아트의 글로벌 경쟁력을 말하기 전에, 국내 시장의 최소한의 안전장치부터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다. 미술품 유통 시장이 더 이상 규제의 예외 지대로 남아서는 안 된다.
본지는 K갤러리 사태 당시부터 아트테크 시장의 그림자 금융화와 구조적 위험을 지속적으로 경고해 왔다. 서정아트센터 사태는 그 경고를 외면한 결과다. 제도 개선 없는 방관은 또 다른 피해를 낳을 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책임 회피가 아닌, 결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