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2026.02.15 (일)

  • 맑음동두천 1.1℃
  • 구름많음강릉 5.9℃
  • 맑음서울 2.1℃
  • 맑음인천 0.8℃
  • 맑음수원 2.1℃
  • 구름많음청주 3.0℃
  • 구름많음대전 2.9℃
  • 맑음대구 8.3℃
  • 맑음전주 1.8℃
  • 구름많음울산 9.2℃
  • 맑음광주 3.8℃
  • 구름많음부산 12.6℃
  • 구름많음여수 9.7℃
  • 맑음제주 8.4℃
  • 구름많음천안 2.0℃
  • 구름많음경주시 10.3℃
  • 구름많음거제 9.9℃
기상청 제공

이슈/분석

한미약품 ‘사건 축소’ 논란, ESG 거버넌스가 묻는 가장 불편한 질문

성추행 신고 이후 ‘자진퇴사’ 처리와 경쟁사 이직 논란…사과 없는 리스크 관리가 남긴 공백
피해자 보호는 선언이 아니라 절차…재발 방지의 핵심은 이사회 책임과 강제 규정의 촘촘함


데일리연합 (SNSJTV) 김민제 기자 | 한미약품을 둘러싼 내부 성비위 대응 논란은 기업이 위기 국면에서 무엇을 먼저 선택하는지, 그 선택이 ESG 경영의 ‘사회(S)·지배구조(G)’를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보여주는 사례로 읽힌다.

최근 보도에서는 사내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된 고위 임원이 징계 절차 없이 ‘자진 퇴사’ 형식으로 회사를 떠났고, 이후 경쟁사로의 이직까지 이어졌다는 취지의 의혹이 제기됐다.

논란의 본질은 단순한 사건 처리의 미흡을 넘어, 조직이 피해자 보호보다 “회사 리스크 최소화”에 우선순위를 둔 것 아니냐는 의심,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지배구조가 사실상 기능했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ESG 관점에서 더 치명적인 지점은 ‘사과의 부재’가 아니라 ‘책임의 구조’가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대외 커뮤니케이션은 위기관리의 일부일 뿐이고, ESG 거버넌스는 위기가 발생했을 때 자동으로 작동하는 제도와 통제 장치가 핵심이다. 가해 의혹 당사자가 조용히 빠져나가는 방식이 반복된다면, 조직 구성원들은 신고와 문제 제기의 실익을 상실하고 침묵을 학습한다.

그 순간 기업은 인권·윤리의 신뢰를 잃는 동시에, 법적 리스크와 인재 이탈, 장기적으로는 투자·거래 파트너의 평가 하락까지 감수해야 한다. 경영권 분쟁 등으로 거버넌스 우려가 반복 제기돼온 기업 환경에서는 이런 사건이 ‘일회성’이 아니라 ‘구조적 취약성’으로 연결돼 해석될 가능성이 더 크다. 

 

피해자 보호가 왜 ‘선언’이 아니라 ‘절차’인지, 법은 이미 최소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직장 내 괴롭힘의 금지와 사용자 조치 의무는 근로기준법 제76조의2, 제76조의3에 규정돼 있고, 신고 접수 또는 인지 시 지체 없는 객관적 조사, 조사 기간 중 피해자 보호(근무장소 변경, 유급휴가 등),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조치 금지 등이 명시돼 있다.

직장 내 성희롱과 관련해서도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은 직장 내 성희롱 금지(제12조)와 발생 시 조치(제14조), 조사 과정에서의 2차 피해 방지, 조사 기간 중 보호 조치, 신고자·피해자에 대한 불이익 처우 금지 등을 요구한다. 즉, 기업이 “조치할 수 없는 상황”을 호소하기 전에, 애초에 ‘조치가 남는 방식’으로 사건을 처리했는지부터 점검해야 한다는 의미다.

 

한미약품 사례를 긴급 진단의 관점에서 보면, 쟁점은 세 갈래로 정리된다. 첫째, 사건 접수부터 조사·징계·재발방지까지의 전 과정이 독립성과 객관성을 확보했는가. 둘째, 피해자 보호(분리 조치, 유급휴가, 심리·법률 지원, 2차 피해 차단)가 실질적으로 작동했는가. 셋째, 그 결과를 이사회 또는 감사기구가 정식으로 보고받고, 후속 개선을 의결했는가다.

이 중 하나라도 빠지면 ESG ‘거버넌스’는 문서 속 단어로 전락한다. 특히 고위 임원 관련 사안에서는 인사권과 이해관계가 얽히기 쉬워, 인사 라인 내부 처리만으로는 공정성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결국 이사회 산하의 독립 기구가 작동했는지가 핵심 지표가 된다.

 

재발 방지를 위해 기업이 갖춰야 할 규정과 절차는 구호가 아니라 체크리스트로 설계돼야 한다. 신고 채널은 인사부서 단일 창구가 아니라 익명성과 접근성이 보장된 복수 채널(내부·외부 핫라인, 옴부즈, 감사실 직보)을 갖추고, 사건 접수 즉시 피해자 보호를 우선하는 ‘초기 72시간 프로토콜’을 내규로 고정해야 한다. 조사는 이해상충에서 자유로운 외부 조사관 또는 독립 위원회가 주도하고, 증거 보존과 진술 신뢰성 확보를 위해 기록 기준과 문서화 체계를 강제해야 한다.

징계는 ‘자진퇴사로 종결’이 아니라 사규에 따른 징계위원회 절차를 원칙으로 하고, 퇴사 여부와 무관하게 사실관계 확정 및 조직 내 재발 방지 조치를 남겨야 한다. 무엇보다 신고자·피해자·협조자에 대한 불이익 처우 금지 조항을 사규에 명문화하고, 위반 시 책임자 제재와 인사상 불이익을 자동으로 연동하는 장치를 둬야 한다. 이는 법이 요구하는 최소 기준과도 맞닿아 있다. 

 

여기에 ‘이직 리스크’라는 사각지대도 포함해야 한다. 논란의 핵심 중 하나가 “문제가 정리되지 않은 채 이동이 가능했느냐”라면, 기업은 법률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사실관계 확정, 징계 기록 관리, 내부 통제 기록의 보존, 업계 차원의 윤리 기준 정립을 논의해야 한다. 채용 기업의 검증 책임도 함께 제기되지만, 출발점은 원 소속 기업이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을 남기지 않도록, 절차를 투명하게 남기는 데 있다. 

 

결국 ESG 경영의 진짜 시험대는 화려한 보고서가 아니라, 불편한 사건이 터졌을 때 ‘누가 어떤 기준으로 어떤 결정을 했는지’가 남는가에 있다. 피해자 보호와 2차 피해 차단, 독립 조사, 징계의 실효성, 이사회의 감독 책임이 하나의 체계로 엮여야만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게”라는 말이 공허하지 않다.

기업이 사건을 축소해 위기를 넘기는 데 성공했다고 판단하는 순간, 그 비용은 더 큰 신뢰 붕괴와 더 큰 책임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점을 이번 논란은 경고하고 있다.


배너
배너



배너
배너

SNS TV

더보기

가장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