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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용 목사, 캐리토마스의 영성에는 9가지 색깔이 있다를 읽고서

5장. 행동주의 영성/ 참여와 대결로 하나님을 사랑한다

데일리연합 (아이타임즈M 월간한국뉴스신문) 이성용 기자 | 이성용 목사는 감히 말한다. 세상돌아가는 트랜드를 읽어라. 온누리에 복음을 전할 마인드를 가져라. 다양한 영성을 이해하며 서로 다른 성향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 관계하고, 융합하여 하나님의 나라 건설을 이루자며, 세계적인 영성 필독서를 소개했다. 

 

성경의 행동주의자들이 주는 교훈 .행동주의자들은 영광고 오명을 안고 성경의 신앙 역사에 뛰어든다. 그들처럼 한없이 옳다가 틀릴 때는 한없이 틀린 신자들 무리는 별로 없을 것이다. 모세와 엘리야와 하박국과 베드로는 용기와 리더십으로 내게 도전을 준 사람들이자 연약한 모습으로 내게 위로가 된 사람들이기도 하다.

 

A. 모세

모세는 시작부터 행동주의자였다. 이스라엘 동포를 옹호하다 이집트 사람을 죽였던 것이다. 그 후 얼마 안 되어 행동주의자 모세는 과격한 목자들한테 당하는 아가씨들을 구해준다. 등장할 때마다 젊은 모세는 분규에 얽혀 있다. 그래서 인생후반 하나님이 모세를 다시 쓰시려 했을 때 그가 두려움과 내키지 않는 마음을 극복해야 했던 것은 다소 뜻밖이다. 초창기 경험으로 자신감을 잃어 다시는 나서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기라도 한 듯 모세는 ‘총을 겁내는’ 사람처럼 됐다. 그러나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에게 중단이란 없었다. 모든 행동주의자는 충성된 순종이 언제나 즉각적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모세와 바로와의 고전적 대결에서 모세는 엄청난 인내 끝에 결국 이스라엘의 해방을 보았다. 그러나 멀지 않아 그는 ‘일할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콤플렉스에 빠져 선한 일로 탈진을 자초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모세는 배우려는 마음도 있었다. 장인의 충고를 들어 그는 행동주의자들 사이에 너무도 흔한 정신적 탈진을 면했다. 격분과 피로는 행동주의자들에게 특히 심함 유혹이다.

 

B. 엘리야와 엘리사

엘리야와 이스라엘 왕들과의 대결은 모세와 바로의 대결과 맞먹는다. 엘리야는 아합과 바알 선지자들과의 대결에서 놀라운 용기를 보여 주었다. 그러나 그의 태도에도 교만이 드러난다. 엘리야는 참 선지자가 자기밖에 남지 않았고 진정한 열정을 보이는 사람도 자기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직도 신앙에 충실한 사람이 7천이 있다는 엘리야를 안심시켰다. 엘리야의 탈진과 고립감은 행동주의자의 전형적 증상이다(부정적인 면에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의 양식이 되는 경향이 있으면서도 동시에 그들을 탈진시킬 수 있는 기질이 하나 있다면 바로 행동주의 영성이다.

엘리사도 행동주의자였으나 후에 이스라엘 왕이 될 하사엘과의 대결에서 놀라운 성숙을 보여준다. 엘리사는 하사엘이 저지를 악을 내다보고 울었으나 거기에 사로잡히지는 않았다. 대다수 그리스도인들이 배워야 할 사실이 있다. 하나님이 우리를 행동주의자의 자리로 부르실 때마다 우리는 결과를 그분께 맡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성령이 아닌 성공에 사로잡혀 거기 지배당하게 된다.

 

C. 하박국

하박국은 행동주의자들에게 주는 좋은 경고다. 나도 그 경고를 여러 번 마음에 새겼다. 하나님께 간구하기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을 책망하는 행동주의자들의 기도를 나는 너무 많이 들었다. 마치 하나님보다 행동주의자가 정의를 더 걱정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박국이 보지 못해도 정의는 오고 있다. 행동주의자들은 ‘믿음으로 살라’는 하박국서의 메시지를 배울 필요가 있다. 삶의 상황과 환경은 하나님의 주권과 선하심을 의심하도록 우리를 유혹할 수 있지만 우리의 시야는 유한하다. 하나님은 불의를 못 보시는 것도 아니고 무관심하신 것도 아니다. 행동주의자들은 중보기도가 비난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대결과 행동주의 영성

행동주의자와의 식사하는 것은 전혀 즐겁지 않았다. 뭐든 잘못된 것이 그의 눈에 띄거나 귀에 들어가면 그는 짚어내고 지적하여 반드시 재고하게 만들고야 만다. 버지니아주 북부에서 특정부류의 포르노를 상당 수준 몰아낸 것도 행동주의자들 덕택이었다. 그들은 교회들을 활성화시켜 죄수들을 찾아가게 하고 낙태 반대에 보다 적극적 목소리를 내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 행동주의자들은 사실 싸움을 통해 영의 양식을 얻는다. 나쁜 일은 아니다. 예수께서도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고 하셨다. 좋든 싫든 예수님의 많은 사역은 바리새인들과의 격렬한 대결과 연결되어 있다. 물론 우리가 영의 양식을 얻고 있는지 여부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방식에 달려 있다.

 

오래 전 프랜시스 쉐퍼는 「그리스도인의 표지」(The Mark of the Christian)에 이렇게 썼다. “주님의 전투를 그나마 바른 방식에 가깝게 싸울 수 있는 사람은 한 부류뿐이다. 바로 성격상 비호전적인 사람이다. 호전적인 사람은 호전적 성격 때문에 싸우는 경향이 있다. 적어도 그렇게 보인다. 진정한 그리스도인들로서 서로 의견을 달리해야 할 경우 우리는 피 냄새를 좋아하거나 투기장 냄새를 좋아하거나 투우 냄새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꼭 필요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세상에 보여 줘야 할 모습이다.”

 

행동주의자들은 자신의 사역을 변호하고자 예수께서 성전을 정화하신 사건을 자주 인용한다. 예수님은 치유만 하신 것이 아니라 대결도 하셨다고 행동주의자들은 말한다. 그분은 거룩하셨다. 거룩함이란 친절함과는 아주 다른 것이다. 프랜시스 쉐퍼는 말한다. “사람들은 기독교를 그저 부드러운 것, 선악을 똑같이 사랑하는 일종의 감상적 사랑 정도로 생각할 때가 너무 많다. 그것은 성경의 입장이 아니다. 사랑과 동시에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드러나야 하다.”

행동과 대결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양식이 되지만 동시에 우리를 고갈시킬 수도 있다. 엘리야가 전형적 사례이다. 자신에게 고립과 비난의 성향이 나타나거든 행동주의자들은 스스로 균형을 잃지 않았는지 살펴보는 것이 좋다. 행동주의자들이 영의 양식을 보완하기 위해 다른 길을 찾아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제자들이 사탄과의 세력과 대결하고 온 후 예수님은 기어이 그들을 쉬게 하셨다. 쉼이 없다면 행동주의자들은 사랑과 긍휼 대신 증오와 분노라는 자멸적 동기에 빠져들 수 있다. 행동주의자들은 적절한 균형을 찾을 필요가 있다. 바로 그리스도께서 본을 보이신 균형이다. 그분은 집중적 사역 사이사이에 꾸준히 영적 회복의 시간을 두셨다.

참된 그리스도인 행동주의자는 ‘오직 하나님과 그분께 드리는 사랑을 위해 산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사랑을 지향하는 행동은 묵상주의 영성의 기도 못지않게 하나님께 열납된다. 그러나 그것이 대결을 위한 대결을 지향할 때 우리는 하나 되게 하시는 성령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죄악된 분열의 영을 부추기는 것이다.

 

행동주의 영성의 형태

행동주의 영성은 우리를 사회 개혁을 위한 노력 외에도 과오와 악에 대한 적극적 대결로 부른다. 고 프랜시스 쉐퍼는 “진리란 대결과 같다”고 말했다. 그의 아들 프랭크 쉐퍼는 따라서 우리가 기꺼이 진리의 적에 도전하고 대응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작가, 목사, 정치가, 학자, 예술가, 주부는 모두 행동주의자가 될 수 있다. 자기 분야에 충실하면서 진리를 위해 일어설 수 있다. 프랭크 쉐퍼는 그리스도인들이 새로운 아이디어에 마음을 여는 것도 좋지만 실제로 교육, 이데올로기, 선거 과정, 국책 사업, 시위, 대중매체, 교회의 독선, 가정 강화 - 우리 집부터 시작해 - 등의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일을 벌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할 때 그리스도인의 행동은 항의의 차원을 넘어 긍정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 단지 국회에 서한을 보내는 대신 그리스도인들이 국회의원으로 출마할 수 있다. 연예계의 부도덕성에 항의하는 대신 그리스도인들이 직접 연예 산업에 뛰어들 수 있다.

행동주의자들은 조심하는 것으로 절대 양이 안 찬다. 그들은 기적의 하나님이 기적의 방법으로 역사하는 것을 보는 쾌감을 체험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행동주의 영성은 흔히 열정주의 영성과 다소간 닮았다.

 

기도와 행동주의 영성

A. 현장을 걷는 기도/많은 행동주의자들이 ‘현장을 걷는 기도’로 특별한 유익을 얻을 수 있다. 전도자는 도시의 한 블록을 빙 돌면서 조용히 중보기도를 올릴 수 있다. 중보기도자는 정부 청사를 돌면서 정의를 위해 기도할 수 있다. 지도를 펼쳐 놓고 아직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의 집단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도 있다.

 

B. 행진/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예수님을 축하하며 ‘예수 행진’이 예기치 않게 되살아나고 있다. 바로크 시대(대략 1550-1750)로 거슬러 올라가도 선조들의 그런 행진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의 공동체 행진은 영적 은혜를 구하는 경향이 있었고 대개 아주 엄숙한 행사였던 반면 오늘날의 행진은 찬양과 축하에 더 주력한다는 점에서 약간 다르다.

 

C. 중보기도/칼 바르트는 그리스도인들이 한 손에는 성경, 한 손에는 신문을 들고 기도할 것을 촉구했다. 기도는 행동주의자들의 삶에 중요한 일부가 되어야 한다. 기도하지 않는 행동주의자는 머잖아 냉담해지며, 주변의 대다수 그리스도인들을 멀리할 수 있다. 당신이 행동주의 영성이라면 자신과 교회에게 호의를 베풀어 적극적 기도 생활을 개발하라.

 

행동주의 영성의 유혹

A. 판단적 태도 B. 야망과 섹스 C. 엘리트 의식과 적의

D. 활동과 통계 수치에 집착함 E. 개인적 성화에 소홀함

 

▶사진 설명 2 청주온누리교회 이성용 목사. 케리토마스의 영성 이해는 다양한 리더쉽으로 이끌어가는 사회속에서 이 시대를 열어가는 최고의 길잡이가 될 것이다 – ㈜한국미디어그룹 회장 말씀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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