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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정왕동 요식업계의 3형제를 찾아


 김계순, 김계옥, 김성일(오른쪽부처)삼형제 

연변냉면과 호프집은 마주하고 있다

    

이샹원(亿香園)냉면

안신시 정왕동 요식업계에서 김계옥, 김계순, 김성일 삼형제라면 거의 모르는 사람이 없이 잘 알려져 있다. 이들 삼형제가 경영하는 연변냉면’, ‘연변호프’, ‘이향냉면이 오래동안 정왕동 이주민단지내에 자리잡고 있어 이 3개 음식점의 단골들이 그 주인을 잘 알고 있는 원인도 있겠지만 이들 삼형제가 남달리 화목하고 또 서로 잘 협조하여 음식업의 호황을 이루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맏이인 김계옥 사장이 경영하는 연변냉면8년째이며 동생 김계순의 연변호프와 김성일의 이향냉면5년 세월 잡는다. 주위 사람들이 말에 의하면 10년전만 해도 이 3개 식당이 자리잡고 있는 이 골목은 번화한 거리와 좀 떨어져 있기에 행인들의 발길이 닿지않는 적막한 곳이라 했다. 김계옥씨의 연변냉면이 들어서면서 중국인들의 발길이 이어지기 시작하였고 그후 두 동생이 맏이를 따라 연이어 이 골목에 가게를 오픈하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더욱 빈번해지게 되었다. 현재는 제법 번화가 다운 모습을 드러내 길가는 행인들을 유혹하고 있다.

이들 삼형제가 이떻게 되어 이곳에 모이게 되었을가? 일전 기자는 정왕동의 연변호프집에서 이들 삼형제를 만나 이들의 간단치않는 경력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야기는 맏이인 김계옥씨로부터 시작된다.

 

목표가 있는 삶은 충실하다

고향이 왕청인 김계옥씨는 199510월 새로운 꿈을 안고 한국에 오게 된다. 여느 사람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의 삶은 결코 평탄하지가 않았다. 처음 음식점에 들어가 하루 12시간의 일을 하면서 비로서 고달픔이란 어떤 것인가를 실감하게 하게 되었고 젊은 나이에 장차 어떻게 할 것인가를 심사숙고하지않을 수 없었다.

하루하루가 정말로 힘들었지요. 허나 그때 상황엔 열심히 일해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어느정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한후에는 나도 하나의 목표를 세워 5년 혹은 10년후에는 뭔가 나로서의 사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습니다. 당시 식당에서 일하다보니 음식업에 대해 보고 느끼는게 많았지요. 바로 이거다. 이후 나도 음식업을 해보는게 어떨가 고 마음속 깊이 간직하게 되었습니다

김계옥씨는 이와같이 당시의 생각을 술회했다. 작은 목표이지만 이후 자신도 음식업의 경영자로 될 것을 생각하니 그달픔도 잊고 부쩍 힘이 나더라는 것이였다. 그때부터 음식점의 서빙을 하면서 뭘 배워야겠다는 생각으로 자주 주방에 드나들면서 여겨보고 물어보면서 김치 담그는 방법부터 무침류 및 기타 요리 제작법을 익히기 시작하였다. 한동안은 주방의 참모노릇도 하게 되어 주방의 일이 막힘이 없을 정도로 익숙했다.

그때로부터 10년이란 세월이 흐르도록 줄곧 음식점에서 일하면서 배우고 또 아껴 쓰고 아껴 먹으면서 자금을 축적했다. 마지막 거쳤던 음식점은 경기도 안양시의 한 효천칡냉면집, 이 집에서도 2년간을 있었다. 2년후 김계옥은 대담하게 이 칡냉면집을 인수하는데 성공해 오래동안 꿈꾸어오던 음식업의 경영자로 되었으며 자금을 좀더 축적한후에는 정왕동에 옮겨 양꼬치집을 개업했다. 조선족으로서 그래도 중국음식에 더 자신심이 있었던 그였다.

2007년 김계옥씨는 보다 큰 포부를 품고 서울의 영등포구 대림동에 진출해 보다큰 규모의 양꼬치집을 개업했다. 이 지역은 중국인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라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비싼 보증금에 인테리어도 새롭게 하고 큼직한 간판을 번듯이 내걸었다. 그런데 생각밖으로 경영이 잘 안되어 한동안 곤혹에 빠지곤 했다. 무슨 영문일가? 분석해보니 음식점의 위치가 별로 좋지않는데다가 집세가 너무 비싸 지출이 너무 많은게 문제였다. 하는수 없이 3000여만원이란 적자를 내고 2년도 못가 양꼬치집 문을 닫을 수 밖에 없었다. 처음으로 되는 실패였다. 대림동을 떠난후 한동안 차분하게 지내면서 경험교훈을 섭취하기로 했다.

올리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듯이 장사하는 사람이 아무리 잘 나간다 해도 그 과정에 항상 위기가 잠복해있기 마련이지요. 잠시나마 실망은 갔지만 그래도 포기하고는 싶지않았어요.”

김계옥 사장은 한번 실패를 보았다해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며 대림동에서 다시 현재의 정왕동에 와 동산재기의 기회를 노리게 되었다고 말했다.

 

정왕동에서 동산재기

경기도 시흥시 한 개 동으로 되어 있는 정왕동은 144671명 인구에 시 전체 면적의 4분의 1 이상을 차지한다. 북쪽으로 서해안고속도로를 끼고 있고 영동고속도로, 지방도 및 지하철 4호선이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생금집(향토유적 7)과 오이도의 패총 등 문화재가 있어 명성이 있다. 특히 이 곳은 시가지 면적의 85%가 공단지역이기에 외국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으며 이주민단지로도 유명하다.

김계옥 사장이 이곳을 찾은 원인은 주로 금후 이곳에 이주민들이 더 많이 찾아들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그중에서도 중국인들이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니 중국음식점을 하면 반드시 잘 될 것이라는 신심이 있었다.

대림에서의 실패로 얼마간 상처를 받기는 했지만 원기를 회복하고 2009년에 또다시 연변냉면이라는 간판을 걸고 도전에 나섰다. 그간 음식업에 종사하면서 그에게는 하나의 노하우가 생겼다. 즉 음식점에서 식사하고 나가는 손님들의 표정을 살펴 그 표정에서 대개 음식의 만족도를 알아내는 방식이다. 김계옥 사장은 항상 손님이 결산하고 나갈 때 그닥지 않는 표정이면 꼭 그 손님이 남겨두고간 요리를 다시 한번 맛보곤 했다. 아닌게 아니라 요리에 문제가 있는게 틀림없었다. 그는 요리접시를 주방에 다시 들고 들어가 주방장을 비롯해 요리를 직접 제작한 요리사한테 맛을 보이고는 문제점을 찾고 제때에 시정하도록 했다.

한편 어느 손님이든 음식점에 들어와 어느 정도 머무는가를 세심이 살핀다. 음식의 맛이 좋으면 끝까지 먹어야하니 오래 앉아있기 마련이지만 음식맛이 틀리면 어느 손님이든 오래 있지않는다. 일찍 나가는 소님들은 대체적으로 기분이 별로 안좋다. 역시 음식맛과 관계되는 것이다. 누구든 음식점에 들어서기만 하면 시간을 기억해두었다가 예상된 시간이 안돼 일어설 경우 무조건 차려준 음식에 문제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주방장을 통해 맛을 조절하도록 하였다.

관건은 주방이다. 다년간 음식업에 종사해온 김계옥 사장은 음식에 대한 특유의 민감성을 갖춰 음식의 색상, 냄새에 의해서도 문제의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때문에 한시도 주방을 떠날 수 없었다. 요리에 약간한 문제라도 있다고 판단할 경우 아예 상에 올리지도 않으며 새로 제작하도록 했다.

빈틈없고도 엄한 관리 및 나름의 경영수단, 합리한 서비스의 힘을 입어 김계옥의 연변냉면은 점점 호황을 맞이했다. 평일에는 물론 주말만 되면 찾아드는 손님이 빌새 없이 번영했다. 6년째 되는해에 김계옥은 아예 수억을 들여 음식점을 자기 건물로 만들었다. 한국에서의 곡절많은 인생, 힘들고 고달픈 세례를 받은 김계옥은 이국타향에서 마침내 내노라하는 비즈니스맨으로 성장해 주위사람들의 긍정을 받았다.

삼형제 정왕동에서 함께하다

연변냉면으로 새로운 도전에 성공하면서 김계옥은 여러곳에 흩어져 살고 있는 동생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당시 남동생 김성일은 사우나에서 때밀이 일을 하고 있었으며 여동생 김계순도 어느 음식점에서 서빙을 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고생하는 동생들이 가엽기도 하고 측은하여 어떻게 하나 자기곁으로 데려올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우선 다른 방법없이 두 동생을 연변냉면에 와 있게 하면서 다른 방도를 찾기로 하였다. 마침 음식점 맞은편에 작은 호프집이 하나 있었는데 주인이 다른 사람한테 양도한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인수하여 여동생한테 맡기기로 하였다. 가게 보증금과 그리고 동생이 있는 세집 보증금까지도 모두 언니가 해결해주었다.

언니한테 감사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여 어떻게 하나 열심히 돈을 벌어 빨리 갚아줘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처음으로 하는 장사지만 행운스럽게도 돈은 잘 벌어져 2년만에 언니 돈을 모두 갚아드렸지요.” 형제간이라해도 외지에 와 서로 힘들게 보내는 상황에서 언니 돈을 수천만원 쓰고나니 발편잠 잘수 없었다고 동생 김계순씨가 웃음을 머금으며 말했다.

남동생 김성일씨는 누님의 뜻대로 연변냉면에서 일하면서 장차 다른 음식점을 꾸리려는 목적으로 열심히 배웠다. 2013년에 역시 두 누님의 가게와 멀지않는 곳에 이향원(亿香園)냉면집을 개업했다.

모두 누님의 덕분이지요. 누님으로부터 음식을 배운 것도 있겠지만 더욱 중요하게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하는가를 배웠습니다. 누님의 놀라운 의력에 힘입어 저도 오늘 이향원의 주인으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김성일씨의 감동어린 말이다. 그의 음식점도 40여 평방으로 그 규모나 시설이 누님못지않게 잘 되어 있다.

속담에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이 있다. 윗 어른이 잘하면 아래 사람도 따라 잘한다는 말로 윗 사람은 아랫 사람에게 본보기를 보여줘야함을 가르치고 있다. 김계옥, 김계순, 김성일 삼형제의 경력이야말로 이를 잘 보여주는 귀감이 아닌가싶다.

삼형제는 각자의 가게를 갖고 있지만 기실 통합된 하나의 정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것은 이 삼형제가 각자의 가계를 경영하지만 서로 힘이 들 때, 서로 도움이 필요할 때 내 것 니 것 없이 무조건 발벗고 나서기 때문이다. 하여 주위에서는 이들 삼형제를 두고 화목한 형제’, ‘열심히 사는 형제’, ‘부지런한 형제라고 찬사를 아끼지않는다 

/전춘봉 기자 qcf2000@naver.com

 




위기사에 대한 법적 문제는 길림신문 취재팀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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