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인 CBS가 명성교회건과 관련하여 수백번 양산해도 어떤 효력이 발생하지 않자 더이상 들을 사람이 없게 되었다. CBS는 반명성측에서 뉴스를 수백번씩 양산해 냈지만 결국 효력은 없었고, 명성교회건은 104회 총회에서 수습차원에서 끝을 마무리 했다. 아무리 CBS가 외쳐도 이제 들을 사람이 없게 되었다. CBS는 늑대 소년이 되었다. "늑대 다"라고 외쳐도 사람들은 더이상 믿지 않는다. © 편집인 CBS가 명성교회건과 관련하여 뉴스 양은 1마일처럼 긴데 뉴스질은 1인치 처럼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CBS가 원하는 대로 명성교회건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는 CBS가 합리적 보도 보다는 정서적 보도를 하고 공평적 보도보다는 편파보도를 하기 때문이다. 지난 2020. 6. 22. "올가을 명성교회 세습문제 또 다른다"에서 105회 총회가 명성교회세습문제를 마치 다시 다룰 것 같은 어조로 뉴스화 한 것은 사실관계를 벗어나 CBS의 기대심리를 갖고 말한 정서보도였다. 불행하게도 CBS가 자신들의 의도를 앞세운 나머지 사실관계를 벗어나 정서관계를 갖고 뉴스화하는 것이다. CBS의 일반화의 오류 현재 105회 총
GTU 도서관(연합신학교 도서관, 버클리 소재) 대한예수교 장로회 새문안교회 이상학 목사의 박사논문(GTU, Ph.D)이 예장통합교단의 신학에 상당히 벗어났음이 드러났다. 기존의 그리스도의 구속을 한의 치유로 보는 것은 전통신학을 뒤엎는 것으로 이단신학이다. 새문안교회 당회는 이상학의 박사논문의 신학성을 교단의 신학교육위원회나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에 검증을 요청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의 구속대신 한의 치유를 구원으로 보는 시각은 이단이기 때문이다. 박사학위 논문제목은 "한의 경험으로부터 구원과 죄악의 이해에 대한 재평가"이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은 기존의 구원에 대한 개념을 그리스도의 구속을 한의 치유로 대신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교리적으로 이단인 것이다. ▲ ©편집인 논문요약에 대한 내용은 기존의 구원론이 예수그리스도의 피를 통한 속죄였다면 이상학목사의 논문은 그리스도의 피를 통한 속죄개념 보다는 한의 치유를 통한 구원의 개념을 다시 제시한다. 그는 "신학이란 오늘의 언어로 하나님의 말씀을 표현하려고 시도하는 것"이라고 말한 해방신학자 구스타보의 글을 인용하면서까지 치유를 통한 새로운 신학의 구원론을 제시하고 있다.
존경하는 성직자 문선명(Reverend Moon) 인용 부산장신대 탁지일 교수는 논문 내용에서 존경하는 문선명(Reverand Moon)을 비판없이 활자체를 부각해서 그대로 인용하여 그의 논문이 문선명의 홍보논문인지, 원리강론홍보논문인지, 양자의 홍보논문인지를 의심하게 하고 있다. 성직자에게는 미국에서 의례적으로 Reverand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타락한 교주에 대해서 '존경하는 문선명 교주님' 이라는 단어를 여과없이 수용하는 것은 자신의 주장의 또 다른 표현으로 긍정한다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영어에서 Reverand는 숭배하거나 존경할 가치가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보통 성직자 앞에 붙이는 용어로 '존경하는 성직자'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 © 기독공보 'Reverend'는 숭배하다, 존경하다를 의미하는 'revere'에서 파생한 명사형이다. ▲ © 기독공보 그는 해외박사학위신고논문 62p에서
친동성애 언론이자 반기독교언론인 뉴스앤조이처럼 예장뉴스도 동성애는 성경적으로 죄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여 사실상 반성경적인 주장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성애는 죄라고 하는 식으로 가는 것은 이론적으로도 부족하고 설득력이 없다" 동성애에 대해 호의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뉴스앤조이는 적극 친동성애이지만 예장뉴스는 동성애를 묵인방조하면서 사실상 호의적 동성애인 것으로 드러났다. © 편집인 일부에서는 친동성애언론이라는 입장도 있다. 그러나 친동성애의 입장을 표명한 적이 없기 때문에 묵인방조하거나 하여 정체성은 모호한 가운데 사실상 반성경적 이면서 호의적인 동성애언론으로 드러났다. 친동성애 허호익교수와 친동성애 학생들의 입장을 통하여 예장뉴스의 동성애에 대한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다. A. 허호익 교수에 대한 입장 예장뉴스는 동성애로 면직출교된 허호익교수를 적극 지지하고 심지어 구명운동까지 벌인다고 하여 허사모를 조직까지 하였을 정도이다. © 편집인 예장뉴스는 동성애건으로 면직출교된 허호익교수를 여전히 칼럼리스트로 하고 있어 허호익교수의 사상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
A. 마르쿠제의 1차원적인 인간 프랑크후르트 학파 마르쿠제는 그의 저서 '1차원적인 인간'에서 인간이 물질주의와 자본주의에 속박되어 있고, 대중매체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노예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마르쿠제는 현존의 산업사회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모두를 비판하면서 현실적인 결함을 폭로했다. 마르쿠제는 마르크스를 재해석하고 자본주의와 산업사회를 비판하고 있다. 마르쿠제는 현대인들이 발달된 산업문명의 노예가 되었고, 개인들은 철두철미 물질적으로 발달된 사회에 의해 지배당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현대사회의 능력은 과거 어느 때보다 무한히 거대하며, 그것은 개인에 대한 사회의 지배가 과거 어느 때보다 무한히 거대하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발달된 과학기술이 인간을 억압하고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학이 가져다 준 편리성과 기술의 혁명에 의존하고 있지만 현대인들은 어느듯 과학과 기술의 노예가 되어 창조적 자유로운적 존재로서 살아가기 어렵게 되었다. 마르쿠제는 이러한 현대인들을 1차원적 인간이라고 보고 있다. 1차원적인 인간은 물질적, 과학적, 노예 상태에 머물러 자신이 억압되어있는 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자동차와 고급
▲ © 기독공보 예장통합교단이 점점 카톨릭화하여 중세로 가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특히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예장통합교단의 정체성이 위기를 맞은 바 있다. A. 제도적 중세 당시 김동엽목사 총회장시절, 김동엽목사는 천주교와 직제일치에 서명을 하였다가 교단목회자들로부터 행정심판을 당했고, 결국 김동엽총회장이 한발 후퇴를 하고 총회장으로서 교리적 고백을 하는 수모까지 겪는 차원에서 끝냈다. ▲ ⓒ 법과 교회 김동엽목사가 2014년 총회장 시절 천주교와 직제일치의 서명이 화근이 되어 이로 인해 많은 봉변을 당하기도 하였다. 총회장이 중세로 가고 있었다. B. 신학적 중세 에장통합교단산하 영성이나 교회사 교수들이 카톨릭신학에서 학위를 하거나 개신대학교에서도 천주교영성과 신학을 전공하고 와서 천주교영성과 신학을 가르치는 것으로 드러나 통합교단이 점점 중세로 가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미 교수들의
코로나의 3단계는 5인 이상 모이면 안된다. 극장, 교회, 직장, 음식점, 등 5명 이상 모이면 3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한다. 코로나 3단계는 제2 바벨탑사건이다. © 편집인 인간이 모이면 범죄를 하니, 하나님이 아얘 모이지 못하도록 뿔뿔이 흩어놓는 것이다. 빚이 많은 교회는 견디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빚과 소근교회같은 교회는 100억 이상 빚이 많아 버티기가 어려울 것이다. 세 달 은행이자를 내지 못하면 압류가 들어올 것이다. 신도들이 속는 소근 교회는 이번 코로나 재앙에 사라져야 한다. 코로나 바벨탑 사태는 언어의 다름이 아니라 경제의 다름이 나타나 인간들이 점점 힘들게 된다. 코로나는 바벨탑 이상 제 2의 재앙이 될 수 있다. 일단 흩어지면 코로나는 안걸릴 수도 있지만 경제적인 문제때문에 인간은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 이다. 언어의 재앙이 아니라 경제적 재앙이다 언어의 재앙은 아무 것도 아니다. 경제적 재앙이 찾아온다. 경제적 재앙에 준비되지 않은 교회는 속수무책으로 넘어질 것이다. 영국은 이미 코로나 변종으로 사재기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변종 코로나는 아이들까지 걸릴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 © 기독공보 교단산하 교수들이 교단의 신학과 상관없는 교수들의 사적인 신학을 함으로 학교는 죽은 신학의 사회가 되었다. 교수들의 신학이 장로교 교단 신학과 상관없이 카톨릭, 초교파, 통일교옹호, 자유주의, 인본주의, 비성서주의 등으로 학문의 자유를 남용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교수들의 학문의 자유는 교단신학안에서의 자유이다. 직영신학대학에 속한 교수들이기 때문이다. 죽은 신학의 사회 직영신학교는 교단신학안에서 학문의 자유가 한정되어야 한다. 학문의 자유를 추구하고자 하는 교수들은 직영신학대학밖으로 떠나야 한다. 직영신학대학교의 목적은 교단이 원하는 목회자를 양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교수들의 신학을 보면 교단이 원하는 신학이 아니라 교수가 원하는 신학으로 전락했다. 교수가 원하는 신학을 하기위해서는 교단밖에서 교편을 잡아야 한다. 그 교수들이 원하는 신학은 현재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즐기는 것이다. 한 편의 신학이 되어야 교수들의 신학은 과거의 루터와 칼빈, 바르트, 몰트만, 불트만속에 머물러 그들의 입장만 소개
강진은 김영랑의 고향이기도 하다. 김영랑은 가장 땅 끝에 있는 강진에 태어나서 1934년 《문학(文學)》지에 ‘모란이 피기까지“를 발표하였고, 1935년 간행된 《영랑시집(永郞詩集)》에 수록되었다. 그의 시는 다음과 같다. “모란이 피기까지는/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모란이 뚝뚝 떨어져버린 날/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모란이 피기까지는/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 편집인 김소월(金素月)이 진달래꽃은 이별을 노래하고 있지만 김영랑의 모란은 기다림을 노래하고 있다. 모란’은 기다림의 꽃이다. 진달래는 이별을 상징하는 것이지만 모란은 기다림을 상징한다. 모란은 희망이 있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교회재판상담연구소 황규학부소장의 포커스 = 지난 1년 동안 추매애 법무부장관이 한 일은 주로 윤석열 찍어내기였다. 윤석열 찍어내기로 코로나로 어려운 가운에 백신도 일찍 구입하지 못하고 한 해를 다 보내었다. 추미애가 한 일은 윤석열의 두 달의 직무집행 징계였다. 두 달 징계를 하기 위하여 온통 언론의 집중을 가져왔고 법무부장관으로서 자신의 존재감을 여실히 드러내었다. 추미애법무부장관은 16년 전인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했다가 광주에서 2박 3일 간 15km를 삼보일배 했던 여인이다.삼보일배는 자신이 지은 악업을 뉘우치고 자신을 버리는 불교 신자들의 전통적 수행법이다. 추미애는 지난 2016년 8월, 어느 자리에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은 분명 잘못된 것이고, 제 정치 인생 중에 가장 큰 실수고 과오입니다."라고 하며 잘못을 인정하였다. 이제 추미애는 16년 전을 회상하며 관행처럼 다가오는 결정적 오판에 대해서 "윤석열 검찰총장을 탄핵한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고, 제 정치 인생 중에 두번 째 큰 실수고 과오입니다"고 인정해서 다시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번에는 더욱 참회하는 뜻에서 법무부에서 검찰총장실이 있는 곳까지 삼보일배를 할 것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담임(구리토평), 본헬드대표,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박사, 춘천 변화산기도원 협력원장, 등등, 저서로는 주기도문, 팔복, 십계명, 충성된 일꾼 되어가기, 제자 세우기 40일 영적 순례 등.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후 마지막 날 인간을 빚으시고 , 인간에게 피조물을 관리하도록 책임을 주셨다 . 관리를 벗어나 지구를 파괴하고 오염시켜 피조세계는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과학자들은 지구의 수명이 2 시간 14 분밖에 남아 있지 않다 고 한다 . 그 정도로 지구는 병들었다 . 내셔널지오그래픽 (National Geographic)에서 인류멸망의 시나리오를 10가지를 말했다. 1 위가 새로운 바이러스 생산의 위협과 합성생물학 이다. 유전자 서열 조합을 통해 새로운 바이러스 만드는 것을 합성생물학이다. 천연두는 치사율 30%이다. 그러나 합성 천연두는 치사율 100%이다 . 2위는 :스스로 개선하고 향상하는 초지능 기계 (AI), 3위는 전쟁의 위협 , 4위 기후재앙의 위협, 5위는 인공블랙홀 , 6위는 스스로 진화하는 변종바이러스전파, 7위는 외계생명체의 공격 , 8위는 절대피할 수 없는 재앙, 생존 불가의 땅이 되다. 9위는 2036년 인류는 ‘
2019년 1학기 청주대학교 무역학 전공 명사 초청 특강 ‘부활’ 영화로 다시금 울즈마톤즈 행복의 미학 강연. KBS 그것은 알고 싶다 로 알려진, PD 구수환를 우리는 너무나 잘 안다. 그는 지금 새로운 열풍으로 그를 맞이하는 곳이 최근 들어 너무나 많다. 왜냐하면, 그를 통한 행복의 미학을 듣기 위해서이다. 그때마다 그는 달려간다. 그리고 명 강의를 한다. 그는 PD로서 말한다. “여러분! 제가 지나오면서 정말 느끼는 것은 최고의 고발 사건은 사랑입니다 라며 그는 오늘 우리에게 행복의 미학을 말한다. 많은 사람들은 KBS를 말한다. 그런데 KSB는 그것은 알고 싶다를 말한다. KBS 그것은 알고 싶다. 로 알려진, PD 구수환!! 왜 그를 이야기 하는가? 최근에는 KBS 스페셜로 큰 인기이다. 동 유럽국회를 KBS 스페셜에서 소개 하면서부터 이다. 그래서 한국뉴스신문(이성용)은 구수환 PD를 응원한다. 그래서 오늘도 구수환을 향한다. 그래서 달려간다. 구수환 PD가 지난해 5월 28일(화)청주대학교에서 특강을 했다. 이날 박승락 교수의 강사 소개로 강연이 시작. 구수환 PD의 행복의 미학을 한국뉴스신문에 담았다. ‘당신은 행복 합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2008년 2월에 10년 4개월간의 영국 생활을 마감하고, 인천공항에 내려서 서울행 버스를 타고 공항을 벗어나기 직전에 눈에 들어온 큼지막한 글씨가 있었다. “부자 되세요” 이 낮선 표현에 순간 내 얼굴이 붉어졌다. 내 조국의 관문에 이런 글귀를 저렇게 높이, 크게 새겨놓다니! 내가 대한민국의 국민인 것이 수치스럽고 모멸스럽기까지 했다. “성경에 기록됐다.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마4:4; 우리말 성경) 40일간 금식하여 생존의 위기에 처했던 예수님께 시험하는 자가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라고 했던 말에 대한 하나님의 아들의 대답이었다. 오늘 우리는 심각한 생존 위기 가운데 전전긍긍하고 있다. 코로나 19, 미세와 초미세먼지로 숨쉬기에 불안과 공포를 느낀다. 언제 어떤 형태로 제2의 한국전쟁이 발발할지 모르는 위협 속에서, ‘설마’라는 근거 없는 낙관에 기대어 집단최면으로 태연한 척 살아가나, 불안을 완전히 잠재우지는 못한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국론의 분열이다. 보수-진보, 좌파-우파, 중도파 등으로 갈라져서 극한 대립으로 타결점을 찾지 못하고, 아니
황종석 12월은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며 기뻐하는 기독교의 큰 축일, 성탄절이 있는 달입니다. 하지만 공휴일로서 성탄은 많은분들이 누리고 또 서로 즐거워하지만, 참된 의미를 따라 성탄을 축하하려는 사람은 올해도 그리 많아 보이질 않습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성탄이 들려주고자 하는 복음으로서 기쁨의 소식보다는 성탄이 가져다주는 연말의 축제 분위기를 더 기뻐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성탄이 가져다주는 기쁜 소식은 누가 들어도 기쁠 소식입니다. 복음이란 우선 그 자체로 기쁜 소식이라는 뜻입니다. 듣는 자에게 기쁜 소식이 복음입니다. 이것이 만약 상대적이라면 또는 상황적이라면 우리에게 기쁜 소식은 각자의 상황과 형편에 따라 다르게 들릴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서 나에게는 기쁜 소식이지만 누군가에는 슬픈 소식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이런 경우를 종종 보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 취업을 위해 시험 준비를 하는 모든 사람들이 다 합격할 수 없지요. 이들에게 누군가의 합격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합격할 자리가 하나 사라진 기쁘지 않은 소식일 수 있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집값이 오르는 건 내게는 기쁜 소식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내 집 마련이 멀어지는
21세기 고도 산업사회는 물질적 풍요에 의한 삶의 질 향상이라는 긍정적인 면과 사회 양극화, 저 출산?고령화라는 부정적인 면을 동시에 갖고 있다. 특히 물질적 풍요를 부르짖는 경쟁사회에서 장애인들은 사회적으로 뒤처져 낙오자가 될 가능성이 크며, 사회 양극화 현상의 가장 큰 희생자가 될 소지가 높다. 경제가 발전하면 장애인의 복지와 삶의 질이 높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낙관적 전망이 무한경쟁 사회에서는 쉽게 일어나기 힘들다. 지난 40여 년 동안 한국 사회는 사회복지제도 면으로 볼 때 많이 발전했음에도 장애인들의 사회적응 문제는 여전히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다. 심지어 장애인들의 생명과 복지를 위협하는 빈도는 계속 높아가고 있다. 다양한 직업과 여가활동, 교육과 훈련 기회의 확대, 발전된 교통수단 등이 우리 사회를 한 단계 발전시키고 있지만, 정작 장애인에게는 문화권, 정보권, 교육권, 참여권, 이동권 등이 충분히 보장되어 있지 못하다. 그리고 사회구성원들이 장애인을 대하는 인식도 편견과 낙인의 굴레를 완전히 벗어버리지 못하고 있다. 장애인 시설이 우리 동네에 들어선다면 기를 쓰고 반대한다. 이 뿐만 아니다. 교회 안에 조차도 장애인 편의시설이 충분히 갖추어져